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일은 쉽다. 나 자신을 표현하고 마음속에 뭔가가 쌓이는 것을 예방하는 수많은 방법들 중 글쓰기만큼 쉬운 일은 없다. 글을 쓰는 것이 그렇게 쉽다면 왜 작가가 되지 않았느냐고 한다면 그것 역시 대답하기 아주 쉽다. 바로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닌 이상 쓰는 일이 힘들 수가 없다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노래를 부르는 것도 쉬운 일이지만 다른 사람이 듣기에 잘 부른다고 생각할 수준으로 부르는 것이 어려울 뿐이다. 내 생각에는 글을 쓴다는 것은 혼잣말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에서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이 함께해야 하는 활동이다. 아무리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이라도 혼잣말이나 메모는 하지 않는가. 그 메모가 문장이 되고 일기가 되는 것은 단지 결심만 있으면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과정이다.
남의 글을 많이 읽으면 내가 하고 싶은 말도 하나씩 생기게 마련이다. 그런 생각 없이 책을 단순히 읽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아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야 모든 것은 선택일 뿐이니까. 일단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나 보자는 생각으로 책을 읽는 사람이 책 몇 권 읽었다고 해서 해당 분야에서 누가 말만 꺼내면 쫓아가서 아는 척하면서 시비 거는 사람보다는 백배 낫다. 한 예로 이슬람 이야기가 나왔다가 무하메드의 조카 이야기가 나왔는데, 시아파와 수니파 쪽으로 갑자기 혼자 이야기를 끌고 가더니 그런 용어도 모르면 이슬람에 대해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결론을 내 버린 사람이 있었다. 만사가 그렇게 옳고 그름으로 나누어야 하고 그럴 의도가 없는 대화는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 사람은 솔직히 책을 읽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마 남에게 가서 대화로 시비를 걸어서 반드시 이겨야 하는 사람은 글도 제대로 쓰지 못할 것이다. 그런 글은 평론과 같아서 자기가 판관석에 앉아서 내려다본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 글은 쓸 수 없다. 평론은 참고하는 데라도 쓸 데가 있지 그렇게 만사를 아무도 원하지 않는데 쫓아가서 나눠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은 부르지도 않았는데 동물을 잡아 주겠다며 남의 밭을 헤집고 다니는 사람과 같기 때문이다. 나 같은 사람은 굳이 그런 사람이 없어도 사람들 사이에서 대화하는 것 자체가 에너지를 소모하는 유형이라 그런 사람들은 절대로 피해야 할 1순위이다.
생각이 머릿속에 생겨나면 그것은 기록을 해야 한다. 기록을 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지만 한 번 기록을 하고 나면, 그래서 그 기록을 몇 달 뒤에 읽어보고 '내가 저런 생각을 했다고?' 하는 경험을 한 번만 해 보고 나면 기록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이 많이 바뀔 것이다. 글을 쓰는 건 그렇게 단순한 생각의 그릇 역할을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글을 어렵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 그릇에 생각을 담아서 누군가에게 꼭 전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편지를 쓰면 보내야 하고 글을 쓰면 검사를 받아야 한다. 글쓰기 검사를 받고 칭찬받는 장면은 학창 시절을 보내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글을 받으면 뭔가를 고쳐야 하고 뭔가를 분석해서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 말고는 글을 보여줘 본 적이 없는 입장에서 글을 사람들 앞에 내놓는다는 것은 자격증 시험을 보는 것 같은 긴장 가득한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글을 쓰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글쓰기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글을 써서 남들 앞에 내놓는 것이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사흘과 나흘도 구분할 줄 모르면서 그걸 자랑이라고 오히려 남에게 그 말을 쓰지 말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어이없는 글을 해마다 접하게 되는 요즘이다. 