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상자

멧돼지 소동

by 루펠 Rup L

몬테네그로에서 구입한 볼펜은 볼펜심이 내장되어 있다가 옆으로 돌리면 밖으로 스윽 하고 나오게 되어 있다. 옆으로 돌리는 느낌이 부드러워서 종이를 펼치고 무슨 말부터 써 볼까 생각하면서 양쪽으로 이리저리 돌리기 참 좋다. 생각이 복잡할 때 진정 효과가 있다고 피젯 스피너가 유행했었던 것을 기억하는가? 하지만 그건 나름 너무 격렬해서 생각을 떨쳐버릴 수는 있을지 몰라도 머릿속을 정리하고 가라앉힐 수는 없었다. 반면 볼펜을 잡고 조작하는 건, 게다가 이렇게 움직임이 부드럽다면 더더욱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제부터 쓰려던 글이 있었다. 작지만 성처럼 화려하게 지은 별장 같은 호텔이 배경이다. 멍하게 그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볼펜을 돌리다 보니 어느덧 이십여분이 훌쩍 지나 버렸다.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으니 써 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속에 작지만 성처럼 화려하게 마감을 한 건물이 하나 있다. 누가 봐도 펜션이 간신히 들어설 만한 곳이지만 산속이라는 장소와 어울리지 않게 대대적으로 기초공사를 하고 거대하지는 않은 규모이지만 콘크리트 건물을 지어 올려 호텔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보통 호텔은 아니다. 별장 형식으로 일주일 단위로만 예약을 받는다. 일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토요일은 영업을 하지 않는다. 2주 예약을 하더라도 토요일에는 나가야 한다. 대대적으로 청소를 하는 날이라서. 'Pera Villa'라는 이름의 이 호텔은 방이 여덟 개뿐이고 가격도 별로 저렴하지 않다. 그러나 예약이 쉬은 것도 아니다. 환경과 서비스 때문이라고 말하면 너무 판에 박힌 설명일까.
기차역에서 내려 5분 정도 기다리니 셔틀이 왔다. 미니 버스이지만 기사와 나 단 둘만 타고 호텔로 들어갔다. 앱에 기차표를 캡처해서 올리면 도착시간에 맞추어 데리러 나온다. 주인 노부부가 운영을 하고 있고, 할아버지가 스위스 출신의 요리사라 유럽 풍의 요리가 숙박비에 포함되어 있어서 언제나 식당에 내려오면 식사를 할 수 있다. 한식은... 그때그때 이렇게 시내 쪽으로 나와서 먹고 가야 한다. 그러니 결국 이곳이 아무리 인기가 좋다고 하더라도 일주일 동안 처박혀 할 일이 있는 사람과 김치 없는 유럽 식단에 익숙한 사람의 교집합 외에는 그다지 오지 않는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예약을 보면 우리나라에도 생각보다 그런 사람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고.
나는 이곳에 3년째 겨울마다 2주간 머문다. 2주 연속으로 머무는 건 아니고, 12월에 한 번, 1월에 한 번이다. 12월에는 혼자, 1월에는 아들이 방학이라 온 가족이 함께 오거나 아들만 데리고 와서 아내에게 휴식의 시간을 주기도 한다. 올해는 아내에게 1월에 혼자 와 보라고 이야기해 놓은 참이다. 이렇게 좋은 걸 혼자 누리는 것도 미안하고 해서다. 집안일조차 없는 휴식이어야 진짜 휴식일지도 모르니까. 물론 이제껏 아내가 거절해 온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돌아와서 집안 꼴이 어떻게 되어 있을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지내는 하루하루가 어떻게 휴식이냐는 것이었다.
도착했을 때 1층에서 수염을 깎지 않아 지저분한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 나를 보고는 인사를 했다. 12월 한 달 내내 머무른다고 했다. 그는 그날도, 그 이후에도 방에서 나올 때는 늘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양복이 비싸 보인 것도 사실이지만 혼자 있는데도 늘 제대로 갖춰 입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해 보인 사람이었다. 그는 글을 쓰느라 머무른다고 했다.
"출판할 생각은 없어요.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을 하면서 실제로는 쓸 수 없었던 걸 밀린 숙제 하듯이 마저 써버리려고 왔지요."
"회고록 같은 걸 쓰시는 건가요?"
