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꿈의 세계에 뭔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게 뭔지 파헤치는 건 탐구의 영역일 텐데, 그런 것에 관심이 있는 편인 것은 아닙니다. 꿈의 세계에 너무 가까이 갔다가 위험해진다거나, 꿈속에서 깨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꿈에서 영원히 깨지 않는다거나 하는 것도 믿지 않습니다. 꿈에서 깨고 싶지 않다고 해서 깨지 않을 수 있다면 꿈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뇌가 우리 몸과의 링크를 잃어버리는, 어떻게 보면 마비 증세까지도 연결을 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지요. 그렇게 되면 단순한 탐구가 아니라 과학 지식 자체가 발전하고 공유되는 시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딱히 그런 이유 때문에 관심을 가지지 않겠다는 건 아니고, 그냥 관심 차원에서의 '가정'일 뿐이라 심각하게는 생각하고 있지 않은 상태 정도겠지요. 꿈에서 본 것이 반드시 진리일 것이다, '일상의 꿈이 아닌 이상은 우주의 신비, 또는 혹자가 말하는 인류 전체의 잠재의식에 맞닿아 있다'는 말에 대해서도 엄밀히 반신반의입니다. 어떤 의견도 자신 있게 아니라고 하지는 못하지만 마찬가지로 그중 하나를 선택하겠다는 말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제가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 내려고 했다가는 몇십 년이 걸려도 생각해 낼 수 없었을, 전혀 저와 상관없어 보이는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꿈에는 있는 듯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상상력이라고 하기에는 절묘하고 그렇다고 거짓말이라고 마냥 매도하기에는 너무 그럴듯한 뭔가가 가끔 꿈에서 튀어나오곤 합니다. 모든 꿈이 그렇지는 않고, 일상이 그대로 반영된 꿈을 꾸는 일도 많지만 간혹 그렇게 '내 꿈이 아닌 것 같은' 꿈을 꾸면 그것을 다듬어야 할 희귀한 돌처럼 생각합니다. 이 비유 역시 언젠가 꿈에서 빌려온 표현입니다. 그 꿈에서는 사람들이 꾼 꿈을 동글동글하게 다듬어서 보관을 했습니다. 저에게 있어 꿈을 다듬어서 보관한다는 것은 뿌연 배경을 제거하고 일상적인 언어로 기록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야 다음에 읽고 기억을 할 테니까요. 실제로는 이런 과정을 거쳐서 글을 쓰고 나면 그 꿈은 잊어버리지 않기는 합니다.
하지만 꿈을 꾸고 불쾌하게 일어나는 일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오늘도 절대 기록하기 싫은 꿈을 꾸었는데, 배경이 특이하고 글을 쓸까 말까 했을 정도로 자세하지도 않아서 빈둥빈둥하다 보니 꿈에 대해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정리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제가 대학교 때 알바를 했는데, 모 화장품 브랜드에서 길거리에서 샘플을 나눠주는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알바가 없겠지만 그게 단순히 샘플을 나눠주는 게 아니라서 거부 반 능력 반으로 실적이 '0'이 되어 이틀인가를 길거리에서 보내고 돈은 한 푼도 받지 못한 기억이 납니다. 샘플을 다른 사람 앞에 내밀고 줄 것처럼 하다가 받으려고 하면, "설문 응답 하시면 선물드려요"라고 해서 실제로는 설문지와 샘플을 교환하는 일이었습니다. 설문지라고 해도 핵심은 이름과 전화번호였지요. 샘플 하나 준다고 개인정보를 받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아무래도 자기가 스스로 와서 '그거 적어드릴게요, 샘플 주세요.'라고 하는 게 아니라면 도둑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 건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 그렇게 했다가는 책임자는 당장 검찰에 불려 가겠지요.
어쨌거나 그때 저는 스스로 남들 앞에서 거짓말을 하거나 불특정 다수에게 뭘 나눠주거나 하는 일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딱히 방학 때라 손해 볼 것도 없었고 종로 거리, 명동 거리여서 사람 보는 재미도 있었기에 시간을 버렸다거나 하는 이유로 싫지는 않았습니다. 스스로도 조금 더 잘 알게 되었고요. 하지만 긍정적으로 본다는 것이지, 실제로 좋은 경험이었다거나 또 할 수 있다거나 하는 것과는 다른 얘기입니다.
오늘, 명동 거리에 나가서 4호선 지하철을 타기 위해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누어 주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래도 실제와 달리 개인정보를 달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전단지는 그때처럼 화장품 업체가 아니었고, 제가 어떤 회사가 어렵다는 기사를 보고 '이런 산업은 꼭 성장해야 해!'라고 생각하고 무엇을 도와드릴까 스스로 찾아갔는데, 도와달라고 한 게 이 전단지, 이미 찍어 놓은 전단지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달라고 한 것이었습니다. 스스로 찾아갔으니 돈 안 받으면 그만인 정도가 아니라 실제 압박감이 들었습니다.
