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꿈이야기

지혜의 나무

by 루펠 Rup L

4년이나 흘렀지만, 그 꿈을 잊을 수가 없다. 꿈속의 꿈. 하지만 너무나 강렬해서 거의 3일 동안 꿈을 기억하고 그 행복에 젖어 지냈다. 사랑이나 개인의 행복에 관한 꿈이 아니었다. 세상 자체에 대한 꿈이었다. 내 인생은 그때 그 꿈을 기점으로 바뀔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인생은 그 꿈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질 뿐이었다. 내 인생은 정말로 바뀔 수 있었던 것일까?


나는 길을 걷고 있었다. 단지 여유로워서, 내가 하는 일과 다니는 회사를 모두 기억하고 있었지만 대학교 시절 같은 기분으로 차들이 다니는 대로 옆을 걷고 있었다. 처음 보는 거리였지만 서울 어딘가일듯 싶었다. 가로수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거리를 따라 빌딩이 늘어서 있었고, 대형 빌딩이 아닌 곳에는 하나같이 뭔가 가게가 있었다. 식당 체인도 있고, 카페도 있었던 것이다. 그 길에서 편의점이나 분식집은 볼 수 없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나중에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보기 위해 남부터미널 역에서 걸어가면서 꿈에서 본 그 거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었다고 하면 도움이 될까? 그런 길을 한참 걸었다.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지만 늦가을인 양, 긴팔 웃옷을 입고 있기는 했지만 햇볕 덕분에 따뜻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모를 길을 나는 목적지를 알고 걸었다. 그곳의 나는 목적지를 알고 있었다. '그곳의 나' 안에서 밖을 보는 나는 목적지를 알지 못했다. 분명히 둘로 나뉘어 있었지만 그때는 구분할 수 없었다. 이렇게 자각하는 나와, 실제로 그 세계를 살고 있던 나. 그래서 나는 발걸음이 닿는 대로, 내가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자연스럽게 따라가기로 했다. 중간에 카페에 들러 아이스커피를 사서 나왔다. 나와서야 빨대를 가지고 나오지 않은 것을 깨닫고 다시 들어가려고 했으나, 왠지 카페는 두 번 들어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그냥 뚜껑을 열고 컵처럼 홀짝거리면서 걸어갔다.

한 블록쯤 가서 사거리가 나오자 우회전해서 길을 건넜다. 거의 다 온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면서 홀짝홀짝 마시는 사이에 커피를 절반이나 마셔버렸다. 아이스커피라서, 그리고 한창 걷던 중이어서 빨리 마신 것 같았다. 길을 건너면서 마지막까지 다 마시고 얼음만 남아 있는 컵을 신호등 옆 쓰레기가 쌓여 있는 곳에 플라스틱 쓰레기가 모여 있는 그물망이 열려 있어서 그곳에 잘 넣었다. 얼음은 알아서 녹아서 물이 되어 흐를 것이다.

바로 옆에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이라고는 하지만 차 두대는 충분히 다닐 수 있는 폭이다. 무슨무슨 도서관으로 가는 길이라고 쓰여 있다. 조금 더 걸어가자 하얀 담장이 나왔다. '그곳의 나'는 익숙한 듯 담장을 끼고 따라가서 도서관 안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나무 대문이 열려 있었다. 들어가니 조그마한 조약돌들이 잔뜩 깔려 있고 그 가운데로 징검다리 같은 것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 징검다리를 밟고 따라가자 유리로 된 벽과 가운데 현관문이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곧바로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로 내려가자마자 직원 하나가 서 있었다. 나를 쳐다보았는데, 내가 할 말이 있을 리가 없었다. 둘이 어색하게 20초 정도 마주 보고 있다가 그가 말했다.

"지혜를 보러 오셨군요. 이쪽으로 오시죠."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어떻게 아셨죠?"

"지혜를 보러 오셨어요. 모르실 수도 있지만 지혜를 보러 오신 거예요."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연한 이야기를 듣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그가 열어준 문으로 들어가자, 허리 높이밖에 오지 않는 서가들과 거기에 꽂혀 있는 두꺼운 책들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간간이 앉아서 자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가 문을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가 말했다.

