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불행

혹은 [불행]과 불[불행]?

by 루펠 Rup L

행복이라는 말은 행복할 때보다 행복하지 않을 때 더 자주 나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행복하기 위해서 더 말을 하려고 합니다.
"당신을 만나서 행복해."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서 행복해."
"아이가 잘 자라서 행복해."
"아이가 건강해서 행복해."
"아이가 그래도 공부를 안 하지는 않아서 행복해(...)"
"회사일이 재미있어서 행복해."
"글을 쓸 정신이 있어서 행복해."
글을 쓸 정신이 있어서 행복하다는 말은 정말입니다. 회사에서, 가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글이 써지지 않습니다. 글은커녕, 멍하게 텔레비전을 틀어 놓고 있어도 머릿속은 쑥대밭이 되어 갑니다. 그런 일이 없는 것 자체가 행복이지만, 그런 행복도 뭔가 사건이 있다가 사라진 후 생기는 여유에서 잘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한바탕 병치레를 하고 나서, 아프지 않아서 행복하다는 느낌이 얼마나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몇 년 전 코로나 때문에 집에서 쉬었을 때였습니다. 저는 코로나 백신을 맞을 때마다 도 그랬지만, 실제로 막바지에 코로나에 걸렸을 때도 두통이 그렇게 심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었고, 열도 해열제를 먹으면 바로 내렸습니다. 그런데 열이 내려도 마치 머리가 터질 것 같다는 표현 말고는 비유도 불가능할 듯한, 뇌 전체가 두개골에 바짝 붙어서 부풀어 오르려고 압력이 생기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두통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평소에도 편두통은 가끔 있는데, 그때도 그렇게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한숨 돌리는 여유 없이 계속 아프자, 누워 있지도 못하고 방바닥에서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쪼그리고 엎드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요일, 전처럼 두통을 참으며 기운 없이 저녁 식사를 하다가 갑자기 머리가 맑아졌습니다. 어차피 두통 때문에 생각 같은 건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머리가 맑아졌다고 느꼈다는 것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는 뜻이었습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지?'
하지만 두통이 사라지면 좋겠다는 것 말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 리가 없지요. 그래도 뭔가 잊어버린 건가 싶어 잠시 생각을 더 하다가, 생각을 잊어버린 게 아니라 두통이 사라진 거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는
'두통만 없어도 이렇게 행복한 걸 몰랐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행복은 하루를 가지 못했습니다. 하루가 아니라, 당장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어 회사에서 업무 전화가 오자 짜증이 밀려왔습니다. 두통이 있었더라도 전화는 왔을 테니 그나마 두통이 없어진 것을 감사해야 할 텐데, 감사고 행복이고 짜증 뒤에 가려져 버린 것이었습니다. 전화를 받고 통화를 해보니, 말로 대충 설명해서 끝날 일이었습니다. 몇 마디 길게 하지 않고 일을 마무리하고 전화를 끊으니 행복이 또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슨 사람이 이렇게 간사하고 가벼운지!
저는 그때 일요일 오후에 코로나 양성 반응이 나와 그 주는 특별휴가를 받고 그다음 주 월요일에 출근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월요일 점심 무렵부터 시작된 두통이 목요일 저녁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전화는 하루에 한 통 정도는 꼬박꼬박 왔었습니다. 그중 두세 번은 함께 일하는 사람이 저 없는 사이에 일처리를 이상하게 해서 결국 수습을 해야 하는 전화였지만 도저히 두통 때문에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해서 대충 둘러대고 월요일에 출근해서 해결하기로 했었고 나머지는 금요일에 통화로 대부분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금요일은 처음으로 하루 종일 두통 없는 휴가다운 휴가를 보냈지만 전화를 몇 번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마다 전화벨 소리를 들으면서 짜증이 나고 전화를 끊으면서 두통 없는 휴일이 다시 시작된 것을 축하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아무 약을 먹지 않아도 되니 금요일에는 조금 늦게 잤습니다. 책을 읽다가 아파서가 아니라 정말로 눈이 감겨서 침대에 누워서 생각해 보니, 급격하게 짜증이 났다가 기분이 좋았다가 한 것이 마치 조삼모사에 나오는 원숭이 같았습니다. 그리고 조금 비약해서 생각하면 그때 기분이 좋아진 것도 그렇게 짧게만 유지되었을 뿐인데 행복한 거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도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무 문제가 없는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것도 행복인 거였어,라고 깨달으면서 행복할까요?
행복이란, 좋지 않은 상황이 사라지는 그 기분이 아닐까요?
혹시, 중독 상태라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쾌락상태에서는 즐기고 그 쾌락 상태가 아니면 그 쾌락 상태만 바라보는 메커니즘이 있는 것처럼, 행복한 상태라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가 그 상태가 좋아지면 행복하다고 느끼는 그런 메커니즘만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나는 행복해'라고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불행한 상황을 상상하고 그렇지 않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그런 불행한 상황을 상상해서까지 누릴 수 있는 비교 우위가 없다면 행복한 것이 불가능한, 슬픈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항상 더 못한 것을 보면서 내가 그것보다 낫다고 자위해야 행복한 상태가 유지된다니요.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것은 여기서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에 제외하고, 현재 상태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자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사실, 존재 자체로는 슬프고, 불행하며, 만족할 줄도 모르고, 이기적인 사람들입니다. 태생부터가, 현재에 만족할 줄 몰라서 행복하기 위해서는 더 못한 과거를 밟고 일어나거나, 더 못한 상황을 가정해서라도 현재가 낫다는 결론을 '이성적으로' 내려야만 합니다. 기분 좋게 하하 호호하면서도 기분이 좋을 뿐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현재를 사는 사람이 '기분이 좋다', '즐겁다', '슬프다' 같은 표현을 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행복이라는 표현 자체가 슬픈 상태, 현재에 불만족한 상태에서 쓰는 것일까... 행복의 개념 자체가 '불행하지 않은 상태'라는, 불행을 가정하지 않고는 내릴 수 없는 정의인 걸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평소에는 굳이 행복이라는 개념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매일매일이 즐거울 수는 있지만 항상 행복해할 수는 없지 않나요?
저만 그렇게 받아들인 개념일 수도 있습니다. 말로 풀어서 설명한 개념과 달리 사용하는 예를 보면 그렇게 느껴지지만, 또 간지럽다며 행복이라는 단어를 일상생활에서 잘 쓰지 않는 영향도 있겠지요. 그래도, 이렇게 생각해 보고 나니, '굳이 행복하다고 말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상황과 비교할 필요 없이, 현재는 만족스럽습니다. 그것으로 끝, 그러면 되지 않을까요?
아, 여기까지 와서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복과, 행복하지 않은 상태인 불행, 그 두 가지가 전후관계가 뒤바뀐 게 아닌가 하고요. 불행은 길고 행복은 짧습니다. 실제로 그렇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느끼는 기간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네모네모라는, 아프거나, 누군가를 상실하거나,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하는 상태가 있고, 이것의 동의어가 불행이라면, 불네모네모는 네모네모가 아닌, 즉 불행하다는 것을 느끼지 않는 상태여야 하는 게 아닐까요? 행복이 우선이고 그렇지 않은 상태가 불행인 게 아니라, 우리는 늘 불행을 느낄 준비가 되어 있고, 가끔 그것을 느끼지 않을 때가 불불행인데, 불불행이 아니라 행복이라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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