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게구름

by 루펠 Rup L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이제는 거의 습관이 되어서 걷다 보면 어느새 하늘을 흘끔 올려다 보고 다시 앞을 보는 스스로를 발견하고는 한다. 하지만 단순히 위를 올려다보는 습관이 든 게 아니라 하늘을 보는 것이다. 걸을 때 단지 위를 올려다보는 게 습관이 되었다면 코엑스 같은 실내에서도 위를 흘끔흘끔 보아야 하지만 내가 습관적으로 올려다보는 것은 하늘뿐이다. 맑을 때도, 흐릴 때도, 비가 올 때 우산 속에서도 나는 하늘을 본다. 하늘의 모습에서 징조라던가 하는 뭔가를 읽을 수 없어도 좋다. 하늘 아래에서 하늘을 볼 수 있으면 왠지 안도감을 느낀다.
오늘 퇴근길에 지하철에 자리가 나서 앉았다. 지하철이라기에는 조금 긴 지상구간이어서 기다리는 동안 이미 땀을 흘리고 있었을 만큼 매우 더웠기에 의자에 앉아서도 등을 붙이고 앉을 수가 없어서 어정쩡하게 앉아 있었다. 등을 똑바로 세우고 무릎 위에 가방을 올려놓고 있자니 핸드폰을 보려고 해도 고개를 푹 숙이고 보아야 해서 핸드폰을 블루투스 이어폰에 연결해서 스포티파이 음악만 듣기로 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앞을 보니 지하철 안이 훤히 보였다. 빈자리가 군데군데 있을 법도 한데 맞은편 좌석은 자전거를 가지고 탈 수 있게 특수제작된 좌석이어서 다섯 명밖에 앉지 못했다. 이 칸은 모든 좌석이 맞은편(진행 방향에서 왼쪽)은 모두 다섯 자리만 앉을 수 있고 내 쪽(진행 방향에서 오른쪽)은 평소처럼 일곱 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여서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건너편에 앉아 있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가 휴대폰을 보면서 웃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여자는 고개를 다시 숙여 휴대폰을 보았고 나는 그 뒤의 하늘을 보았다. 퇴근을 하고 지하철역으로 걸어오던 길에 얼핏 본 뭉게구름이 그곳에 있었다. 지하철역에 도착해서 지하철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 짧은 시간 동안 잊어버린 풍경이었다.
사실, 비가 오는 먹구름의 검은 솜 같은 모습도, 흐린 하늘의 카펫 같은 모습도, 화창한 하늘의 막연한 파랑도 좋아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하늘은 뭉게구름이 피어 있는 파란 하늘이다. 딱히 싫어하는 하늘의 모습은 없지만 가장 좋아하는 하늘의 모습은 있는 셈이다. 뭉게구름은 파란 하늘 아래의 바위 같은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하늘에 있다. 우리와 다른 차원에 있지만 우리 옆에 있는 물체 같은 단단한 느낌.
계속 보고 있자니 뭉게구름이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 것이 보였다. 받침 같은 부분과 그 위의 조금 더 둥글고 조금 더 단단해 보이는 바위 같은 부분이었다. 바위 같은 부분은 받침 같은 부분보다 조금 더 빨리 움직였다. 아마 바람에 흘러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두께감에 비해 어두워진 부분이 없는 새하얀 색이었다.
대학 때, 종로에 있는 교보문고와 영풍문고에 갔다가 볼 일이 끝나면 종각역에서 1호선을 타고 바로 집에 올 수 있지만 뭉게구름이 있는 날은 606번 버스를 타곤 했다. 조계사 앞에서 회차하기 때문에 안국역이나 조계사 앞까지만 걸어가면 집 앞까지 앉아서 올 수 있었다. 지하철로 40분이면 오는 것을 버스를 타면 한 시간 반은 넘게 차 안에 갇혀 있어야 했지만 가끔 한두 번의 버스 여행은 하늘과 하늘의 구름을 보는, 그리고 땅의 사람들과 건물들을 보는 재미가 그쯤은 상쇄하고도 남았다.
서울에서 부천으로 가는 버스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운전석 쪽, 그러니까 왼쪽이 남쪽이었다. 그래서 내내 뜨거운 햇빛을 다 받지 않으려면 문이 있는 오른쪽에 앉아야 했다. 문쪽에 앉으면 버스를 타고 있는 내내 광화문과, 세브란스 병원과, 연세대학교와 한강을 볼 수 있었다. 등촌동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시내이기 때문에 반대편을 보아도 상관은 없었지만 그래도 햇빛이 직접 닿는 것보다는 닿지 않는 것이 좋았다. 햇빛이 쬐는 자리에서는 하늘을 볼 때도 얼굴을 찡그려야 했기 때문이다.
하늘이 가장 잘 보이는 것은 광화문에서 사직단 가는 길, 연대 앞, 한강, 마지막으로 신월동에서 부천으로 진입하는 사이였다. 그 밖에는 하늘을 보기 위해서는 건물들과 건물들 사이를 틈틈이 눈길로 헤집으며 보아야 했다. 그리고 내가 버스를 타기 좋아하는 시간은 오후 세 시경이였다. 더 이른 시간에는 버스를 탈 일이 거의 없었고, 조금만 더 늦어도 사람이 많거나 노을이 지려고 하기 때문이었다. 노을이 질 때는 뭉게구름이 아이스크림처럼 보이는데, 그건 그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끌리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뭉게구름이 있는 하늘이란, 새파란 하늘 앞을 가로막은 단단하고 새하얀 구름의 조합이다.
지상 구간이 끝나고 지하철이 지하로 들어갈 때, 지하철 밖이 순간적으로 깜깜해질 때, 그리고 창밖으로 간간이 하얀 형광등 불빛이 지나갈 때는 아쉽지 않았다. 뭉게구름을 보지 못하고 지하 구간으로 내려온 날이 너무나 많아서 오늘 같은 날은 마치 좋은 꿈을 꾸고 일어난 날의 출근길처럼 기분이 좋다. 그렇지 않은 하늘을 보았다고 기분이 나쁘지 않은 만큼 그런 하늘을 본 날은 기분이 더더욱 좋은 걸 보면 하늘은 나에게 나쁘지 않다. 보는 것만으로 어떤 때는 0이었다가 +1이 되는 일이 있을 뿐 -1이 되는 일은 없으니까. 이런 것을 '밑져야 전'이라고 하는 거겠지. 그러니까, 하늘을 보는 건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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