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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p L Aug 24. 2024

가위에 눌렸다

내게 가위에 눌리는 것은 드물거나 특이한 일이 아니다. 일주일 내내 밤마다 한 번씩 가위에 눌렸을 때는 조금 심한 경우였기는 했지만 가끔 눌리는 것은 나쁜 것도 아니고 신기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가위에 눌렸다, 눌릴 뻔했다,라고만 알고 넘어가는 경우와는 조금 다른 일이 오늘 새벽에 있었다.
나는 경험상 가위에 눌릴 것 같을 때 가위에 눌리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가위에 눌린다는 것 자체가 불쾌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냥 가위에 눌린 채로 잠들어 버리면 편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는 그냥 몸이 치료 모드에 들어가서 기능 정지가 되었구나, 하고 편하게 맡기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잠도 잘 오고 아침에도 가위에 눌렸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데다 가위에 눌린 것치고 잠에서 깨고 난 후에도 별로 피곤하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그렇게 내려놓으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가위에 눌리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그 최선조차 바로 잠이 들지 않도록 약간의 활동이 필요해서 아침에도 피곤한 상태로 깨게 된다. 보통은 몸이 힘든 날 많이 일어나는 현상이라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보통은 짐작하는 편이기는 한데 오늘은 조금 특이했다.
이런 현상의 시작은 꿈속에서 갑자기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다. 꿈의 내용과 관계없이 꿈속에서 기분이 나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집에서 생활하는 꿈이라면, 갑자기 다락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데 모두가 나에게 다락에 올라가 보라고 한다던가 하는 장면이 생기는 것이다. 이유 없이 경찰이 나를 찾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갑자기 깨닫고 창문으로 내다보면 실제로 저쪽에서 사이렌을 울리며 경찰차가 다가오고 있다. 나를 찾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도망가게 되는데, 주변 환경이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사람들이 갑자기 어디 가느냐고 화를 내면서 옷깃을 붙드는가 하면, 집 밖으로 도망가고 나면 길이 없어져 있다던가 해서 시내 한복판에 있는 집이 배경이었는데 버스정류장 가는 길이 갑자기 숲이 되어 있다던가 하는 일들이 생기게 된다. 한 번은 그래서 그대로 경찰에 붙들려 간 적이 있는데, 경찰차 안에서 경찰이 뭔가를 물어보았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어서 사실대로 대답을 했는데 경찰이
"대답이 필요해서 묻는 게 아니니까 대답은 안 해도 돼."
라고 말하더니 나를 보면서 씨익 웃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수갑을 찬 몸을 흔들려고 했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허리도 돌리지 못하고 무릎을 들어 보려고 해도 다리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억지로 몸부림을 치려고 막 움직이다 보니 어느 순간 몸이 움직이면서 경찰차 문을 부수고 차 밖으로 떨어지고 경찰차는 그냥 지나가 버렸는데, 그 상황에서도 '무슨 자동차가 이렇게 친다고 문이 열리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문 쪽에 경찰이 한 명 더 앉아 있던 것이 생각났다. 내가 그 경찰관을 지나 문을 부수고 내렸으니 어쩌면 그 경찰관이 문을 열어준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머리가 혼란스러워지던 그 순간, 나는 내가 침대에 누워 있다는 것을 알았다. 눈을 감으면 다시 그 숲으로 돌아갔다가 눈을 뜨면 침대 머리맡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눈을 뜨고 있어도 저절로 눈이 감겼다. 피곤한 상태에서 가위에 눌리는 것이라면 눈이 저절로 감기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일어나서 화장실이라도 갔다 오려고 하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자기에는 그 악몽이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눈을 감고 싶지도 않았다.