"그럼, 끝나시면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는 문을 살며시 닫고 나갔다. 허리 높이밖에 오지 않는 책꽂이들은 꽤나 많았다. 세 사람이 나란히 걸어갈 수 있을 만한 폭의 통로를 두고 거의 200평 가까운 공간이 서가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그 골목들을 돌아다니면서 본 사람들은 모두 눈을 감고 있었고, 이상하게도 책들은 책등에 제목이 쓰여 있지 않았다. 분홍색 책을 하나 꺼내서 펴 보았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백지였지만 백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대여섯 권을 펴 보았지만 지혜를 본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눈을 감고 있던 여자 하나가 눈을 살며시 뜨더니 나를 쳐다보았다.

"손님이 아니시네요."

"네?"

"지혜를 보러 오신 분이시네요. 저희 고객분들은 책을 읽으시는데 지금 글자가 보이지 않으시는 것 아닌가요?"

"맞아요."

나는 약간 당황하며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웃으면서

"책을 이해하려고 해 보세요. 지혜는 알고자 하면 알려 줍니다. 글자 취급을 하면 그냥 a, b, c라고 쓰여 있는 걸 보는 것 이상도, 이하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책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이해하려고 합니까?"

그러자 여자가 책을 한 권 꺼내서 내 이마에 대었다. 이마가 갑자기 따뜻해졌다. 눈을 감으니 빛이 보였다. 눈을 떠 보면 아무것도 없지만, 눈을 감고 있으면 마치 눈앞에 밝은 광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광원이 있어봤자 눈을 뜨면 보이지도 않으니 신경 쓰지 말자고 생각하는 순간, 책의 내용이 쏟아져 들어왔다. 강의하는 것 같기도 하고 영상물을 틀어 주는 것 같기도 하고, 옛날이야기의 형태로 전달해 주는 교훈 같기도 한 것들이 순식간에 머릿속에 들어왔다.

"지혜를 보셨네요. 방금 느끼신 게 이 책의 지혜예요."

하지만 내용은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제가 살던 곳에 대한 책도 있나요?"

당연히 내가 살던 곳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할 줄 알았지만 그녀가 말했다.

"어딘가에는 있을 테지만 겉에 설명이 쓰여 있는 책이 없으니 일일이 머리에 빛을 비추어 보아야 해요."

"그럼 서가에 머리를 대고 걸어 다니면 되나요? 이렇게 숙이고?"

"그러셔도 되고..."

그녀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놀라지 않으실 거면 쉽게 하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놀라지 않을게요."

"알겠어요."

그 순간 아무 경고도 없이 몸이 떠올라서 앞으로 엎드린 모양이 되었다. 위로 올라가지도, 아래로 내려가지도 않았다. 팔로 휘저어서 자세를 잡으려고 했지만 팔만 허우적거렸다.

"호흡으로 조절해야 해요. 잠깐 심호흡해 보세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위로 올라가려는 것 같았다.

"지금 떠오르려고 하는데, 그때 원하는 그 정도에서 숨을 턱 막으면 돼요. 그러면 흐름이 막히면서 흐름이 있는 곳에서 막히는 방향으로 떠오르게 되어 있어요. 내려가는 것도 마찬가지니까 내려가는 걸 해 보죠. 숨을 내쉬다가 턱 막아 보세요."

심호흡하면서 숨을 크게 내쉴 때 숨을 턱 막았더니 순식간에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그렇게 위아래, 양 옆으로 움직이는 것을 배운 후에야 앞으로 움직이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뒤로 가는 것은 위험해서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렇게 엎드린 상태로 서가 바로 위에서 돌아다니니 가까운 데 있는 책이 밝아지면서 나에게 제목이나 간단한 내용들을 말해 주었다. 하지만 다니다 보니 내용들이 나쁘지 않아서 집정리를 하다가 책이 나오면 한 권씩 읽게 되는 것처럼 서가 맨 윗줄에 있는 대부분의 책들을 다 읽어버렸다. 지구의 탄생부터 생명이 생긴 '목적'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더 지혜다운 지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찰나, 아까 그 여자가 다시 나타나서

"지혜가 욕심이 생기죠?"

라고 물었다.

"어떤 욕심 말씀이세요?"

"지금 눈을 감으세요. 진짜 지혜를 보여드릴게요."

"여기 보이는 것보다 비싼 책이 있는 건가요?"

"책하고는 달라요. 지혜 그 자체, 이 도서관을 만든 그 힘이에요. 지혜를 읽은 사람만 볼 수 있어요."

내가 혹시나 해서 물었다.

"혹시 제가 실제로 지혜를 읽은 첫 번째 사람인가요?"

"당연히 아니죠."

"알겠습니다. 그럼 처음도 아닌데 뭐 긴장할 것 없겠네요. 보여주세요."

