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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편 300편

by 루펠 Rup L

목표는 단순한 목적지와 다르다. 목표는 종합적인 개념인 반면 목적지는 지리적인 느낌이 강하다. 두 가지 차이 때문에 단어들에 대해 우리가 보이는 반응 역시 극렬히 달라진다. 목표를 세우면 목표의 성격에 따라 세분화된 목표들이 생기게 된다. 이 세분화된 목표들은 서로 다른 차원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라면 단순히 공부의 진도뿐만 아니라 공부할 분위기가 되는 장소를 찾는 것, 필기도구를 항상 소진되지 않도록 여분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모두 포함하는 목표가 설정이 된다. 여러 목표들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진전이 이루어지는 구간들이 생기는 것이다. 반면 목적지는 그저 계속 2차원 선상을 이동하기만 하면 된다. 공부에 대한 목표를 세운다면 순수하게 진도에 관한 부분 보면 목적지 향한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목표와 목적지는 갈라진다. 똑같이 산 정상을 향해 간다고 하면 목표는 중간 목적지를 비롯해 식량이나 비에 대한 대책 등이 미리 만들어질 것이지만 목적지는 일단 경로를 선택해서 출발하고 나야 의미가 생긴다.
그렇다고 목적지 개념에 중간이라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마라톤을 하더라도 절반의 거리에 하프라는 것이 있고, 등산을 하더라도 등성이마다 쉴 수 있는 곳이 있다. 중간 목적지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이다. 다만, 거기에 무슨 대책 같은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지점일 뿐이다.
내가 우선 글을 800편 쓰겠다고 했을 때, 나는 목적지를 지정한 것이다. 목표는 당연히 작가가 되는 것이다. 그냥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거나 적어도 재미는 있는 글을 계속 써내고 읽히게 하는 사람이다. 쉽게 말해 읽히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 하지만 거기에 어떤 세부 목표가 있어야 하고 어떤 대책이 있어야 하는지는 모르는 상태이다. 그러면 일단은 가보는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요소들의 문제점을 찾아 대책을 세우고 그런 것들이 발목을 잡지 못하게 균형 있는 목표를 세우기에는 그 요소들을 다 알지 못한다. 그러면 단지 목적지만 설정하고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 정확한 목적지는 아는가? 아니다. 그럼 목적지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 옛날 사람들은 자기 노트에 끄적일 뿐이었고 그것을 한 편 한 편 남들에게 보여주면서 인정을 받아야만 그 뒤로 다른 사람에게 읽히는 매체에 실렸다고 하면, 요즘은 글이 넘쳐나는 세상이라 그냥 게시만 하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상태는 된다. 읽을 수 있는 상태의 글들이 실제로 읽히게 되는 것이 나의 목표인 것이고 그 목표의 세부 목표 중 하나(사실은 알고 있는 유일한 세부목표이지만)가 먼저 2000자 이상의 글을 기준으로 800편을 쓰자는 것이었다. 사실은 어떤 세부 목표들이 있을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되는 양의 글을 쓸 때까지 시간을 벌어보자는 것뿐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은 나에게 있어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시기라는 직감이 있다. 최근처럼 글을 지속적으로 써본 적이 평생 없었으니 이 정도의 변화만 해도 지금으로서는 충분하지 않을까?
우선 지금의 목적지는 2000자 기준 800편의 글을 쓰는 것이다. 이 목적지는 이미 오래전에 정해졌다. 이 숫자는 처음에 막연히 300편으로 정했다가 2000자가 많지는 않은 분량인 듯싶어 기준을 두배로 늘린 것이었다. 그런데 무라카미 하루키로 검색하면 바로 나오겠지만 그가 하루에 4000자 정도를 쓴다고 해서 두 배로 늘렸는데, 평생 글을 써온 사람이 쓰는 양과 글을 쓰는 것을 강제로 생활에 주입하겠다는 사람이 쓰는 양이 같아서는 안 되겠다 싶어 기준을 5000자로 올렸다. 그렇지만 실제로 모든 글을 5000자를 억지로 쓰다고 나섰다가 오히려 글 쓰는 일을 피하고 싶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계산은 그냥 2000자 기준으로 하고 대신 총 글자수만 맞춰서 글의 편수를 늘리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처음 4000자 목표 기준으로는 600편이 되고 5000자 목표 기준으로는 750편을 써야 한다. 그리고 이건 완전히 즉흥적이었는데, 750이라는 숫자가 별로 보기 안 좋아서 800으로 반올림해 버렸다.