"그거야 말로 출판을 위한 글이지요. 이건 그냥 혼자만의 약속 같은 겁니다. 혼자 프린트해서 가지고 있다가 두고두고 읽을 겁니다. 소설이에요, 그냥. 다만 몇십 년 동안 머릿속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힘들게 맴돌기만 하던 것을 이제야 안식처를 주는 거죠. 선생님도 저처럼 나이 들어 보면 꼭 글을 쓰는 일이 아니더라도 뭔가 걸리는 게 생길 겁니다. 그러면 그걸 포기하지 말고 해야 해요. 그걸 포기하면, 죽을 때가 된 걸 겁니다."
그분은 주변 사람들을 모두 선생님이라 불렀다. 내가 나는 훨씬 어리니 빼달라고 했지만,
"딱히 제게 나쁘게 하신 게 없는데 제가 좀 배울 걸 찾는다고 나쁠 게 있을까요? 선생님도 해 보세요.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도 선영 선생님(주인 할머니), 미카엘 선생님(주인 할아버지), 선생님(글 쓰시는 그분)이라는 호칭이 입에 붙어 버렸다.
페라 빌라 호텔 건물 뒤에는 300평 정도 되는 정원 비슷한 공간이 있었는데 그 정원 자체는 볼 것이 없었다. 애초에 상추와 이런저런 것을 키우는 텃밭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보다는 약간 길쭉한 모양으로 된, 정원을 따라 만들어진 산책로가 볼거리였다. 끝에는 2층 높이의 정자를 지어서 산 아래쪽을 내려다볼 수 있게 해 놓았다. 눈이 많이 온 다음 날, 눈길을 헤치고 계단을 올라 원근감을 상실한, 온통 흰색으로 뒤덮인 풍경을 바라보노라면 그야말로 안갯속 신선의 마을이 이런 곳이겠거니 싶을 정도였다.
그날도 그 정자를 향해 걷고 있었다. 누군가는 따로 돈을 내고 명상 코스에 등록한다고 하지만, 언젠가 다큐에서 본 수도원 같은 방에 머물면서 이런 풍경을 보는 생활만 이틀 이상 이어지면 자연스럽게 명상도 되지 않을까 싶다.
눈도 아직 오지 않았고 낙엽도 산 아래쪽으로 잔뜩 쌓여서 바람이 세게 불면 울타리 밖에 누군가 돌아다니는 것처럼 서걱서걱 소리가 나는 어느 날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바람도 세게 부는데 쿵쿵쿵쿵 소리가 나서 두리번거리다 선생님이 정자에서 뛰어 내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무슨 일이세요?"
"멧돼지가 있어요. 제법 크네요. 그렇게 큰 줄 알았으면 마을에 멧돼지가 내려왔다는 뉴스를 보고 '저게 왜 뉴스거리지?'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거예요."
"어디요?"
"근처에 있었는데,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더니 내려갔어요. 혹시 그런 소리 못 들었어요?"
"바람소리 때문에 못 들었나 봅니다. 나뭇잎 소리는 많이 들었는데."
"선생님도 아마 그놈을 보시면 틀림없이 저처럼 겁먹고 바로 내려왔을 겁니다. 그런 놈이 돌아다닌다니, 무서워서 산책은 이제 못하겠네요."
"저도 같이 가요. 저도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서 궁금하군요."
그래서 우리는 선영 선생님을 찾았다. 선영 선생님은 호텔의 앞에서 뒤로 돌아가는 길목 그늘에 말려놓은 햄을 걷고 있었다.
"선생님, 혹시 멧돼지가 여기 자주 옵니까?"
선생님이 선영 선생님께 인사도 하기 전에 대뜸 큰 소리로 물었다.
"네?"
"여기 선생님이 커다란 멧돼지를 보셨다고 해서요."
내가 거들었다. 선영 선생님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어디서요? 호텔에 멧돼지가 들어왔나요?"
선생님이 진정이 된 듯 아까보다는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건 아니고요, 산책로 끝에 있는 정자에 올라갔다가 이상한 소리가 나서 내려다보니 멧돼지가 이만한 게 뛰어 내려가지 뭡니까."
그제야 선영 선생님 햄을 들고 있는 상태로 마네킹처럼 멈춰 있던 양손을 다시 움직이며 말했다.
"아, 우리 호텔 산책로에서 약간 아래쪽으로 경사에 전기 철조망이 설치돼 있어요. 아마 거기 닿아서 아파서 이상한 소리를 낸 걸 거예요. 여기 터 전체를 약간 올려서 지은 거라 정문 말고는 아무 데도 못 들어와요."
