"인생 뭐 있어? 다들 그렇게 사는 거지."
"한 번뿐인 인생 사람답게 살아 보자!"
"어차피 사는 거, 한 자리 해 보고 떵떵거려 봐야 하는 거 아니야?"
"남들 다 하는 것만 해볼 수 있으면 성공한 거야."
"내가 너네 같은 줄 알아?"
인생에 대해서 한 문장으로 요약한 것들은 대략 이런 식이다. 그렇지만 모든 문장이 그렇듯 한 문장 한 문장이 함축하고 있는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다들 그렇게 산다는 말에는 '내 삶은 사람 사는 것 같지 않다.'는 것과 '그래도 어쩌겠는가'라는 것과 '그런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다'는 것이 섞여 있다. 내가 보기에는 이 말처럼 강한 것은 없다. 강하지 않은 자들이 하는 자조 섞인 말투이지만 그건 시간축을 가로질러 절단을 내어 그 순간의 사람들의 상황을 보았을 때 자본이든 권력이든 더 가진 자와 비교해 강하지 않은 사람의 푸념이지 그 사람이 강하지 않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멜랑꼴리아'라는 영화를 보았다. 멜랑꼴리아라는 행성이 지구와 충돌하게 되었을 때 한 가족의 상황을 바짝 붙어서 관찰한 내용의 영화이다. 주인공이 뭔가 색다르고 정신적으로 사람보다는 자연과 교감하는 모습을 보이는, 영화의 초점을 어떻게 맞추어야 할지 알 수 없는 부분도 있었지만 단지 그 상황만 놓고 보았을 때는 대도시를 비추는 것보다는 조촐하게 독립되어 있지만 정보 면에서 아주 고립된 건 아닌 그런 상태의 가족을 선택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그 영화에 보면 한 남자아이의 엄마인, 주인공의 언니는 계속해서 약한 모습을 보인다. 사람들의 희망과 동생의 꿈, 부모님의 기대와 예의 사이에서 계속해서 스트레스를 소화해 가며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나아간다. 반면 그녀의 남편, 주인공의 형부는 스스로의 감정도 절제하기도 하지만 그저 절제일 뿐 한없이 묻어 두는 사람이 아니면서도 아내의 기대를 채워주고 겁을 주지 않으려 노력을 한다. 모든 상황에 대해 이성적으로 대응을 하려고 하고 감정 때문에 무너지지 않을 사람으로 나온다.
그러나 지구 멸망의 시대가 되면 모든 것이 바뀐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더 이상의 줄거리는 쓸 수 없지만, 모든 것이 바뀐다는 것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던 것으로 보이던 것이 사실은 순리를 따라가는 것이었고, 약한 줄 알았던 것이 실제로는 강하디 강하여 마침내 부러져버리고 강한 줄 알았던 것은 힘없이 바스러져 버리는.
세상에 대한, 자신의 인생에 대한 자조로써 인생을 표현하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는 듯이, 나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듯이 이야기하지만, 그 자조가 내리는 결론이라는 게 "그러니 어쩌겠어. 이렇게 계속 살아야지."라는 것은 생에 대한 지극한 미련,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계속해서 살기를 원한다는 단단한 신념이다. 오히려 타이타닉에서 케이트 윈슬릿이 맡았던 로즈는 시대의 요구에 순종하고 역할에 충실한 꼭두각시 같은 느낌으로 처음에 비추어졌다면, 계속해서 권력을 가지고 신분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그녀의 약혼자는 공황으로 투자가 실패했다고 해서 목숨을 끊는다. 재산으로 삶을 살고, 재산을 인생을 살기 위한 필수 요소로 생각한 것이다. 자동차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연료가 필요하지만, 연료가 없다고 해서 자동차를 버릴지언정 앞으로 나아가는 것 자체를 포기해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렇게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지 남들'보다' 앞에 선다는 것에 의미를 둘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경쟁을 필수적인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이기면 기분이 좋다고 느낀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면, 이겨서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라 칭찬을 받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권력이 있으면 권력 때문에 좋은 것이 아니라 권력이 있으면 누군가는 부럽다는 티를 내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은 많지만 아무도 그것을 부러워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그 권력으로 누군가는 원망하게 만들어서라도 부러움을 일으키려 할 것이다. 박정희와 전두환을 미워하던 세대가 정치권에 남아서는 결국은 그때의 국회의원들과 똑같이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처음 권력을 지향점으로 두었을 때 원하던 것은 그때의 권력이 하던 짓일 것이다. 그것을 고치겠다고 한 사람도 물론 있을 수 있겠지만 세상이라는 것이 그런 사람들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항상 어떤 소수는 그렇지 않고 그 소수는 강하다.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멀리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 안갯속이라면 눈앞에 보이는 한 뼘이라도 앞으로 쉬지 않고 나아가려 한다. 그 사람들이 있어서 인류의 생은 계속 이어 나가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국가를 이루고 국가들이 모여 인류를 이끌어 간다. 모든 결정은 모든 사람들의 삶에 크든 적든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더라도 수억 광년 떨어진 곳의 블랙홀이 요동친다면 그 때문에 오는 파장은 분명히 있다. 어떤 것이 중간에서 그 파장을 일부 상쇄하고 어떤 것은 우리 근처에서 우리에게 더 큰 힘을 가해서 그 힘이 상대적으로 우리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작아지게 할지라도 그 파장이 아주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에서 어린아이가 한 대 맞은 것이 몇십 년 뒤 그 아이가 자라 전 세계 정치권을 들썩이게 하는 그런 거창한 일이 벌어지지 않더라도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방법으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흐름으로 모든 사람의 인생에 흠집을 낸다. 그 흠집은 우리가 인정을 하든 하지 않든 시간축을 따라 흔적이 남고, 마침내 인류의 표면에 새겨진 무늬 가운데 하나가 되어 있을 것이다.
어떤 이유로 자신은 남들과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 그들은 그 이유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할 테니. 그것이 없으면 인생을 계속해 나갈 의의조차 찾지 못할 약한 사람들이다. 모든 것을 잃는다고 생각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사람들 사이에 아무렇지도 않게 섞여서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할 수 있다는 것은 인류에게 있어서 크나큰 약점이다. 강하디 강한 철판 접합부 사이에 난 균열이다. 인류에 치명적인 일이 발생하면 인류를 멸망으로 몰아넣는 자들이 그들이고 인류가 살아남는 것은 결국 질긴 생을 이어가는 다수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생은 이어 간다는, 내 재산, 내 권력 때문에 내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지는 것이야말로 인류가 번영할 수 있는 근본적인 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