"그럼, 몸을 편안하게 쭉 피고 눈을 감으세요."

그리고 잠시 후 그녀가 책을 가지고 왔다. 그 책은 가까이 오기도 전에 빛이 느껴졌다. 잠시 후 나는 잔디밭 위에 있었다. 잔디밭에는 햇빛은 아니지만, 안개 낀 날 보이는 햇살 같은 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는 커다란 한 두아름은 되어 보이는 나무가 서 있었다. 주위에는 잔디밭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서 앞으로 가서 나무에 손을 짚었다.

"지혜를 보거라."

깜짝 놀라서 뒤돌아 보니 한 노인이 서 있었다.

"놀랄 것 없다. 지혜를 보거라. 그 자리에 편안하게 앉아서 머리를 나무에 기대면 모든 준비는 끝난다."

"네"

나는 쭈뼛거리면서 노인이 하라는 대로 했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 옆으로 머리를 나무에 대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음과 동시에 우주의 탄생부터 모든 생물들과 인과 법칙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식과 거리가 멀었다.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복잡하고 체계적이지만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우주가 탄생한 원인이 생물을 위해서는 아니지만 생물이 탄생한 이유와 같았다. 이유와 원인은 엄연히 다르다. 이유에는 의지가 담긴다. 원인은 단지 인과율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유는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 생명과 우주가 연결되어 있다. 그중에서 태양계, 그리고 지구가 선택된 것 역시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공기가 이 만큼만 붙들린 이유, 지금 이 순간에 독수리가 땅을 짚은 이유부터 달팽이가 잠시 쉬었다가 나뭇잎을 먹기 시작하는 이유까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었고 모든 것이 모든 것의 원인이며 모든 것이 모든 것의 존재 이유가 되었다. 이 세계는 그 자체로서 완전한 것도 아니었고, 우주는 불완전하지도 않았다. 나는 완전한 사람은 아니지만 나 자신은 불완전하지 않다. 모든 지혜는 나에게 살며시 암시를 해 주고 있었다. 이유 없는 것도, 목적 없는 것도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고. 대충 이렇다는 거고 실제로는 법칙을 한 문장으로 쓸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직설적이며 종교적이었으며 포괄적이었다.

세상을 깨달은 나는 나의 미래, 사회의 미래가 모두 당연히 결정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인생도 보였고, 앞으로 어떤 삶이 될지도 알았다. 모두 '이유가 있는' 인과율로 연결되어 있기에, 하나라도 다르게 가면 우주가 존재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무서움보다는 그 진리를 확인한 것에 대한 기쁨이 더 컸다. 잘 모르는 문제를 풀어냈을 때의 기쁨과 같은 종류이지만 어마어마했다.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지며 다시 노인이 나타났다. 노인이 나에게 물었다.

"미래를 보고 있나?"

"네. 잘 보입니다."

"지금 자네는 자고 있고 이건 꿈이야. 이제 선택을 할 수 있네."

"어떤 선택 말씀이십니까?"

"자네는 지금 지혜를 머릿속에 담고 있네. 그 지혜를 가지고 살 수 있어. 잊고 싶지 않다고 하면 꿈에서 깨서도 기억하게 해 주겠네."

"잊고 싶다고 하면 바로 잊어버리나요?"

"바로는 아니지만 잠에서 깨면 기억나지 않을 거야. 그 지혜를 본 기억은 있지만 무엇이었는지는 모르는 거지. 그게 정말 꿈 답지 않겠는가?"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걸 알고 나가면 지금 지식으로도 충분히 부자가 될 수 있다. 또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으니 이치대로 돌아가는 세상만 감상해도 충분히 즐거울 것 같았다. 하지만 선택이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잠시 후 내가 입을 열었다.

"선택할게요."

"그래, 말해 봐."

"꿈에서 깨면 잊어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안 그러면 인생이 의미 없는 시간이 되어 버려요. 재미가 없는 것도 그렇지만 만약 기억을 하게 된다면, 그 지혜를 알게 된 조금 전이 인생의 절정일 거예요. 내내 내리막일 거라는 걸 알고 산다면 부자가 되어도 소용이 없겠죠."

"알겠다."

"잘 선택한 건가요?"

"그래. 어느 쪽이든 자네의 선택은 옳아. 감당이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은 다음 문제고, 선택의 주체는 자네니까."

"감당을 못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이미 여럿 보지 못했나? 머릿속에 있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 머릿속에 있는 것이 일부라도 진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나?"

