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는 것은 즉흥적이다. 어떤 사람이든 즉흥적으로 뭔가를 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심심할 때 책을 펼지 인터넷에 접속할지 결정조차 즉흥적으로 이루어진다. 책을 읽더라도 즉흥적으로 책을 덮는다. 인터넷에 접속하더라도 동영상을 보다가 뉴스를 보는 일은 즉흥적으로 일어난다. 옛날에는 책을 읽거나 거리를 거닐거나 등산을 하거나 하는 한 가지 행동이 시작하면 그 활동들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일정 시간 그 활동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책상에 앉아서, 혹은 침대에 누워서도 수십 가지의 일을 할 수 있고, 그만큼 같은 자리에서 수많은 활동들 사이를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한 시간 동안 질 낮은 수많은 활동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야말로 '넓고 얕게'인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옛날에 모든 사람이 프로페셔널이었을 리는 없는데 어쩌다 보니 옛날 사람들이 지금보다 약간 '좁고 깊게' 활동한 것처럼 되었다. 모든 것이 시간을 투자한 비율에 따라 결정된다고 하면 실제로 지금의 우리는 할 줄 아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하자. 정말 글로 옮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서 조금이라도 더 잘 쓰고 싶어서 관련된 사실들을 조사하고, 역지사지로 등장인물들 가운데 몰입되어 역할에 따라 생각도 해 보고 습작도 해 본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한 편의 글을 완성한다. 사실 나에게도 그런 역할을 하는 글이 있기는 하다. 누군가 말하기를 소설을 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첫 번째 소설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글이 완성될 때까지 매달리는 일은 그렇게 매달려서 뭔가 나온다는 확신이 든 뒤에야 가능한 일이다. 전업작가가 필사적으로 매달려서 그런 확신을 점점 굳혀 나가려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전업 작가는 그런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돈이 적정한지, 그러니까 너무 많은 게 아닌지 혹은 그의 작품이나 그의 태도와 비교할 때 너무 적은 것은 아닌지와는 관계없이 직장인이 출근을 하듯이 그들은 글을 써야 한다. 그렇지만 나는 전업 작가가 아니다. 언젠가 마감이 있어야 하고 시작된 글은 반드시 끝을 보아야 하지만 글을 쓰기 위해 쪼개는 시간을 오직 그 글만 쓰는 데에 쏟아부을 수는 없다. 요즘은 인터넷상에서도 연재라는 개념이 들어와서 작가의 길에 도전하듯 연재에 도전할 수 있기는 하지만 '쓰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니라면 개인적으로는 별로 따르고 싶은 시스템은 아니다.
대신에 나는 매일매일 쓰고 싶은 것이 생길 때마다 그때그때 그것을 글로 풀어내고 싶다. 털실을 당겨 털실뭉치에서 실을 뽑아내듯이, 머릿속에 드는 생각 중 반드시 글로 쓰고 싶은 것이 생기면 그것에 집중해서 차근차근 써 내려가고 싶다. 그 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각이 글이 되어 가는 그 현장, 그 순간이 중요한 것이다.
한 번은 내가 내 글에 대한 글을 자꾸 쓰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이런 글을 읽고 좋아할 사람들이 있을까? 그냥 내 한풀이 아니면 합리화에 불과한 글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지만 결론은 간단했다. 단지 나는 여기에 대한 글을 충분히 쓰지 않은 것뿐이다. 내 글에 대한 생각을 충분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글에 관한 글 역시 계속해서 나오는 것뿐이다. 내가 자꾸 쓰는 것이 아니라 아직 시리즈가 끝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결론을 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뭔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 주제에 대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글을 쓰지 않기로 하면서 글로 쓸 만한 더 나은 주제를 기다린다면 영원히 글을 쓰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감 노트에 있는 것들로 충분히 글을 쓸 수 있고, 글감 노트에도 주제를 가리지 않고 문장을 적어 놓을 수 있다. 글감 노트에 적은 문장을 시작으로 글로 쓰고 싶은 것들을 써 내려간다. 여기에는 현재의 내가, 현재의 내 생각이 녹아들어 가야 한다. 현재의 내 욕심 때문에 내가 내 글에 녹아드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어떤 글을 쓰든지 그것은 내 글이고 내 생에서 그 글을 쓰는 순간의 내 단면이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나 자신에 대해 엿볼 수 있는 한 조각의 진실이다. 작가가 아닌데 글을 쓰는 것이 취미라고 하면 세상은 이상하게 쳐다본다. 사실은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이 부업이 아니라 취미인 것이 아닐까? 그런 세상에서 나 자신이 글을 쓰는 것을 나 자신마저 방해해서는 안 된다. 마음껏 쓰자. 무엇에 대해서든 무슨 이야기든, 쓰고 싶은 대로 쓰자. 나만이라도 내가 무엇이든 쓰도록 내버려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