그 회사에서 개발한 것은 로봇에 들어가는 범용 회로였습니다. 20여 년 전, 8051이라는 칩으로 웬만한 것은 어셈블리어나 C, C++ 같은 것으로 할 수 있었던 시기에 지금으로 보면 라즈베리 파이 같은 회로를 만들어 팔려고 한 것입니다. 작은 회로에 입출력 단자들이 있고, 납땜 같은 것도 필요 없이 브레드보드처럼 케이블을 조립해서 모터 같은 것들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프로그램 역시 따로 기계를 갖다 놓고 컴파일 한 파일을 넣는 과정(굽는다고 합니다. 여기서 CD를 굽는다는 말이 나왔을 겁니다.)을 거칠 필요 없이, 그냥 컴퓨터의 USB 단자를 통해 파일을 이동하면 나머지는 그 회로에서 알아서 합니다. 당시에 칩을 굽는 기계는 칩 제어를 하기 위해 당연히 써야 해서 학과에도 몇 개씩 굴러다녔는데, 이런 아이디어가 실제 있었다면 대박을 쳤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있었는데 로봇이라고 하면 당시에 장난감 취급을 받을 때라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그런 기능 때문에 비쌀 이유 없다는 평가를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역시나 꿈에서도 그 회사는 어려웠습니다. 사장님이 말씀하시기를, "일반 로봇 키트가 더 잘 나가. 유에스비 포트가 있으면 사용이 쉬울 뿐, 프로그램은 똑같이 짜야하는데, 칩 굽는 과정만 빠져도 진지하지 않은 그냥 장난감 실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라고 했던 것을 보아 꿈에서조차 제가 그렇게 생각할 정도였다면 실제로는 더 했겠지 싶기는 합니다. 아무튼 무슨 인연인지는 몰라도, 뭔가 납득이 되어 제가 사무실까지 찾아간 배경은 아마 꿈 앞부분이라 잊어버렸겠지만, 결과적으로 중요한, 감정적으로 에너지가 넘쳐서 제가 꿈을 기억하게 된 계기는 역시 전단지를 실제로 가지고 나가서 나누어주는 부분입니다.
세 시간 동안 제가 제대로 나누어 준 전단지는 다섯 장뿐이었습니다. 엄밀히 말해 다 나누어 주기는 하였지만 손에 쥐어 주면 받아서 눈에 뻔히 보이는 곳에 손을 펴서 버리고 갔습니다. 제가 나눠주는 전단지가 제 주위의 바닥에 널려있는 꼴을 보니 더 나눠줄 수가 없어서 다른 출구 쪽으로 가서 또 나눠줬습니다. 지하철 출구에서 계단 아래로 내려가서 나눠주니 금방 누가 나와서 나가라고 했고, 그래서 다시 나가서 나눠주고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다 나눠주기는 했는데, 이미 명동역 근처 땅바닥이 전부 그 업체 로봇 사진으로 도배가 된 상태였습니다. 그대로 받아서 흘낏 보고 주머니에 넣은 사람이 다섯 명 정도였을 뿐, 그 사람들도 딴 데 가서 버렸는지 어떤지는 모릅니다. 꿈속에서조차 화장품 설문 아르바이트 할 때의 기억이 날 정도로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다 나누어주고 나서 다시 그 회사에서 가서 "종이를 다 나눠주기는 했지만 눈앞에서 버리는 건 어쩔 수가 없어서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인터넷이 활성화되는 시점이어서 인터넷 광고도 어느 정도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기는 하셨지만 어려운 걸 알고 간 것이기 때문에 안타까움이 매우 컸습니다. 그런 좋지 않은 마음을 가진 상태로 잠에서 깨고 보니 과거 생각도 나고 참... 일어나자마자 잠을 깨는 과정에서도 기분이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실제 그 시기에 그런 사업을 했으면 어땠을까요? 기술은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힘듭니다.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가능성을 보고 미리 뛰어들어도 기술사업의 난이도와 별개로 사람들의 호응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오랜만에 우울한 꿈을 꾸었습니다. 가끔 신나는 꿈을 꾸기도 하고 재미난, 꼭 적어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비몽사몽 한가운데에서도 들기 시작하는 꿈을 꾸기도 하고 무서운 꿈을 꾸기도 하지만 우울한 꿈은 십 년 넘게 꾼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우울한 데다가 쉽게 '아니다, 단순한 꿈이었다'라기엔 생각할 거리도 많은 아침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