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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좋은 카페

by 루펠 Rup L

나는 보통 글은 집에서 쓰려고 하는 편이다. 저녁에는 맥주 한 캔을 옆에 놓고 글을 쓰기도 하고 커피나 홍차를 놓고 한 모금씩 홀짝거리기도 한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자율학습시간이나 독서실 같은 곳보다 내 방이 마음도 편안하고 공부하기도 좋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그건 집안 분위기에 따라 많이 다른 것이 사실이다. 고등학교 때 친구 하나의 경우에는 방도 크고 책상도 큼직해서 공부가 더 잘 될 것 같았지만 의외로 강아지 때문에 공부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잔소리 때문에 공부를 하려는 마음이 들었다가도 사라졌다는 친구들은 많이 보았지만 공부만 하려고 하면 책상 위로 올라오거나 의자 위를 올려다보며 끼웅거리는 소리를 내는 강아지 때문에 집에선 공부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했던 것은 그 친구 하나뿐이었다. 그 친구가 특이하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집중하기 좋은 장소를 찾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어렸을 때부터 책을 읽는 부모님 모습을 보아 왔고, 2층 단독주택에 살면서 2층으로 올라가는 야외 계단에 앉아 책을 읽기도 했다. 때로는 도서관에 가서 자료 조사를 하다가 책을 빌려서 열람실에 가져와서 읽기도 했지만 그건 특별히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서일 뿐이었다. 실제로 도서관은 집에서 걸어서 30분이 넘는 거리였는데, 그래도 도서관은 반드시 걸어서 갔다. 가서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어딘가 다녀온다는 사실 자체가 필요했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밖의 경우에는 웬만하면 집에서 공부했다. 대학 시절에는 학교에서 나오기 싫어서 그냥 도서관에서 공부하거나 동아리 방에서 공부하기도 했지만 방학 때처럼 굳이 집에서 나갈 필요가 없을 때는 침대에서 뒹굴거리면서 책을 읽었다.
요즘도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는 장소를 별로 가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글을 아무 데서나 써도 쓸 수 있기만 하면 무조건 좋다, 같은 건 희망사항일 뿐이고 보통은 집에서 글감이 떠오르면 그 자리에서 글을 쓰고 밖에서 글감이 떠오르면 휴대폰이나 글감 노트에 간단하게 기록만 한다. 글쓰기에 대한 로망이 있다면, 내가 글을 어디서든 써야만 하는 상황이라서 연필 한 자루와 휴대용 연필깎이와 수첩을 항상 가지고 다니다가 난간이든 카페든 앉기만 하면 주섬주섬 수첩을 꺼내 연필로 쉬지 않고 글을 쓰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없으니 더욱 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하지 못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우선, 손글씨로 쓴 글은 언젠가 다시 키보드로 쳐야 한다. 옛날에 책을 내기 위해 손으로 쓴 글을 타자기로 옮겨야 했던 이야기는 많이 들어 보기는 했다. 그렇지만 그때는 요즘의 노트북 같은 글쓰기 도구가 노트나 종이 뭉치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휴대용 타자기가 많이 나오면서부터는 처음부터 타자기로 글을 쓴 사람들의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래도 몸을 잔뜩 웅크리고 내 안으로 빨려 들어갈듯한 자세로 내 글에만 집중하면서 연필로 뭔가를 쓱쓱 적어 나가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거장이라는 명성을 가진 화가가 붓 몇 번 휘둘러 눈이 부신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 같은 신화적인 면모가 있다.
그래도 가끔, 옛날 고등학교 때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던 때처럼 집에서 뒹굴거리고 책을 읽는 그런 것이 지겨워서 주말에 밖으로 나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글을 쓸 도구나 읽을 책을 챙겨서 가까운 카페에 간다. 글 쓰기 좋은 카페는 사람 구경하기 좋은 카페가 아니라 그저 다들 공부하는 분위기인 카페이다. 그렇다고 모두 노트북을 펴 놓고 리포트를 쓰거나 강의를 듣는 그런 곳은 오히려 부담스럽고, 공부하는 사람도 있는 와중에 깔깔거리는 소리도 나는 자유로운 곳이 좋다. 공부하거나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매우 조용한 카페도 있다. 그런 곳은 책을 읽기도 부담스럽다. 그냥 조용히 대화를 하는 곳이다.
체인점을 굳이 비교하자면, 내게 공부하기 좋은 곳, 글을 쓰기 좋은 곳은 투썸플레이스이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밖에서 보면 어두운 분위기인 것 같은데 막상 앉아서 책을 읽으려고 하면 어둡지 않다. 글을 쓰기에도 다들 노트북을 펴 놓고 뭔가 치고 있거나 강의를 듣고 있는 사람이 많아서 노트북이든 책이든 꺼내서 테이블에 올려놓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심지어 노트를 꺼내 아까 말한 대로 온몸을 웅크리고 연필로 손글씨를 쓰고 있어도 눈길을 전혀 끌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이다. 그런 곳에서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도 간단한 글을 쓰면 시간이 금방 흘러간다. 카페라는 특성상 테이블이 그리 넓지는 않아서 키보드에 손을 모으고 올리면 크기가 딱 맞다. 창가에 1인석이 있는 매장인 경우에는 콘센트도 있고 때로 USB충전이 되는 곳도 있어서 처음부터 글을 쓰라고 판을 깔아 주는구나, 싶을 때도 있다.