"전기 철조망이요? 동물들이 죽을 수도 있는 겁니까?"
"아니에요. 여기서 그렇게 세게는 못하고요, 해봤자 220 볼트라 동물들은 아프다고 느끼는 정도일 뿐이지요. 따끔한 정도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요. 한동안 멧돼지인지 모르지만 아마 멧돼지일 거라고 생각은 하는데, 부엌 쪽 문이 부서지고 말린 햄이 밤사이에 없어지는 일이 있었거든요."
"손님이 마주친 적은 없나요? 그 멧돼지나..."
"그랬으면 아마 저희도 영업 자체를 그만두었겠지요. 그래도 다행히 전기 철조망 설치가 2주 만에 끝나서 그 이후로 그런 일이 없어요. 경사에서도 교묘한 곳에 설치해서 눈도 쌓이지 않고 정자 위에 올라가야 간신히 보이는 자리라서 산책할 때도 눈에 잘 띄지 않죠. 그리고 오르막에 설치한 거라 동물들이 장시간 닿아서 죽을 일은 더더욱 없어요."
그제야 선생님은 안도했는지 다시 나에게 눈길을 돌리고 말했다.
"선생님도 정자에 올라가 보세요. 전 이제 방에 처박혀야겠습니다. 긴장이 한 번에 풀리는지 힘드네요."
선생님은 방으로 올라가고 선영 선생님은 다시 몸을 완전히 돌리고 햄 걷는 작업에 몰두했다.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 싶었지만 물어보았자 또
"돈 내고 오셨으니 돈 낸 만큼 즐기기만 하고 가시면 됩니다."
하실 거라 가볍게 인사만 하고 정자로 향했다.
정자에서 목을 빼고 내려다보니 과연 나뭇가지들 사이로 아래쪽에 전기 펜스가 회색으로 보이는 것 같았다. 정말 낙엽도, 눈도 쌓이기 힘든 교묘한 위치이기도 하고 눈에도 잘 띄지 않아서 시야의 풍경을 침범하지도 않는다는 점이 독특했다. 잠시 그렇게 철조망 위치를 찾아보다가 지루해져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런 곳에선 정적인 자연을 보는 것보다 인공물 찾는 게 지루할 수가 있다. 그리고 정적인 자연에서 뭔가가 떠다니면 흐릿한 의식이 점차 돌아오는 것 같다. 지금처럼...
"눈이다!"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어딘가에서 푸드득 하고 날갯짓하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제법 큰 소리로 외쳤나 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체 풍경이 안개처럼 변했다. 눈이 쌓이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눈발도 갑자기 굵어지기 시작했다.
"눈이 많이 오는구나아"
나는 중얼거리고 나서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오래 지난 것 같다. 눈이 너무 많이 올 때는 하늘을 올려다보면 마치 내가 하늘 방향으로 올라가는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보통 그런 건 우산을 쓰지 않고 바로 머리 위를 올려다보아야 느낄 수 있는데, 눈이 워낙 많이 오면 수직으로 올려다보지 않아도 그렇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시간도 매우 빨리 흘렀다. 계단 아래를 보니 벌써 발목까지 눈이 쌓인 것 같았다. 배도 고파오는 것이, 어서 호텔로 돌아가 수프라도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바람이 호텔 쪽으로 불어서 바람을 마주 보고 걸을 필요가 없었다. 대신 정자 쪽으로 산책하는 건 점심을 먹고 나서도 힘들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바람 때문에 음식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는 것은 호텔 문을 열고 들어가서야 알았다.
향긋한 냄새.
아니, 이건 익숙한 냄새다. 고기나 수프 냄새도 익숙한데 이 냄새는 그런 것들과는 달랐다. 그렇다고 매콤한 냄새도 아닌데.
"어서 빵하고 햄 드세요."
선영 선생님이 말했다.
"수프 냄새가 이상한데 이거 뭔가요?"
"황탯국이에요. 시원해요. 바로 드세요!"
구석에서 고개도 들지 않고 선생님이 외쳤다. 접시에 음식을 담고 창가 쪽 바에 앉았다. 선생님은 빵에 버터와 치즈를 올리고 한 입 먹고 햄을 입에 한 조각 넣었다. 그리고 음식을 천천히 씹으면서 눈길을 정자 쪽으로 향했다.
