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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p L Sep 27. 2024

2024년, 드디어 가을

시원해진 것 같으면서도 때때로 더워서 땀이 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날들이다. 한동안 더위, 그것도 무더위라기에는 이상한 날씨가 이어졌다가 마침내 맞이한 상쾌한 가을 날씨인데 기분도 이상하고 몸도 늘어지는 느낌이 마치 내가 알던 가을이 아닌 것만 같았다. 더워서 못 살 것 같았는데 시원한데도 정신적으로 힘들어지는 것에 대해 혼자서도 많은 생각을 해 보았다. 여러 가지 가설들이 생각났는데, 별 헛소리 같은 생각들을 제외하고 몇 가지만 추리면 다음과 같았다.

1. 더운 동안 몸이 많이 약해져서 기온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2. 실제로 지금 가을 날씨가 내가 알던, 내가 경험했던 과거의 그 가을 날씨가 아니다.
3. 가을에는 원래 싱숭생숭했다. 지금 유독 비정성적으로 덥다가 살만해진 날씨라고만 생각을 하니 이상해 보이는 것이다.
4. 더울 때는 고기압의 영향이었는데 그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고기압에 몸이 적응을 했고, 고기압이 물러난 지금은 우리 몸이 느끼기에 저기압이 며칠 동안 이어지는 것이어서 적응을 못하는 것이다.


사실 중간중간에 다른 아이디어들이 있기는 했지만 1번부터 4번까지의 결론은 실제로 저 순서대로 떠올랐다. 기분이 좋지 않아 졌다가 운동을 하면 조금 나아진다는 느낌을 받아서 단순한 체력 문제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렇지만 시원해진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어쩌면 더위가 계속 이어지는 것보다는 좋아져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 여름이 이상했던 것처럼 가을도 예년에 비해 뭔가 다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여름이 이상했기 때문에 그 뒤에 이어지는 가을은 예년과 같았어도 우리 몸에는 다르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결국은 기온의 문제가 아니라 기압의 문제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름에 힘들었던 것은 기온과 습도 때문이었지만 지금 힘든 것은 기압의 영향이라는 결론이다. 평소에도 기압이 변하면 졸음이 오거나 기분이 가라앉는 것 같은 증상을 자주 겪었다. 화창한 날이 이어지다가 비가 올 때만 되어도 느끼던 것들이다. 그러던 것이 이번 여름에는 집중호우가 오던 며칠을 제외하고는 에어컨을 틀어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 현상은 많이 없었다.
운동의 강도를 높이면 기분은 조금 좋아지는 것 같지만 며칠 반복하다 보니 매우 임시적인 대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뭔가를 하면서 잊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단순히 적응하면 되는 문제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어도 읽는 속도가 평소보다 느려진 것 같고 글을 쓸 때도 생각이 뚝뚝 끊긴다. 그렇다고 다른 걸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삶의 속도가 느려지더라도, 예를 들어 무릎까지 차오르는 물을 가르며 걷는다 해도 방향은 바꾸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생각하고 아는 것과, 실제로 생활에 스며들게 하는 것은 관점부터 다르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방향을 바꾸지 않는 것이다. 물살을 헤치고 가다가 물살과 같은 방향으로 가면 편할 수는 있지만 옳은 건 아니다. 물살이 가는 방향은 그저 자연법칙에 따른,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가는, 그러니까 이를테면 떨어지는 것일 뿐이다. 내가 가는 것은 내가 정한 목적지를 향해 때로는 역행도 불사하는 것이다. 그러니 절대 같은 방향이 될 수 없다. 같은 방향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어떻게 해도 물길이 직선으로 뚫을 수 없어서 결국 돌아서라도 가겠다고 빙 도는 물길이 만들어져 우연히 내가 가는 길이 겹치는 경우뿐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물길이 아래로 향하기 위해 억지로 만든 길이지, 실제로 그 방향인 것은 순간일 뿐이다. 그런 접점 하나하나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우리의 삶에 대한 태도가 된다.
글을 읽는 속도가 느려지면 글을 읽는 일은 고역이 된다. 답답하고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듯한, 혹시 내가 바보가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문장들이 서로 의미를 전달하면서 눈덩이가 점점 커지듯이 의미들이 앞 문장에서 넘어온 의미 덩어리에 더해지고 그다음 문장에서 점점 더 커다란 의미의 세상이 확장되어 나가는 과정이 산산이 조각이 난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이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참는 것이 유일하다.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자 독서의 계절이라는데 밥만 축내고 책은 현저히 적게 읽게 되는 2024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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