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쯤 전인가, 아직 추울 때였다. 집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맞은편에 한 가족이 걸어오고 있었다. 두세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와 엄마로 보이는 젊은 부인, 그리고 아이의 할머니, 그러니까 부인의 어머니 같았다. 아이는 새빨간 패딩을 입고 패딩에 달린 모자까지 쓰고 있어서 마치 비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았는데, 색깔마저 빨간색이었던 데다 샛노랑의 장화까지 신고 있어서 멀리서도 한 번에 눈에 띄었다. 부인이 유모차를 밀며 어머니와 대화를 하면서 천천히 걷는 동안 그 앞에서 유모차를 한 손으로 잡고 걷는 모습을 보자니 한 눈에도 걷고 싶다고 떼를 써서 유모차 밖으로 나온 것이겠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이는 장화가 어색한 듯한 걸음으로 아장아장 귀엽게 걷고 있고 그 뒤로 엄마와 할머니가 대화를 나누며 따라오는 행복한 그림이었다.
그런데 가까이 갔을 때, 아이가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아... 파..."
"... 아... 파..."
순간적으로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아이를 보고 다시 부인을 보았다. 부인은 대화에 열중하느라 나를 보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만 들은 건 아닌 듯, 아이 할머니도 부인에게 곧바로 물었다.
"얘 지금 어디 아프다고 하는 것 같은데? 유모차에 다시 앉혀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지만 부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아니야, 지금 블랙핑크 아파트 노래 부르고 있는 거야. 그거 있잖아, 요새 아, 파트 아파트 그거."
"아, 우리 **이 노래 부르는 거야? 난 또 어디 아픈 줄 알았네."
그리고 바로 아이에게 물었다.
"우리 **이 아파트 아파트 노래 불러요?"
"네."
어쩐지 아이 표정도 뭔가 심각하다 했더니 나름 진지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나 보았다. 아파트를 아파,라고 듣다니.
하지만 이건 아이만이 겪는 일은 아니다. 이 아이는 짧은 가사 하나로 발음 때문에 걱정 어린 오해를 받았지만, 짧은 가사가 아니라 나의 생각을 풀어서 쓴 글도 사실 어떻게 상대방에게 다르게 읽힐지 알 수 없다.
글은 음악과 같아서, 작곡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악기로도, 컴퓨터로도 연주가 되고 그것을 듣고 난 뒤에야 비로소 감상을 할 수 있듯이, 글로 쓰는 것도 아직 감상에 있어서는 시작도 하지 않은 단계일 뿐이다. 읽고 내용을 파악하는 과정까지 마치고 나야 감상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악보를 해석해서 연주를 들려주는 중간 단계마저 독자가 짊어져야 하니 어쩌면 쉬우면서도 어려운 감상법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그 긴 과정 속에서, 수많은 독자들에게 오해하지 않을 표현을 단단하게 만들어 놓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내 글에게도 그 효용성만이라도 간직하게 하는 마지막 수단일지 모르겠다.
나는 나름 힙한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유행어를 섞어가며 웃기려고 하는데 분위기는 대체 새삼 왜 저러지, 하는 싸늘한 공기뿐인, 의도 자체가 공감을 얻기 힘든 것이었다면 몰라도, 전달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무관심을 야기한다면, 혹은 요점이 아닌 곳에 시선이 모아진다면 그것은 글을 쓰면서 깊이 고민하지 않은 것이다. 글을 쓰기 전의 고민이 글의 방향이라면, 글을 쓰면서 하는 고민은 표현이다. 그 방향을 어떻게 가리킬 것인가. 화살표가 잘못 그려진다면 잘못 쓴 것이다. 화살표로 가리킨 방향에 내가 생각지 못한 무언가가 있었다면 그건 조금 더 생각하고 고민하면 될 일이지만, 내 글에 있는 화살표가 내가 가리키려는 방향을 향하지 않는다면 그 글은 폐기해야 한다.
어린아이가 발음이 좋지 않아 상대방이 잘못 알아듣는 것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글을 써 놓고 그로 인해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고, 그 사실을 지적받고 나서
"내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라는 건, 그러면서 글을 내놓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그런 것조차 좋은 경험일 수 있지만, 그것도 나중에 돌이켜 보고, 혹은 다른 사람이 위로를 하면서 할 말이지 변명으로 할 말은 절대 아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일이 힘든 건지 모르겠다. 표현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문장으로 만든 모든 말의 의미가 스펀지처럼 말랑말랑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따스한 빛조차 경로는 단단하다. <가장 짧은 경로만을 통과한다>는 그 원칙은 우주의 그 누구도 깨지 못한다. 내 글도 그랬으면 좋겠다. 한없이 친절하고 부드러운 글이지만, 그 글이 가리키는 방향만큼은 어떤 수를 써도 왜곡할 수 없는 그런 글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