반면, 커피빈은 커피를 마시며 대화만 해야 하는 곳이다. 책을 읽어도 당연히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지점에 따라서는 공부하는 사람이 더 많을 때도 있지만 그런 곳은 단 한 군데밖에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곳조차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노트북을 충전할 콘센트도 없어서 혼자서 뭔가를 한다면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런데 막상 책을 꺼내 보면 그렇게 집중이 잘될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조용한 분위기이기도 하고 의자나 테이블 같은 것 때문에 신경이 쓰인 적도 전혀 없었다. 그래도 글을 쓰는 것까지는 해 보지 못했다.
용산에 글을 쓰기에 정말 좋은 카페가 하나 있다. 아니, 두 군데이다. 하나는 삼각지역 뒤쪽의 서울앵무새 카페. 3층에 올라가 창가에 자리를 잡고 길을 내려다보면서 글을 쓰면 순식간에 한 편이 뚝딱 쓰여진다. 꿈 이야기를 쓰러 설렁설렁 가본 적이 있는데, 통유리를 모두 열어 놓아서 마치 야외에서 글을 쓰는 느낌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집중을 하면 마치 야영을 가서 텐트 앞에서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이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그때 나는 글을 썼는데, 가끔 눈을 들어 밖을 볼 때마다 숨이 멎는 것 같았다. 하늘이 탁 트여서 그랬고, 노을이 멋있어서 그랬고 지나는 사람들이 너무 일상적인 느낌이어서 그랬다. 그중 하나만 빠져 있어도 뭔가 너무 특별해서 그냥 슬리퍼를 끌고 갈 만한 곳으로 기억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집에서 많이 걸어야 해서 자주 가지 않지만(한 번 가보고 아직 다시 가보지 못했다.) 더위만 끝나면 가볼 의향은 있다. 3층까지 있어서 자리는 많기 때문에 사람이 붐빌 것 같지 않은 오전 시간이나 평일 오후에 글이 잘 써지지 않으면 갈 만하다.
남영역에서 용산경찰서 쪽으로 가다가 골목으로 들어가면 오하요 도넛이라는 카페가 있다. 커피를 마시기에 넓은 매장은 아닌데 케이크와 아메리카노를 시켜서 가지고 들어가면 창밖을 흘끔흘끔 내다보면서 글을 쓰기 너무 좋은 환경이 된다. 글을 쓰라고 만들어 둔 별채 같은 느낌의 카페이다. 여기도 집에서 15분 정도 걸어야 하기는 하지만 걷는 동안의 더위를 희생하고도 갈 만하다. 탁 트인 느낌의 앵무새와는 정반대의 아기자기한 느낌이다. 커피를 마시다가 창밖과 테이블만 볼 때는 모르다가 실내를 돌아보면 마치 스머프 집 안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건 답답하다는 느낌보다는 뭔가 비현실적인 느낌에 가까워서 내가 가지고 온 것들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글을 쓰러 가면 마치 내게 편하게 글을 쓰라고 특별히 만들어 준 공간 같은 느낌이면서도 책을 꺼내면 그 책을 편안하게 읽힐 수 있게 해 주려고, 그 책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 같다는 것이다. 식사 시간에는 다들 밥을 먹으러 가지 빵을 먹으러 오지는 않을 것 같아서 식사 시간에 맞추어 가려고 노력은 하는데, 어쩌다 보니 결국 점심시간만 피하는 게 아니라 식후 커피를 마실 시간까지 다 지나고 나서 가는 것 같다. 물론 덕분에 여유롭게 글을 쓰고 책을 읽으니 손해는 아니다.
오하요 도넛에서 글을 쓸 때는 정말 느긋하게 머릿속에 필터도 거치지 않고 그대로 글을 쓸 수 있다. 신기한 것은 집에 있을 때, 오하요 도넛에서 내가 자주 앉는 테이블에 앉아 있다고 생각하고, 내 오른쪽 창문 밖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나 그 창문으로 햇빛이 비치는 상상을 하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것이다. 만약 연필 한 자루와 수첩 하나만 가지고 거리를 헤매게 된다면 아마 그 카페를 찾아가게 될 것 같다.
나는 사람을 사귈 때도 폭이 좁다는 소리를 자주 듣고는 하는데, 장소도 마찬가지여서 어딘가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좋다는 생각이 들면 그 장소들만 반복해서 방문하고는 한다. 카페도 서울이라면 아기자기한 곳을 찾으려면 찾지 못할 리가 없다. 하지만 나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것이 목적이지 카페 투어가 목적인 적이 한 번도 없기에 오히려 글을 쓰기에 좋은 카페를 찾는 데 한계가 있다. 대신 내가 원하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그런 일은 거의 없으니 장단점을 서로 상쇄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충분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쓰고 나오거나 집에서 들고 온 책을 다 읽고 나서 카페를 나서면 발걸음이 무척 가볍다. 그런 날은 집에서 나올 때 마음이 무거웠던 만큼에 비례해서 더 기분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가벼운 발걸음이 가벼울 수 있게 날개를 달아 준 것은 카페에서 누렸던 고급스러운 분위기이다. 어차피 내가 한 일은, 책을 읽었든 글을 썼든 집에서도 똑같이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똑같지 않을 수 있게 도와준 카페는 가격이 비싸든 비싸지 않든 그 분위기는 그보다 더 고급스러울 수는 없는 것이다. 커피 한 잔 값으로 그렇게 고급스러운 판을 깔아 주는데 다음에 또 가지 않고 배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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