이렇게 해서 나는 일단은 800편을 채울 때까지는 글 쓰는 사람이라던가 작가라던가 하는 관점에서 벗어나 일단은 글쓰기 연습생이라고 하기로 했다. 단순히 글 쓰는 연습을 하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은 세부 목표는 커다란 목표에 의미가 있지 단순히 2차원 경로에 불과한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경로 자체에는 의미가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의미가 없다는 것은 준비 단계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고 우리에게는 의미 없는 목표가 되었든 중간 목적지가 되었든 마일스톤은 반드시 필요하다. 정상에 오르면 당연히 좋겠지만, 그전에 미리 정해진 지점들을 통과할 때, 실제로 많은 길을 지나왔다는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제대로 된 중간 목적지를 설정하지 않으면 쓸데없는 중간 목표를 세우고 그걸 지키려고 샛길로 빠질 수도 있다. 공부를 하면서 진도가 아니라 볼펜심이 소진되는 것을 중간 목표로 세우면 어느 정도 공부가 될 수는 있지만 제대로 된 중간 목표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글을 써내는 것은 글이 몇 편이 써졌는지 바로 보면 되니까 그 숫자를 보면 진행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기는 하다. 160편 썼으면 800편에 비해 20%이니 앞으로 80%가 남았다는 정도로. 그렇지만 성취감을 1% 진행될 때마다 매일 느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주요 지점에 점을 찍고 이름을 붙여야 한다. 다른 등산로로 가는 길과 겹치는 곳일 수도 있고, 약수터로 살짝 도는 길이 있을 수도 있는 것처럼. 벤치를 놓고 조그마한 공원을 만들어 둘 수도 있다. 이런 역할을 800이라는 숫자로 가는 수직선에 점을 하나씩 찍어서 조그맣게 기념함으로써 대신하려고 한다.
우선 가장 처음 정했던 300편을 첫 번째 지점으로 만들었다. 이 지점은 목적지로 가는 거리의 3/8 지점이기도 하다. 계장 쪽 일도 하다 보니 친숙한 분수이다. 원래는 절반씩 프랙털처럼 할까 생각을 했었다. 400편을 첫 번째 목표로 하고, 두 번째는 200편, 그다음은 100편, 그다음은 50편. 그렇지만 50편도 안 되는 목표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50편으로 제한을 했더니 마지막 두 번은 똑같이 50편이 되는 것이었다. 그건 아닌 것 같아서 마지막은 안 그래도 조바심이 나는 상태일 것이니 50편으로 그대로 두고, 그전을 100편으로 만들었다. 그러면 마지막에 총 150편이 할당된 것이다. 나머지는 650편이다. 바로 전에 100편을 할당했으니 그 이번에는 150편을 할당했다. 그러면 500편이 남는다. 이제 다시 200편을 할당한다. 이제 300편이 남았다. 처음 생각했던 대로 첫 번째 마일스톤은 300편, 두 번째는 그로부터 200편, 세 번째는 그로부터 150편, 네 번째는 그로부터 100편,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은 그로부터 50편만 쓰면 도달하게 된다.
작은 목적지에 도달하더라도 기분만 좋을 뿐 뭔가를 할 생각은 없다. 단순히 '그래도 내가 꾸준히 걸어오기는 했구나'하는 정도, 그러니까 산에 올라간다면 별로 올라간 건 아니지만 건물들이 내려다 보이는 지점에서 그래도 열심히 걸은 보람은 있다고 느끼는 정도일 것이다. 정말 기념을 한다면 800편을 채웠을 때겠지.
누가 뭐래도 양보다 질이다. 평생 찌라시만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노트에 몇 글자 되지 않는 것들만 끄적거리던 나 같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찌라시들이 내 글보다 가치가 낮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순히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라던가 고민이 적어서라는 것이 아니다. 찌라시들도 하나씩 뜯어보면 그럴듯하고 상당히 머리를 많이 쓴 흔적이 보인다.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틀림없이 무언가는 내 글보다 나은 것이 있으니 내 글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모든 이유를 제쳐 두고, 내 글만 비교했을 때 어쨌든 나는 양을 퍼붓듯이(절대적으로 많은 양이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과거에 쓰던 글의 양과 비교할 때이다.) 글을 내보내지만 그 과정에서 충분한 연습이 된다면 어쨌든 질도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이다. 연습이 되지 않고 단순히 기계적으로 쓰는 글이라면 솔직히, 800편이든 8,000편이든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800편에 도달할 때, 아니 평생토록 양보다 질이라는 생각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 내 글을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그 몇 편의 글에 머무르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은 좋은 습관은 아니다. 그것이 정착하고 나서 보여주는 것이 독자에 대한 예의이다. 이것을 깨고 연습 삼아 쓰는 글이 되어도 좋은 때가 800편을 채우기 전인 것 같다. 핑계도 좋고, 독자들 역시 내 글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지, 똑같은 글만 줄곧 쓰면서 "작가라고 불러 주세요"라는 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누구나 글을 읽든 책을 읽든, 심지어 유튜브를 보든 자기 시간을 할애해서 그것에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이다. 아무리 돈을 주고 구입한 책을 읽는다고 해도 돈만 쓰고 책은 읽지 않을 수 있다. 내 글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최대한 막을 수 있는 길은 손이 닿는 한 내 글에 내가 신경을 쓰는 것뿐이다. 그러고 나서 내 손을 떠나면 더 이상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끝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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