그것을 욕하거나 옹호하려는 건 아니지만 뻔뻔하게 '그걸 모르는 게 내 잘못이냐?'를 따지는 사람들도 있는데 우리도 우리가 쓴 글을 읽고 혹평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이 글의 독자로 상정한 사람들의 범위에 들기나 하나?'를 따질 수 있는 자신감이 필요하지 않을까. 학생들에게 스스로 자신감과 자율성을 부여해서 살아가자는 말에 그럼 선생님들은 손 놓고 있으라는 말이냐고 하면, 이 글이 선생님들 읽으라는 글이냐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글을 쓰면서 놓친 건 글의 논점이 아닌 것이다. 논문이나 공적인 기사가 아닌 이상에야 글을 쓰면서 생각한 커다란 줄기가 있을 텐데 그 줄기에서 벗어나지 않고 할 말만 간결하게 쓰는 것, 수시로 곁가지로 빠져서 일부러 글자로 양만 채운 것 같지 않은 것, 읽는 사람만 신경 쓰느라 그다지 실질적인 고민은 진지하게 해보지 않은 글이 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컴퓨터 파일로 글을 보관할 때까지는 중요한 것이 어떤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하는가였다. 핸드폰으로도 원할 때는 휴대용 키보드에 연결해서, 컴퓨터가 있을 때는 컴퓨터로, 가능할 때는 생각의 속도를 잘 따라갈 수 있도록 전자책에 휴대용 키보드로 글을 쓰지만 어디에 글을 써도 내가 신경 쓰지 않고도 워드 파일에 시간 순서대로 잘 저장되는 것이 중요했다. 그때는 구글 드라이브에 '생각상자'라는 이름의 텍스트 파일이 있었고, 뒤에는 연도가 붙어 있었다. 그래서 '생각상자2022', '생각상자2023', '생각상자2024'가 있고, 해당 연도가 지나면 텍스트 파일은 PDF 파일로 다시 만들어서 수정이 되지 않게 만들어서 잘 저장해 두었다. 원래는 수정이 되지 않는 PDF파일만 만들고 작성하던 텍스트 문서나 워드 파일은 지워버리려고 했는데, 워낙 용량이 적다 보니 원본 파일도 함께 보관하고 있게 되었다. 그래도 원본이라는 개념은 필요하기에 백여 장 되는 분량이지만 모두 프린트를 해서 묶어서 보관하고 있다. 그때까지는 내 글을 누군가 읽는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옛날 손으로 쓰던 수첩도, 밑줄 그은 문장들을 옮겨 적던 노트도 다시 생각이 나면 혼자 펼쳐볼 용도로 만든 것이었지 그것을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 글을 그렇게 따로 번거롭게 보관하는 대신 온라인 공간을 이용하면 어떻겠냐는 말은 아내가 처음 해 준 말이었다. 혼자 잠깐잠깐 글을 쓰던 것이 조금씩 시간을 많이 잡아먹게 되면서 관심을 끌었던 모양이었다. 어느새 그전에 쓰던 수첩을 읽어보고 PDF 파일도 읽어보던 아내가
"이 정도면 누가 욕은 안 할 것 같은데 그냥 인터넷에 올리면 어떨까?"
하고 제안을 한 것이었다. 하기사 정치 같은 민감한 주제도 아니고 매일매일 단순히 느끼는 점이나 쓰는 것이고 회사 일도 회사에서 다 털고 퇴근한다는 주의라 글에는 별로 나타나지도 않아서 온라인에 쓴다고 해서 누가 쫓아올 만한 글은 아니라고 생각은 했다. 그렇지만 뭔가 께름칙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어서 생각은 해 보겠다고 하고 한두 달 동안 그냥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며 텍스트 문서만 조금씩 채워가고 있었다.
한두 달이 지나고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그 께름칙한 느낌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공개 자체로 글을 '검사받는다'라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었다. 그건 글을 쓰면서 절대로 가지면 안 되는 생각이다. 누가 내 글을 읽고
"글 더럽게 못 쓰네"
라고 댓글을 달아도 나는 그 사람에게 "당신 읽으라고 쓴 글이 아니다."라고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예쁘고 멋진 연예인도 안티가 있게 마련인데 아무것도 아닌 내가, 글을 취미 삼아 쓰는 것이나 다름없는 입장에서 그걸 걱정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다. 내가 쓴 글에 상처를 입을 만한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지만 단지 글을 못쓴다는 댓글을 달고 간다면 그 행동이 말이 되지 않는 것이지 내 글에는 잘못이 없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지만 그래도 비공개로 글을 올리면 상관없겠지,라는 생각도 한편으로 하고 있었다.
네이버에서 블로그를 개설하고 닉네임을 만들었다. 최근에 썼던 글 몇 편을 복사해서 넣고는 며칠 동안은 글을 텍스트 문서 대신 네이버 블로그에 썼다. 몇 편 되지는 않는다. 전자책에 글을 쓰고 복사해서 네이버 블로그 포스트 작성페이지에 붙여 넣는 플로우는 텍스트 파일에 쓸 때와 똑같이 그대로 유지했다. 그렇게 그 몇 편 되지 않는 글을 올리고 일주일쯤 지났을까, 아내가 다시 제안 하나를 했다.