"모르겠어요."

"우주가 붕괴된다는 건 세상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는 거지. 하지만 우주가 붕괴되는 미래를 자네가 인식한다는 것은 실제로 우주가 붕괴된다기보다 자네의 세상이 무너진다고 보는 쪽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하네. 아무튼 이제 나무가 보이지 않으면 잠에서 깬 거야. 일어나서 도서관 밖으로 나가게."

그런데 나무가 어디 있는지 찾아보기가 무섭게 눈을 뜨자마자 아까 그 여자분과 책꽂이들이 눈에 띄었다.

"일어나셨네요?"

"저 나가야 해요."

"맞아요. 기억하세요. 여기는 찾아온 게 아니라 초대받아서 온 거예요. 누구든 올 수 있지만 자기 의지로 오는 사람은 없어요. 그리고 선택을 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 행운인 사람들도 있고요."

그런데 나는 아직도 지혜를 모두 받아들였을 때의 황홀감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의 이치도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저, 일어나면 잊어버릴 거라고 했는데 아직도 다 기억하고 있어요. 어떻게 된 거죠? 시험이었나요?"

"아니요, 깨어나면 잊어버릴 거라고 한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지혜를 받아들일 때, 지혜 자체가 사람에 비해 너무 크니까 그 모든 해답들이 들어맞았을 때의 기쁨은 바로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아무튼 전부 이치대로 흘러갈 거니까 쓸데없이 의심하고 관찰하느라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 자, 저 문을 직접 열고 나가시면 아까 안내하던 분이 입구까지 안내할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문까지 날아갔다. 앞으로 힘을 주자 문은 힘없이 열렸다. 나는 공중에 뜬 상태로 안내하던 사람 앞에까지 갔다. 계단 근처로 가자 저절로 몸이 내려와 두 다리로 섰다.

"여기선 못 날아다니나 보네요?"

"지혜를 읽을 때만 가능합니다. 지혜가 하는 일이라서 그렇습니다."

"여기 다시 올 수 있나요?"

"모르겠습니다."

"사람마다 다른가요?"

"그렇다면 그렇게 이야기했을 테지만, 저는 몰라서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냥 걸어 올라가서 문 열고 나가면 되지 않나요?"

"아니에요. 그 현관문으로 나가면 안 됩니다. 따라오시죠."

그를 따라 계단을 다 올라가자 왼쪽으로 가면 나오는 유리벽이 아닌 오른쪽으로 가서 보이는 투박한 녹색 철문을 열었다.

"여기로 가면 아까 그 길하고 다른 데가 나오나요?"

"네."

"길 잃어버릴 것 같은데..."

"길 잃어버리셔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딱히 반문한다고 대답이 제대로 나올 것 같지도 않아서 가볍게 목례를 하고 철문을 통해 나왔다. 철문 안에서 내다보았을 때는 주택가 같아서 아까 들어올 때의 하얀 담 어딘가가 나올 줄 알았는데, 가까이 갈수록 모르는 곳이었다. 그리고 몸이 문을 완전히 통과했을 때, 알람이 울렸다.


순식간에 깨어났다. 눈을 떠 보니 일곱 시 반이다. 이제 세수하고 출근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지혜를 온몸으로 받았을 때의 황홀감은 그때부터 이삼일이나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모두 이미 꿈속에서 본 내용일 것 같았다.

'이럴 수밖에 없으니 이런 거야.'

그 지혜가 사실이건 아니건, 그 꿈은 그 이후의 나의 인생에 매우 많은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모든 것의 해답과 모든 것의 목적을 알지 못하고 사는 것이 알고 살아가는 것보다 재미있을 거라서 기억하지 못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 나였으니, 살아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꿈속에서

'그렇게 다 알고 살면 재미도 없을 것 같고, 다 알고 보니 전부 알지 못해도 그다지 나쁜 삶은 아닌 것 같아서'

라는 이유로 지혜를 기억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기억을 한다. 그 경험이 삶에 아주 큰 힘이 되어 주고 있다. 아마도 그 지혜를 잊어버리지 않은 채로 깨어났다면 미쳐버리지 않았을까, 내 인생은 계속되더라도 행동이나 생각이 남들이 보기에 미친것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판타지 같은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곧 다시 생각하기를,

'그 정도로 다 알고 있어서 지루해지면 차라리 죽는 편을 택할지도 모른다'

나는 꿈 하나로 새 인생과 같은 나머지 인생을 선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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