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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테마

by 루펠 Rup L

나는 출장을 가거나 여행을 가면 테마를 정한다. 테마라고 해서 '여행 전반을 아우르는 주제'나 '여행에서 반드시 이루고 싶은 목표' 같은 그런 거창한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여행을 끝내고 오면 여행이 원래의 목적에서 끝나지 않고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뭔가 남는 게 있도록 하려는 욕심일 뿐이다.
테마를 정하는 과정은 즉흥적이다. 두 권의 책을 고를 것. 그리고 여행 중에 글이라고는 그 두 권의 책만 읽을 것. 이렇게 하면 그렇게 고립된 환경이 아님에도 글을 한정시켜 놓음으로써 그만큼 책을 집중해서 읽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그 두 권을 번갈아 가며 읽더라도 삼일짜리 여행이라 해도 집중만 하면 절반씩이라도 읽을 수 있게 된다.
2주 동안 싱가포르에 머물렀던 때에는 추세추종 투자에 대한 책 두 권을 골라갔다. 전반적인 설명만 있다고 생각했던 책들임에도 세 번씩 읽는 동안 의외로 세부사항이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들을 적용해서 상당 부분 내 투자 원칙과 프로그램을 수정할 수 있었다. 전에도 몇 번 읽었던 책이고, 빌려서 읽었다가 반복해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해서 구입한 책이었지만 결국 몇 번의 밑줄은 모두 그 여행 동안 그어졌고 말 그대로 모든 문장을 파헤칠 수 있었다.
이번 주는 일주일 동안의 교육 출장 기간이다. 교육 주제여서 공부해야 하는 것들은 별도로 하고 이번 여행 역시 테마를 정했다. 책을 두 권으로 정한 것은 원래 여러 가지 책을 읽고 관통하는 뭔가를 뽑아낼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종이책으로 가져간다면 두 권이 넘어가면 아무래도 무게나 짐을 싸는 데 있어서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점차 두 권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로 정해진 양이지만 생각보다 알맞은 것 같다. 전자책으로는 이런 테마식 읽기는 잘 되지 않는다. 다른 책 파일을 여는 것부터가 어색하기도 하고 가볍게 읽을 때는 모르겠지만 집중해서 읽으려고 하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생기는 딜레이 때문에 집중이 흐트러지고는 한다. 어쨌거나 이번 여행의 테마는 '프랑스'이다. 단순히 두 권의 교집합이 프랑스여서 이름을 프랑스로 지었을 뿐, 별다른 이유는 없다. 테마를 먼저 정하고 책을 고르려면 너무 비효율적이라 책을 먼저 고르고 교집합도 없고 한 권만 줄곧 읽게 될 것 같으면 책을 바꾼다. 이번 '프랑스'라는 테마를 만든 책은 아직 읽다 만 '헤밍웨이, 내가 사랑한 파리'와 '세잔의 사과'이다. 문학과 미술이기 때문에 프랑스라는 점을 제외하면 공통점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겉에서는 보이지 않는 시대적인 교집합이 몇 번 반복해서 읽다 보면 상당 부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테마를 정해서 읽는 것은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아까도 얼핏 언급했듯이 테마로 한정한다는 것은 곧 읽을거리를 한정한다는 것이어서 마치 옛날 공부할 것이 있어 암자에 틀어박혔듯이 내가 선정한 책만 가지고 일상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일종의 의지도 생기기도 하지만 수많은 읽어야 할 것들 중에 골라서 읽고 그 와중에도 더 읽어야 할 것들이 뒤로 줄을 서 있는 상황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다. 단 두 권만 읽으면 된다. 익숙하지 않다면 한 권이라도 문제가 없기는 하지만, 한 권을 읽을 거라고 해도 두 권이 있는 편이 나을 것이다. 한 권만 가져갔다가, 나와 혹은 여행과 너무 맞지 않으면 읽지 않게 되지만 두 권이면 둘 중 하나는 상대적으로 여행이나 내 기분에 더 가까워지게 된다. 감정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읽을만한 책이 되면 나머지 한 권은 읽지 않더라도 충분히 역할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출장이나 교육출장 같은 것이 아니라도 가족 여행에서도 책을 반드시 챙긴다. 원래 책을 읽기 위한 여정이 아니었던 것은 가족 여행이나 출장이나 마찬가지이다. 거기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짬을 내는 일은 자신의 몫이다.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책만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 책은 책을 읽을 때 집중할 주제를 테마로 정했을 뿐 모든 여행은 그 여행을 계획할 때의 목표를 지향해야 하고 책이 그것을 침범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 위한 여행을 떠났다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원래의 목적에 충실하고 나서 책 읽을 시간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게 아니라 단지 책을 읽기 위한 여행이라면, 다른 구성원들도 동의해야 하며 처음부터 여행의 목적이 독서여야 하는데, 사실 나는 그런 여행이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냥 집에서 책을 읽는 것과 다를 게 없으니까. 책만 읽기 위한 목적으로는 여행을 가본 적도 없고 그럴 계획도 없다. 책을 읽기 위해 어딘가로 간다면 그건 카페뿐이다. 그것도 카페에서는 사람들의 시선도 있고 하다 보니 중간에 글을 쓰고 싶을 때 방해가 많이 되어 웬만하면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면서 분위기만 흡수하고 기분만 집으로 가지고 오는 편이다. 그런 점에서 집에서 내리는 커피와 외출의 향기를 머금고 온 카페 커피는 엄연히 다르다.
가끔 작가들 중 글을 쓰기 위해 호텔에 처박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사실, 나는 내 이야기를 하면서 '단지 이렇게 하는 방법도 있어요'라는 차원에서 경험을 공유하는데 말로 설명을 해도 바로 반론이 들어와서 피곤할 때가 많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의 상태가 아니다. 글도 짬을 내서 쓰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책을 읽는 것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것은 출근할 일이 없는 주말 혹은 밤뿐이다. 그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쓰려면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사람과 글을 써야만 하고 그래서 책을 읽어야만 하는 사람은 엄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글이 좋아지고 생각도 점차 짬 내서 글을 쓰는 사람에서 글만 쓰는 사람의 시각으로 이동해 간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런 상황이 되어 경험이 확장된다면 그때 가서는 그 경험을 되새기고 다시 써 내려가게 될 뿐, 지금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일상과 가까웠다가 멀었다가 하는 그 과정을 무시하고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 없다. 그러니 집중할 수 있는 계기도 혼자서 모든 상황과 타협하며 만들어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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