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에 들려다 잠이 오지 않아 다시 수첩을 폈다. 누워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오늘 브런치에서 지나가던 문장이 있었는데, <하고 싶은 말은 일기장에, 사람들이 읽고 싶어 할 말은 브런치에> 정도로 대략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그냥 쓰고 싶은 말을 쓴다. 아직은 독자라는 대상도 불분명하고 내가 쓰는 글들도 딱히 정보성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글쓰기 좋아하는 사람들과 교감할 수 있는 실 같은 통로라고 할까. 어쩌면 글을 잘 쓰고 유명해지고 책도 펴내서 많은 이들에게 읽히는 글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의지가 '아직은' 약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치열하게 쓰는 것도, 목에 핏대를 세우고 심각하게 책을 읽는 것도 아니다 보니 노력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많은 차이가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닐 수 있다. 그렇지만 단순히 그 방향이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이라는 것만 알고 딱히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읽는 게 좋고 쓰는 게 좋은 사람이 좋아하는 일을 퇴근하고 틈틈이 하고 있다고 하면 좋은 핑계가 되지 않을까?
설마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내가 내 글이 재미가 없거나 아무도 관심이 없어도 아예 상관없다고 생각하겠는가. 지금은 재미가 없어도 어떻게 할 바를 모를 뿐이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절대 책을 내지 않겠다고, 그런 식으로 생각하겠는가. 아직은 부끄러워서 어디 보내지도 못하고 그냥 '읽고 싶은 분들, 읽어 보세요.'하고 지하철 역 입구 출근길에 쌓아놓듯 수줍게 공개할 뿐이지.
어릴 때, 심지어 초등학교 때도 목표가 명확한 아이들이 있었다. 선생님이나 공무원, 화가 등 꿈이 있는 아이들을 보면 무척 부러웠다. 심지어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결정이 힘들다는 아이들도 부러웠다. 나는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그냥 일도 하지 않고 어딘가에 처박혀서 책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느 날 청소 시간, 내 청소구역(아마 교실의 복도 쪽 유리창 닦기였던 것 같다.)의 청소를 끝내고 복도에서 학교 밖을 내다보면서 산속의 단칸 기와집에서 창호 문을 열어 놓고 책을 읽다가 문 밖을 내다보면 어떤 기분일까를 상상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책을 읽는 직업은 없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다. 여러 책을 원하는 대로 읽는 게 아니라 공부를 해야 하는 직업이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딱히 되고 싶은 게 없는, 그리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즐겁지만 목표는 없는 상태의 내가 되었다. 글을 쓰는 것, 글을 읽는 것, 목표가 없는 것, 모두 나에게 친숙하다. 단기적인 목표야 없을 수는 없다. 꿈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을 뿐이지. 브런치에 글을 300편, 800편을 먼저 써보겠다거나 하는 목표도 있고. 그러나 운동을 십 년 넘게 하면서 모든 노력은 어떤 형태로든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십 년 간 회사 생활을 하면서 멘털에 있어서 취미의 중요성을 깨달았으며, 십오 년 넘게 혼자 글을 쓰면서 내게 있어서 꾸준한 취미는 읽기와 쓰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보아도 일기 같은 글이 되었다. 보통은 이렇게 써 놓고 다시 읽으면 솔직함의 정도인지 명료함의 정도인지 몰라도 일정한 만족감이 오고는 하는데 오늘은 약간 그 글을 읽어서인가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일기처럼 쓰면 안 된대서 일기 같은 글이 된 것인지.
사실은 나도 남들이 일기 같이 쓴 글을 재미있게 읽는다. 그 글에서 내가 얻어내야 할 것이 명확해질 때까지는 더 이상 그 글을 떠올리지 말아야겠다. 내 기준으로는 <내 브런치 글은 블로그 포스트가 아니다> 정도로 하면 비슷할 수 있겠지만 일기 같은 글이라니 뭔가 생소한 기준이 내 뇌에 난입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