"어차피 공개해서 올리는 거, 브런치에 올리자. 블로그는 돈 버는 목적으로 만든 블로그가 많아서 좀 그렇지 않아?"
그렇지만 나는 브런치는 글을 읽을 수만 있지, 글을 쓸 수는 없는 상태였다.
"이거 무슨 승인받아야 한다는데?"
이미 예전에 브런치 초창기에 한 번 티스토리 블로그로 신청했다가 떨어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지금이나 글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굳이 차이점을 찾자면 좀 짧았던 것 정도? 그래서 당연히 이번에도 잘 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글을 쓰고 공개하는 데 가장 쥐약인 그 생각,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자격을 평가하듯이 내려다볼 거라는 그 느낌이 다시 발목부터 기어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브런치는 작가 되려고, 책 쓰려고 하는 사람들이 글 올리는 데 아니야? 나까지 가서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아내는 생각이 달랐다.
"오빠 글 읽어보면 거기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그리고 작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글을 올리는 곳이 부동산 정보 얻거나 물건 팔려고 하는 사람들이 글을 많이 올리는 곳보다는 오빠처럼 순수하게 글 쓰는 게 좋아서 쓴 글을 올리기에는 더 어울리는 거 아니야?"
결국 사흘 간의 고민과 대화 끝에 신청은 해 보기로 했다. 대신 한 번만 더 떨어지면 다시는 브런치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하고. 그리고 블로그 글을 몇 편을 옮겨 놓고 블로그 주소를 적은 다음 신청을 했는데, 솔직히 글의 수로는 예전에 비해 턱없이 적었기에 기대를 하지 않았고, 막상 작가로 등록되었다는 메일을 받았을 때도 나는 네이버 블로그에서 포스팅을 수정하고 있었다.
이틀 정도는 네이버 블로그와 브런치에 같은 글을 올렸다. 그래도 블로그가 나름 신경 써서 만든 공간이라서 어떻게 관리를 해야 하나 하고 생각은 했지만, 생각보다 여의치 않았다. 어쩌면 브런치 글의 제목과 링크만이라도 계속 포스팅을 주기적으로 할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생각해 보면 애초에 온라인에 글을 올려 보자는 생각을 한 것 자체가 파일을 관리하면서 이것저것 은근히 신경 쓸 게 많았기 때문이었는데 그런 식으로 온라인에서 신경을 계속 써야 한다면 어쩌면 글을 공개한다는 것 말고는 다시 오프라인으로 텍스트파일에 작성하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결국 지금은 몇 편 올라가지도 않은 채로 네이버 블로그를 방치해 두고 있고 계속해서 브런치에만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는 도구는 휴대폰일 때도 있고 전자책일 때도 있는 상태로 그대로이다. 글을 쓰는 환경이 아니라 글을 저장하는 공간이 바뀌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공간이 공개된 곳이냐 아니냐는 고민은 덤이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게 되면서 글을 쓰는 습관도 조금은 바뀌었다. 혼자 볼 글이라면 어차피 내가 읽을 글이라서 퇴고라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한 달 뒤에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를 때가 종종 있었다. 특히 긴 글이 중간에 알 수 없는 문장에서 갑자기 이야기의 방향을 확 트는 경우, 그 문장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그냥 두 편의 글이 이상한 방식으로 합쳐져 있구나, 하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브런치에 글을 올리게 되면서부터는 적어도 문장들이 서로 연결이 잘 되는지 정도는 다시 보는 것이 공개하는 사람으로서의 예의이기 때문에 두세 번은 더 읽어 보게 된다. 어떤 때는 쓰는 시간보다 다시 읽으면서 고치는 시간이 더 많이 들 때도 있다. 게다가 나는 글을 일단 다 쓰고 바로 브런치 글쓰기 창에 붙여 넣기하고 나서 다시 읽는데, 휴대폰으로 고칠 때는 휴대용 키보드를 사용할 수가 없다는 커다란 단점이 있다. 이유를 모르겠지만, 방향 키로는 커서가 한 문단 안에서만 이동할 수 있는 희한한 제한이 있다. 이것이 오류는 아닌 것이, 문단을 다시 브런치 앱에서 나누면 브런치 앱에서 나눈 문단에서는 방향키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애초에 복사한 글에서 나뉜 문단들의 경우에만 그 문단 안에서만 방향키로 커서가 움직인다. 그래서 휴대폰으로는 어쩔 수 없이 직접 손가락으로 커서를 지정해 가며 고쳐야 한다. 