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때를 돌아보면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다는 말이 전 국민, 아니 전 세계인에게 동시에 해당된 건 몇백 년 전 소빙하기로 세계적인 기아가 찾아왔을 때 이후로 처음인지도 모른다.
뉴스를 보며 저녁마다 신규 확진자 수를 확인하고 마스크를 쓰고 되도록 식당에 가지 말고 음식도 웬만하면 집에서 해 먹거나 배달을 시켜 먹고 덩달아 배달 업무 수요가 늘고...
그런가 하면 코로나 때문에 직장이 문을 닫은 경우도 있었다. 어떻게 해결이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몇 명 안 되는 공장의 전 직원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생생하다.
그나마 델타변이까지는 목숨도 위험하게 느껴졌지만 그 이후로는 조금씩 위협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코로나 사태 종결이 선언되었을 때는 그 선언이 크게 의미가 있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여기까지는 뉴스 등 매체를 통해 본 코로나였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관심 있게 본 것은 따로 있었다. 의외로 '줌'을 이용한 화상 미팅이 업무 외적으로도 활성화되어 결국 올해 스카이프가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한다. 줌이 활성화되면서 실제 거리가 멀어서 휴일이라도 참석하기 힘들었던 취미 클래스가 늘었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강이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 그때까지 혼자 끄적이는 글이나 쓰고 있던 나에게는 겉으로는 크게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내면적으로는 오히려 약간 더 오픈되는 결과를 낳았다.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보다 손쉽게 바라볼 수가 있었는데, 사실 코로나 때문에 바깥 활동이 줄어서 온라인에 진솔한 이야기가 많아져서인지, 바깥 활동은 줄고 사람들도 줌과 같은 온라인 공간에 더 관심을 가진다고 어디서 들은 적 있는 내가 더 주의 깊게 온라인에 귀를 기울인 것인지 구분하기 쉽지는 않지만.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글을 쓰는 것도 코로나 시절 약간 방향을 틀기는 했다. 그 변화가 크지는 않았어도 글을 꾸준히 써나가기로 했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까지 그 영향은 사라지지 않은 셈이다. 지속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은 것은 눈에 보이는 일시적인 것만큼 위대할 수 있다. 그림의 역사에서도 그림 자체보다, 그림을 벽과 떨어진 액자에, 캔버스에 집어넣어 벽을 선택할 수 있게 한다는 발상의 탄생이 위대한 변곡점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 기준은 지금도 살아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매력이 두려움이나 게으름을 이기고 책을 읽고, 계속해서 분야를 바꾸어가며, 전공자들이 보기에는 수박 겉핥기로 보일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름의 공부를 계속하려 하는 것 모두 지속되는 작은 변화이다.
코로나가 끝나고도 이어지는 후유증은 여전히 없지 않다. 병원들은 아직도 마스크 의무 착용 구역이고 고속 또는 시외버스 터미널에 가면 버스들의 배차간격은 코로나 이전 대비 두 배 이상 늘어난 후 아직 복구되지 않은 곳이 많다. 심지어 승객이 늘어나지 않을 것이 틀림없어 보여서 우등버스로 교체해서 수익이라도 보전하려는 노선들도 늘고 있다. 줌은 지금도 출장 대용으로 많이 쓰이고, 원데이 클래스 같은 온라인 취미 교실도 계속 늘어나는 것 같다. 어떤 식의 변화가 나은지는 모르겠다. 코로나 이후의 세계가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고착되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단지 관성일 뿐이고 언젠가 다시 돌아가게 될지. 더 좋은 방향이라는 건 없다. 누군가 의도해서 될 일이 아니니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나 자신의 변화처럼 받아들일 뿐이다. 어차피 내일도 오늘과 똑같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