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여행은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 이 흔적은 상처일 수도 있고 삶의 힘이 되는 경험일 수도 있다. 내 경우에는 삶의 방향을 바꿔준, 마치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던 이정표가 사실은 어느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어야 했는지를 발견하게 만든, 다락방의 보물단지 같은 것이다.
그 이정표는 특별히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그렇다고 딱히 쓸모가 있다고 하기에도 곤란한 그런 것이었다. 그냥 남들 다 가는 방향을 향해 있었으니까. 다만 삼거리에서 두 갈래 길 중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는 이정표가 제법 쓸모 있게 알려 주었는데, 여행을 마치고 새로운 길 쪽을 가리키게 되자 그제야 그곳이 삼거리가 아니라 사거리였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는 식이었다. 글을 쓸 때면, 아직 짤막짤막한 글이지만 글을 쓰고 싶다는 주제가 나타났을 때 그 글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고 난 후의 뿌듯함과 개운함은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글을 쓰는 과정이 싫었던 건 아니지만 마침표를 찍을 때의 쾌감이 훨씬 더 컸다는 뜻이다. 동네 뒷산에 오르더라도 올라온 길을 내려다볼 때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더 높은 산에 오르면 그 느낌은 더 커질 것이다. 그렇지만 취미라는 것을 그렇게 성취감의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접근은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사실 마침표의 쾌감이 없다고 해서 글을 더 이상 쓰지 않을 것도 아니고 심지어 그 쾌감은 몇 년 간 혼자 끄적거리고 나서야 알게 되었으니 내 글쓰기의 계기가 된 전부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삼주 간의 휴가. 이렇게 긴 휴가는 거의 20년 직장생활 중 처음이었다.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앞으로 남은 휴일이 창창해 보였던 그 파란 기억 속의 휴가 기간 동안 부산한 공항과 공항 사이에서 헤매던 시간 끝에서 잔잔한 바다를 보면서, 새벽에, 낮에, 저녁에 성벽 사이를 누비는 생활을 하면서 단 3일 지나고 나니 내 모든 것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시선이 전체적으로 달라진 것을 느꼈다. 식사도 끼니때가 되면 꼭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배가 고플 때 하면 되는 것이었고, 맥주는 매일 마셔도 질리지 않았으며, 읽고 싶을 때만 책을 읽어도 꾸준히 진도가 나갔다. 누워서 다리를 흔들면서 전자책을 읽다가 일어나서 테이블에 앉아 키보드로 글을 썼다.
그때 처음으로 종이에 글씨를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60도, 120도만 가리키던 이정표가 살짝 이상한 방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을 때가 그때였을 것이다. 그러다 열흘이 지나고 마침내 수첩과 볼펜을 구했을 때는 마치 하루에 몇 시간 씩이라도 글을 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의욕이 앞섰다는 건 그날 당장 알게 되었지만 글을 쓸 때의 만족감은 여전했다. 글을 다 쓰고 나서가 아니라 수첩에 한 획, 한 획을 눌러쓸 때, 그 시간 동안의 즐거움을 펜을 들기만 해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것은 성취감과는 또 다른 무엇이었다. 글을 쓸 물리적인 공간이 생겼다는 안도감 같은 것일까? 편안함 같기도 하고 그 안에 숨을 수 있는, 남들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는 그런 곳을 찾은 안정된 느낌도 있었다. 그래서 그 수첩을 손에 넣고부터는 거의 키보드로는 글을 쓰지 않았다. 키보드는 그저 그렇게 쓴 글을 나중에 전자 신호로 바꾸어주는 역할만 할 뿐이었다.
이 여행에서 내게 남은 것은 A6수첩 한 권과 10cm짜리 짧은 볼펜이다. 그렇게까지 짧은 볼펜이 오히려 글씨를 쓸 때 억지로 손의 균형을 잡는 데 힘을 쓰는 느낌을 주지 않아 더 좋았다. 그리고 조금 더 큰, 보통 다이어리 크기의 노트가 있는데, 수첩을 다 쓰고 나서 그 노트에 이어서 글을 쓰려고 하니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집에서야 가능하겠지만 밖에서 꺼내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전보다 더 작은, A7짜리 수첩을 잔뜩 주문했다. 틈틈이 일상에서 언제든지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싶을 때' '쓸 수 있게' 되었다.
전에는 간간이 소소한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 글을 썼지만 여행이 지나고 나서는 글쓰기는 내 인생의 일부가 되었다. 일상을 조금 더 즐겁게 만들 '도구'에서 인생의 일부를 직접 차지하는 '일부'가 된 것이다. 내게는 제2의 직업과 같다고나 할까. 투잡이라기엔 돈이 되지 않지만 만약 정신과 치료를 필요로 하게 될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이 글들이 그것을 최대한 예방해 준 셈이 될 것이니 그 병원비를 버는 것과 마찬가지야,라고 스스로 변명도 하면서 오늘도 글을 쓴다. 간혹 성취감을 느끼고 싶을 땐, 이미 키보드로 옮겨 썼다는 표시로 페이지 한가운데를 꾹꾹 눌러 대각선으로 그어버린 종이를 보면 된다. 글을 다 쓰고 나서의 성취감은 이제 없다. 좇지 않으니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