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가 썼던 글들 중 글쓰기에 관련된 부분을 뽑아서 편집한 'Ernest Hemingway on Writing'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번역판이 올해 나왔다기에 바로 서점에 가서 확인해 보았다. 요즘 책값이 올라서 미리 보기에서 글자 크기를 보고 페이지 수를 확인하던가 아니면 서점에 직접 가서 펼쳐보고 나서 구입을 하는데 미리 보기에서는 소책자 같은 느낌이어서 실제 크기와 글자들의 느낌을 직접 보아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책은 소책자 같다고 느껴질 정도로 작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미리 보기에서 그런 느낌이 들 정도로 글자도 지나치게 크고 무엇보다 글과 글 사이의 간격이 너무 컸다. 말 그대로 지금 책의 판형에서 1/3이 되어도 자연스러울 정도의 구성이었다. 게다가 종이가 두꺼워서 300페이지는 되는 책과 비슷한 두께가 되었다. 책값을 매기는 데 있어 선택의 폭이 좁아서 최대한 그 가격에 맞게 겉모습을 구성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이해를 하지만 책의 크기와 글자들 사이에 가득 찬 공기는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이 책의 존재를 알고 나서 먼저 원서를 구입해서 앞부터 조금씩 읽고 있었는데 책을 구해서 앞에서부터 읽으면서 아무리 보아도 글자들이 너무 크다, 그리고 글자들 사이의 간격이 너무 집중이 되지 않을 정도로 넓다는 생각을 하다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유를 알지 못하고 지나갔는데, 어제 비로소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원서를 보면, 헤밍웨이가 쓴 글들 중에서 글쓰기에 관한 부분만 '골라 엮어서' 만든 책이어서 거기에 대한 내용을 쓴 '엮은이의 말'이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Forward', 즉 서문이 있고 그 뒤로 책의 내용이 이어진다. 그런데 한국어판에는 서문이 없다. 그런데 서문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서문을 한글로 읽은 느낌이었다. 알고 보니 '엮은이의 말' 뒤에 '옮긴이의 말'이 있는데, 그 '옮긴이의 말' 맨 뒤에 역자 이름까지 떡하니 적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원서의 'Forward' 부분을 한문단을 빼놓고 그대로 번역해 놓은 것이었다. 물론 그 뒤에 없던 두세 문단이 더 붙기도 했다. 그렇지만 서문을 번역해서 끼워 넣고 번역가가 마치 그 글 전체를 쓴 것처럼 하는 게 맞는 걸까? 원래 서문이 없었던 것처럼 편집한 상태에서?
원래 책 편집을 한 상태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원서의 내용에까지 손을 대었다는 것을 보고 나니 본문들에 대해서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잘된 번역이냐 아니냐로 논란이 된 적은 많이 보았지만 이렇게 제멋대로 편집한 책은 처음이다.
이 책은 원서와 1:1로 대조해 가면서 읽을 예정이다. 원서는 말 그대로 소책자이다. 그럼에도 뭐가 더 빠져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빠진 내용이 있으면 한글판에 써넣어야 할지 그런 것들은 실제로 읽으면서 나오면 그때 가서 결정해야겠다. 그런 부분이 있다고 해도 한글판에는 적어 넣을 공간이 남아돌기 때문이다.
책을 보자마자 비호감스러운 건 흔한 일이 아닌데 심지어 헤밍웨이의 이름을 달고 나온 책이 그렇게 될 수 있으려면 대체 어떤 짓을 해야 하는 건가 싶지만 막상 눈앞에 보이니 할 말을 잃게 된다. 옮긴이의 말이 문제이기는 한데, 전혀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 게, 심지어 온라인 서점의 홍보 문구에도 옮긴이의 말의 '그 부분'을 마치 옮긴이가 쓴 글인 것처럼 대놓고 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부분 외에는 내용을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