그나마 맞춤법을 자동으로 체크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이것도 어차피 아예 말이 되지 않는 문장 같은 것은 알지 못하고 단순히 단어 수준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서너 번 다시 읽을 것을 두세 번만 다시 읽게 해 준다는 정도밖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희한하게도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을 때에 비해서는 읽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나 또한 브런치에서 다양한 종류의 글을 쓰는 사람들을 구독하고 있기에 내가 쓰는 종류가 누구와 경쟁한다는 느낌이 없어서일 것이다. 글을 나처럼 쓰는 사람들만 잔뜩 팔로우해서 그 글들만 읽는다면 누군가와 비교를 하고 내 글을 어떤 글과 비교하는 과정이 무의식 중에 계속 반복되겠지만, 시부터 시사, 역사, 경제, 일상생활에 대한 글로 집중해서 올리는 분들도 있다 보니 나는 그냥 나만의 글을 쓴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더 많은 글을 구독하면 좋겠지만, 구독한 글은 웬만하면 다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구독을 마구 늘리지도 못한다. 내 구독자도 조금씩은 늘어나는데 뭔가 기대하는 바가 있어서 구독을 한다면 내가 어떤 글을 써야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는 순간 원래 쓰던 글도 제대로 나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말이 많지 않은 대신 그것들을 글로 쏟아내는 사람이라서 글을 쓰지 못하면 아마 화병이 날지도 모르니 글을 쓰지 않는 쪽으로 가지 않으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된 것이 잘 된 일일까 한다면 잘 된 일이 맞다고 생각한다. 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하게 되었더라도 블로그에 공개하는 것은 아마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누군가 특정한 사람에게 글을 쓰면 그것은 편지라고 한다. 나에게 글을 쓰면 그것은 일기이다. 하지만 목적지가 없는 글도 충분히 있을 수 있고, 그 목적지 없는 글이 내 글의 특징이다. 허공에 사라질 혼잣말 같은 글이다. 그렇다면 내 글들은 있을 수 있는 곳 중 거의 최상의 자리에 와 있는 게 아닐까?
목적지가 있는 글이라고 해서 브런치에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특정 독자를 상정한 글은 브런치건 어디건 쉽게 볼 수 있다.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그런 글은 어울리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단지 허공에 사라지는 것 같지만 읽을 만은 한 그런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 어울리는 장소를 찾기 힘들다는 것뿐이니까. 그리고 조금의 욕심이 생겼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쓰는 것 정도라고 할까. 쓰는 건 자유이지만 재미있게 쓰는 것은 의무이다. 자유에 따르는 책임에 대응하자면, 글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유를 얻은 대신 최소한 재미있게는 읽히게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혹은 독자가 읽고 나서 자신과 상관없는 이야기라는 결론이 나더라도 시간을 버렸다는 생각은 들지 않게 하는 게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아직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연습생 같은 상태이지만 누가 이런 글을 읽을까 싶은 글들만 써재끼는 상태로 길게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은 점점 많이 하게 되었다. 브런치를 하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목표이다.
공개글을 쓰는 것이 내 글쓰기의 종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브런치는 밑줄만 치던 내가 밑줄을 그은 문장에 대해 한 마디씩 덧붙이게 된 것처럼 하나의 상태 변화일 뿐이다. 다른 서비스가 나오면 이동할 수도 있겠지만 온라인 공간이라는 점에서는 같기에 단지 수첩을 바꾸는 정도의 변화일 뿐일 것이다. 가끔 내 책을 출판한다는 것에 대해 꿈을 꾸기도 하는데, 솔직히 이건 모르겠다. 글만 쓰면서 살 수 있는 삶에 대한 로망은 더 이상 하루 종일 시간을 바쳐서 경제활동을 할 필요가 없는 여유로운 삶에 대한 동경에 가깝지, 책을 출판해서 그걸로 생계를 유지한다는 생각과는 약간 멀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떤 형태로 글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글은 계속해서 써 나가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조그마한 목표들을 세우고 이루어 나가다 보면 나중에 내 글을 읽으며 피식하는 독자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