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가 있다. 써야 할 것이 산더미 같은데 막상 글을 쓰려고 하면 시간이 나지 않거나, 더 중요해 보이는 일이 갑자기 나타나거나, 혹은 쓸데없는 것, 예를 들어 유튜브 등을 보는데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 버려 식사를 하거나, 출장의 본래 목적에 맞는 활동을 해야 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너무 빨리 다가왔을 때는 똑같이 써지지 않던 글도 더 가혹하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다. 글은 잘 써질 때도 있고 잘 써지지 않을 때도 있다. 생각도 글에 맞게 진행될 때도 있고, 신경 써야 할 다른 것들 대문에 그 상태로 멈추어져 있을 때도 있다. 그러니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글을 쓸 때처럼 생각이 흐르는 것을 그리워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글을 오랫동안 쓰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면 불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작가가 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부터도 당장 글을 쓰지 못하는 슬럼프가 오면 실제 작가가 되고 나면 정말 심각한 슬럼프가 오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마저 드는 것이다.
학창 시절을 생각해 보자. 시험공부를 덜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공부하지 못한 곳, 이해하지 못한 곳에서만 문제가 왕창 나와서 성적이 떨어질 것 같아서 불안할 때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가? 당연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당연하고 잘 알고 있지만 하기는 힘든 일, 바로 그 부분을 그냥 생각 없이 반복해서 머릿속에 다시 집어넣는 일이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 것 같아서 불안할 때는 그저 계속 쓰는 수밖에 없다.
나는 이틀 정도 그렇게 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생각보다 소득이 없는 것 같아서 불안해하고 있었다. 세잔의 책도 재미는 있었지만 원래 세잔에 대해, 혹은 세잔의 그림에 대해 말로만 들었지 실제적으로 연구서를 읽어본 적은 없어서인지 잘 읽히지는 않았다. 심리학이라던가 미술사학이라던가 하는 점에서 접근을 했기에 그림을 찬찬히 뜯어볼 수는 있지만 설명을 모두 소화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 사이에 '헤밍웨이 내가 사랑한 파리'는 벌서 두 번째 읽고 있다. 사진 설명 때문에 책에 표시는 하고 싶지만 0.28mm짜리 볼펜은 집에 두고 온 아주 불편한 상황이지만 늘 강조하듯이 어차피 계속 읽을 거라면 욕심부리지 않아도 언젠가는 다시 읽으면서 표시할 날이 올 것이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글은 틈틈이 쓴다고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쓴 글은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아서 확인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정말 불안한 마음이 들어 오늘 아침에 앱을 열어 저장된 글을 보았는데 브런치에 올려도 될 만한 글만 해도 일곱 편이나 되는 것이었다. 일곱 편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 썼으면 글을 쓰지 않고 있던 것도 아니다. 단지 내가 얼마나 썼는지 확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담스러워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제 브런치 앱으로 복사해서 수정하는 일이 남았다. 이건 누워서 빈둥빈둥해도 좋을 일이다. 그럼에도 내가 바보라서 얼마나 썼는지조차 파악하고 있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정상적인 출근을 하는 날에 비해 내 시간이 그렇게 많은데도 별로 쓰지도 못하고 책도 생각보다 많이 읽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평소에 그렇게도 바라던 자유롭게 책을 읽고 자유롭게 글을 쓰는 시간이지만, 그래서 평소에는 퇴근하기가 무섭게 글을 쓰고 책을 읽었지만, 거기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고 나서도 같은 양밖에 읽지 못하고 쓰지 못한다는 점이 아쉬운 것이다. 퇴근하고 내 시간이 온전히 생기면 글을 한 열 편은 쓰게 될 줄 알았다. 어떤 고민까지 했냐면, 지금 글감 노트에 있는 글감을 다 쓰면 어쩌나 하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생각들이 생기면서 그나마 그 생각들은 글감노트에 가기 전에 곧장 글로 쓰여지는 좋은 기회를 얻기는 했다.
나는 글을 쓰지 않으면 개운하지 못한 느낌이 있어서 글을 쓰는 사람이기는 하다. 그래서 운동도 심하게는 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 몸매는 가꿀 수 있을 정도는 유지할 수 있다. 그렇다고 시간이 많으니 4세트 할 운동을 8세트 하겠다고는 하지 못한다. 아마도 글을 쓰는 것도 근육과 같아서 시간이 남는다고 평소보다 더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기는 하다.
평소 내 글은 한 편이 2천 자에서 3천 자를 유지하려고 한다. 그런데 2천 자 기준으로 하루 한 편이라고 하면 그렇게 세 편을 쓰는 것과 3천 자 기준으로 두 편을 쓰는 것은 동일할 것이다. 그럼 3천 자로 두 편을 쓰면 평소의 세 배를 쓰는 것과 같을까? 물론 내용을 보아야겠지만 아마 그렇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글을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은 비슷하다. 생각을 단순히 따라가기만 하기 때문에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것이 별로 없다. 오히려 서두르거나 너무 느긋해하는 순간 글이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생각을 따라가는 과정을 소화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노력은 동일한 것이다. 그러니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야겠다.
부담은 나쁜 것이 아니다. 부담을 느껴서 더 열심히 쓰게 된다면 오히려 좋은 일이다. 단지, 스트레스가 될 정도로 나에게 지금 글을 쓰는 일이 중요한 상태냐 하면 그건 아니라는 객관적인 판단 때문에 마음이 아플 뿐이다. 나는 글을 계속 쓰며 글 쓰는 연습을 이어가야 하고 또 글을 만들어내며 뿌듯해하는 과정이 지속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그렇지만 그것과 스트레스는 다른 종류이다. 우리는 언제나 분별력을 가지고 안테나를 바짝 세워서 우리 삶을 중요도에 맞춰서 잘 배분하려고 '항상' 노력해야 한다. 절대 필요 없는 스트레스를 만들어 내서는 안 된다. 이 몇 가지만 주의하면 나는 지금처럼 노력하는 단계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수많은 동지들도. 설사 내가 작가가 되지 못한다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