"눈이 이렇게 오니 글도 잘 써지시겠어요."
내가 말을 건네자 선생님이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접시와 풍경만 보다가 사람을 처음 본다는 듯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네?"
"이런 풍경 보면 왠지 그럴 것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해요?"
나는 선생님이 뭔가를 되묻는 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글을 쓴다는 주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신중하게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저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의 편견일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이렇게 풍경을 보고 있으면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생각이 나아가기도 하잖아요. 그렇다면 글을 쓸 때는 더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선생님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눈이 오는 건 그냥 눈이 오는 거죠. 눈이 오는 풍경도 멋지지만 눈이 온다는 건 상태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눈 쌓인 상태를 향해 가는 과정인 거죠. 어때요?"
선생님이 나를 보고 웃었다. 내가 무슨 뜻일까 하고 생각하느라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다시 선생님이 말을 이었다.
"눈이 오는 건 글을 쓰는 것과 같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눈으로는 아무것도 안 되죠. 눈이 온다는 사실은 아무 힘도 없어요. 모든 힘은 쌓인 눈에서 나옵니다.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것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글이 되고 나서야 그 글이 힘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지요. 선생님이 전에 말했던 회고록 있잖아요. 그래서 생각한 건데, 정치인들의 회고록을 생각해 보면, 그 글이 만들어지기 전에, 그 글과 상관없이 그 정치인의 명성 같은 게 먼저 영향력을 가지게 되면 그 글은 영원히 내리고 있는 눈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태생이 힘없는 글인 셈이지요."
선영 선생님이 미카엘 선생님과 함께 다가왔다.
"눈도 오는데 와인 한 잔 어떠세요? 우리 아저씨 고향집에서 보내온 건데 오늘 함박눈 보면서 마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좋지요. 감사합니다."
"저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노부부는 와인잔을 놓고 천천히 따라준 다음 다시 자리로 돌아가 음악의 볼륨을 조금 올렸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피아노 소리가 눈 오는 풍경과 잘 어울렸다.
선생님이 와인으로 입술을 축이고 한참을 창밖을 보다가 창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다시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저는 작가가 아니라서 그런지 글을 쓸 때 이 눈이 오는 것처럼 평화롭지 않아요. 이제까지 쓴 글은 읽어도 눈 쌓인 길에 발자국 생기듯 뭔가를 마음에 또렷하게 남기지도 못하지요. 눈 내린 직후에 멧돼지가 헤집고 다닌 땅 같다고나 할까요?"
"마음에 안 드시는 건가요?"
"그렇죠. 벌써 그렇게 느껴지는데 다 쓰고도 그럴까 봐 겁도 납니다."
"그 멧돼지를 잡아야겠군요! 헤집고 다니지 못하게."
선영 선생님이 어느새 옆에 와인잔을 들고 서 있었다.
"그 멧돼지인지 뭔지 잡아서 얌전하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그게... 작가들은 쉬울지 몰라도 저는 막막하네요."
선영 선생님이 잠시 생각하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일 년 동안 잘 생각해 보시고 내년에 또 오시면 되죠!"
선생님은 맞장구를 치거나 같이 웃지 않고 잠시 얼굴이 굳어진 상태로 생각하더니 말했다.
"이 멤버 그대로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사실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도 여기서 말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거든요."
선영 선생님은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직 미소를 거두지 않은 상태로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뭐, 글이 완성될 때까진 계속 눈이 내리는 거죠? 생각해 보면, 가는 눈이 오래 오는 것보다는 구름이 모이고 모이다가 하룻밤 만에 함박눈이 몇 미터씩 쌓이는 것이 효과가 더 좋잖아요? 선생님이 쓰는 방식이 더 나을지도 몰라요. 계속 붙드는 것보다 이렇게 한 달 정도 짧게 기회를 만들어서 한 번에 쓰는 것 말이에요."
선생님의 얼굴에서 긴장이 걷히는 게 느껴졌다.
"저는 우산을 쓰고 산책을 좀 하겠습니다. 밤이 되면 도저히 나갈 수 없을 것 같은데, 창 밖으로 내다보면서 글을 쓰기 전에, 눈 내리는 풍경 속에 한 번 들어가 걸어보고 싶네요."
나는 선생님이 시인이 다 됐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야 글은커녕 시도 별로 읽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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