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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런 걸 조심하려고 한다. 물론...

by 루펠 Rup L

습관이라는 것은 종유석이 생기는 것과 아주 유사한 원리로 반복의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비슷한 경우'에 부딪혔을 때 고민할 필요 없이 진행할 수 있도록 정형화된 반응의 묶음이다. 습관 중에는 직접 손과 발의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도 있지만, 어떤 장소에 가면 나도 모르게 특정한 생각을 떠올리게 되는 내적인 습관도 있다. 이것은 어차피 습관이라는 것이 뇌에서 만들어내는 것인 만큼 당연한 일이다. 이처럼 습관은 사람이 의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행동이든 생각이든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는데, 글을 쓰는 데 있어 문장을 만드는 과정 안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문장을 쓰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을 때 돌파하기 위해 한걸음 뒤로 물러날 때도 사람마다 다른 방식을 쓴다. 다른 사람의 습관이야 내가 관심도 없으나 내가 쓴 글은 읽다 보면, 아니 쓰던 중에도 의미 없이 습관적으로 쓰는 단어가 있어서 내가 쓴 글에서는 최대한 없애야겠다, 어떻게든 사용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한 두 단어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아무튼>이다. 예를 들면 간단하다. 다음 문장처럼. 내가 사용하던 '아무튼'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나는 옆집에서 개가 짖지 않는지 잘 살펴보면서 살금살금 걸었다. 한 번 짖기 시작하면 집안사람들이 다 깨어날 때까지 그만둘 생각을 하지 않는 개였기 때문에 내가 죄를 지은 게 없는데도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보통 개들은 후각과 청각이 사람보다 발달했다고 하지만 이 개도 그런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그저 늙었기 때문에 예민한 것인지도 몰랐다. 아무튼 열 발걸음밖에 되지 않는 거리를 걷는데 십 분 넘게 걸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문장의 순서만 손보면 더 자연스럽고 또 '아무튼'도 소리 없이 사라져 버린다.

<나는 옆집에서 개가 짖지 않는지 잘 살펴보면서 살금살금 걸었다. 보통 개들은 후각과 청각이 사람보다 발달했다고 하지만 이 개도 그런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그저 늙었기 때문에 예민한 것인지도 몰랐다. 한 번 짖기 시작하면 집안사람들이 다 깨어날 때까지 그만 둘 생각을 하지 않는 개였기 때문에 내가 죄를 지은 게 없는데도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열 발걸음밖에 되지 않는 거리를 걷는 데 십 분 넘게 걸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즉, 내 문장에서 '아무튼'이 나온다는 것은 보통 문장의 배치가 자연스럽지 않다는 신호가 된다.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고 문장 배치를 잘못한 것을 마치 실로 대충 헝겊을 대고 기우듯이 '아무튼'으로 때우는 건 옳지 않기에 한 번 더 생각하고 문장을 다시 구성해 보려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물론>이다. 이건 아주 단순하다. 문장도 자연스럽지 않거나, 배치를 다시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말을 해 놓고 갑자기 한 발 물러날 때 들어가는 단어라는 점이 문제다. 원래 그런 경우에 사용하는 단어가 맞지만 그런 경우가 자주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말을 해 놓고 한 발 물러난다? 이럴 때는 그냥 그 문장도 지워버려야 한다. 굳이 써 놓고 물러설 필요가 없다. 그리고 '물론'이 없어서 너무 무리하게 밀고 나가는 것 같다면 그때도 애초의 전 문장을 지워 버려야 한다. 원래 쓸 필요가 없는 글인 것이다.

<나는 지하철에서 성경이 어쩌고 하나님이 어쩌고 하는 소리가 들리면 그 사람을 먼저 찾고 그 사람이 지나온 칸으로 이동한다. 함부로 다른 칸으로 옮겼다가 그 사람이 이동하는 방향으로 옮겼다가는 또다시 들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교회 다니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글에선 변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확고하면 변명을 쓸 필요가 없고, 변명이 필요할 정도로 생각 없이 쓴 거라면 지워야 한다.

이 두 가지는 지금도 조심하고 있다.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자제해 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내 글에서 저 두 가지가 위와 같은 이유로 만능방패처럼 쓰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도 고칠 것이 산더미인데 나 혼자 알아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글쓰기를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언젠가 하나씩 고쳐나가리라 생각한다. 내 글에서 눈에 거슬리는 게 나오지 않을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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