오늘 새벽에도 정확히 같은 일이 있었다. 단, 꿈의 배경이 집 안에서 편안하게 지내던 상황은 아니었고, 말레이시아에 무슨 일이 있어서 놀러 갔던 상황이었다. 가족들 생각은 전혀 나지 않는 것을 보니 순수하게 꿈속에서 창조된 배경이었던 것 같다. 어쩌다가 산이 보이는 마을 끝까지 나왔는데 갑자기 기분이 나빠진 것부터만 기억이 난다. 꿈이라는 확실한 자각은 아니지만 가위에 눌릴 것 같다는 생각은 드는 그런 어중간한 상태였는데,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내 등을 밀어서 숲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마치 자다가 떨어지는 꿈을 꿀 때처럼 순식간에 내 방이 보였다가 꿈속으로 다시 돌아왔다. 내 방을 보았다는 것은 순간적으로 눈을 떴다는 뜻이고 이것은 곧 내가 무의식 중에 이 숲이 꿈인 것을 깨닫고 만약 여기서 기분 나쁜 상태가 계속되면 현실의 나는 가위에 눌릴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상태가 된 것이다. 그래서 다시 눈을 떴다.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순식간에 다시 눈을 뜨고 방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저절로 다시 눈이 감기면서 숲으로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등에 떠밀려 들어온 산 입구가 아닌, 정글 한가운데 같은 곳이었다. 시멘트 담이 어딘가로 보여야 하는데 어디에서도 아스팔트도, 시멘트도 볼 수 없었다. 그때, 열몇 살 되는 남자아이들이 내 주변을 둘러쌌다. 스무 명 정도 되어 보였는데 뭐라고 마구 소리를 질러 댔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도 '만약에 꿈이라면 내가 내 꿈에서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알아 들어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아이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각자 한 명이 한 문장을 반복해서 말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스무 명 정도이니까 스무 개 정도 되는 문장들이 무한반복 재생되고 있었던 것인데, 아이들도 정확히 나를 건드릴 생각은 없는 것 같은 데다가 허공을 바라보며 말을 하고 있었기에 그런 말조차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없지는 않았다. 어쩌면 꿈이라는 것을 자각은 하지만 스스로 인정하지는 않은 그런 어중간한 상태였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 아이들이 하던 말들 중 기억에 나는 것 몇 문장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옛날 이곳에 들어온 일본군이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돌아가지 못한다."
"우리는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버렸다."
"우리는 너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너는 다시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밤 동안만이라도 우리와 함께 있어라."
그 말이 이해가 가는 순간, 기분이 나쁜 이유가 가위가 눌릴 예정이기 때문이고, 그대로 잠이 들면 악몽 상태로 빠지게 될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꿈을 꾸다가 눈을 뜨는 법을 모른다. 아직도 그렇게 눈이 떠지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그전에도 곰이 아직 학교에 다니던 나를 찾으러 학교를 습격한 꿈을 꾼 적이 있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잠에서 깰 때까지 꿈속에서의 담임선생님 자동차 트렁크에 들어가서 숨어 있었던 적이 있었다. 꿈인데도 트렁크 안에서 바깥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잠에서 깨고 나서도 하루 종일 피로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오늘도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나를 꿈 내내 따라다니겠다는 것도 아니고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게 하겠다는 그런 끔찍한 말을 들었더니 더 필사적으로 눈을 뜨려고 했던 것인지 모른다.
적어도 여덟 번은 눈을 뜨고 방을 보았다가 금세 저절로 눈이 감겨 정글로 돌아갔다가를 반복했다. 중간부터는 그냥 정글만 보인 것이 아니라 아예 가위에 눌리려고 했다. 필사적으로 눈도 뜨면서 온몸을 흔들었다. 꿈속에서는 가만히 팔에 힘을 뺀 채로 서 있는 자세였다. 실제의 나는 오른쪽으로 돌아누워서 팔을 베고 있었다. 나중에는 결국 팔에만 힘을 주어서 팔을 위로 좍 펼쳐서 머리가 침대에 떨어지면서 가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때 다시 눈을 감으면 그 꿈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 악몽이 이어지면 또다시 가위에 눌리기 십상이다. 나는 가위에 눌린다는 건 수면 사이클 상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그 사이클만 깨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일어나서 화장실에 갔다가 나와서 차가운 물을 반 컵 따라서 마신 후 휴대폰을 켰다. 영어 이메일을 하나 골라서 입으로 소리 내서 읽은 후 어느 정도 수면 사이클이 밀렸겠다 싶을 때 다시 휴대폰을 충전 케이블에 연결하고 침대에 누웠다. 수면 사이클이 바뀌어서 가위만 눌리지 않을 것 같다 싶으면 곧바로 다시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휴대폰에 푹 빠져서 잠이 달아나고 나면 결국 몇 시간을 허비하게 되고 그래서 그날이 피곤한 하루가 되면 밤에 또다시 가위에 눌리지 않으려고 사투를 벌여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개운하게 잠에서 깨었다. 가위에서 깔끔하게 한번 더 벗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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