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의 글을 읽다가 아무리 많이 쓴들 발전하지 않는다면 보람이 없을 것이니 우선 발전할 수 있게 더 많은 책을 읽으라고 충고하는 부분이 있었다. '아니, 많이 쓰더라도 발전하지 않을 수 있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우리나라로 보면 경성이었을 시절, 수많은 사상들이 부딪히던 시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있을 수 있는 생각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더 나은 글은 가능할까?
아마도 내가 글을 계속해서 쓰는 것도 글을 쓰다 보면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글솜씨는 그대로라고 해도 내용은 계속해서 발전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방식이 바로 글을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지 않고도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겠지만 글을 씀으로써 계속해서 생각이 나아간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을 발전시킨다는 것 자체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수두룩하니까. 이건 취향과도 같아서 관심이 없는 사람은 필요 없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생각이 발전하지 않아도 된다. 생각이 발전하는 것에 관심이 많은 나는 계속해서 더 빠르게 발전할 수 있다면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계속 발전하기만 한다면 느려도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도구가 글쓰기인 것이고.
만약 더 나은 글이라는 것이 대중에게 더 선택받는 글을 일컫는다면, 내 글이 더 나아지는 것이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글로 쓰는데 이것들은 도무지 인기가 있을 만한 주제 자체가 아니다. 내 머릿속에 있는 내 생각에 대한 생각을 풀어내고 있어서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은 선택한다기보다 공감한다는 쪽으로 내 편을 들어주겠지만, 사실 요즘은 인스타그램을 보아도, 유튜브를 보아도 연예인처럼 스스로를 드러내고 자신의 생활이나 자신의 궁금증 같은 것을 솔직하게 내보이는 것에 거침이 없다. 그런 인터넷 환경에서 영상도 아니고 글의 형태로, 세상의 트렌드 같은 것도 아니고 일개 개인으로서의 나의 머릿속 생각을 풀어내는 것은 관심을 끄는 것조차 힘들지 않을까.
그럼에도 계속 쓴다.
어떻게 글을 쓰면 내 글이 더 나아질지에 대한 고민은 항상 한다. 그리고 고민 따로, 글을 쓰는 행위 따로 분리해서 받아들인다. 고민이 진지해지고 실제로 영향력이 생긴다면 글을 쓰는 데 자연스럽게 스며들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이 나아지는 것은 주제가 조금 더 나 자신의 상황에 대한 것에서 우리라는 일정한 집단의 상황에 대한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글이 나아진다는 것은 모든 경우에서 소용이 없고 지금 현재, 여기에서 나 혼자에게만 유효한 결론에서 일정한 집단,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결론 쪽으로 스펙트럼이 넓어진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글이 나아진다는 것은 내 글에 대한 고민에서 내 삶에 대한 고민으로 나 자신을 다루는 폭 또한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 모든 점에서 나는 발전할 것이라는 것을 믿고, 그런 발전이 내가 쓴 글을 시간 순서대로 펼쳐 놓았을 때 어떤 관점에서든 미미하게나마 스며들어 있어서 먼 과거와 먼 미래의 글을 비교해 보면 그제야 눈에 보일 수 있는 그런 정도라고 하더라도 존재하기만 한다면 글을 쓰는 시간들이 아깝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결국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멈추지 않을 용기, 둘 뿐이다. 악기를 연습하는 일과 마찬가지이다. 계속 연습을 하면 나아지리라는 믿음과 꾸준히 매일 거르지 않고 연습할 용기이다. 내 머리와 손은 글을 연주하는 악기이고 나는 일부러라도 매일 그 악기를 다루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이다. 혼자서 악기를 연주하는 연습을 해야 하듯이 그 글들 역시 나 외에는 읽어 줄 사람이 없어도 당연한 것이다. 중요한 순간에 연주를 하게 되면 빛을 보겠지만 그런 날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은퇴하고 빈 집에서 고즈넉하게 첼로를 연주하는 상상을 한 적이 있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영상을 보면서 거기서 첼로 부분을 함께 연주하는 것이다. 오케스트라에 아무 폐를 끼치지 않고 영상에 나오는 소리만큼만 정확한 음으로 연주한다면 혼자서라도 좋다. 그런 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내 말에도 어느 정도 공감하리라. 거장들이 쓴 글에 내 글이 미치느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사람들에게 얼마나 인기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며(어느 정도 기분은 좋겠지만.) 단지 거장의 글이 주는 감동에 비해 내 글을 읽고 느끼는 바가 그전보다 얼마나 가까이 갔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오케스트라 영상을 보면서 삐쭉거리는 음 하나 없이 정확하게 따라갔다고 해도 실제 오케스트라에서 함께 연주하면 같은 소리가 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지만 그전에 비해 나아졌다는 것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스스로에게 뿌듯하리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거장들만큼 글을 쓰지도 않고, 치열하게, 피로 쓰듯이 문장을 공부하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차원에서 책을 읽을 뿐이다. 열심히 유튜브를 보면서 바이올린 연습을 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