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싶을 때 글을 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글을 쓰는 것이다. 글을 쓰고 싶을 때는 <무엇 무엇에 대해 글을 쓰고 싶을 때>와 다르다. 단지 아무나 있는 카페에 앉아 밖을 내다보고 싶다거나 공원 벤치에 앉고 싶다는 것처럼 막연하게 글을 쓰는 자세를 하고 글을 쓰는 행동을 하고 마지막에는 그렇게 해서 글이 만들어지는 그 과정을 가지고 싶다는 것이지, 쓰고 싶은 대상이 있다는 뜻이 아니다. 쓰고 싶은 대상이 있으면 쓰면 된다. 그때는 자세도 필요 없고 장소에 대해서도 아무 상관이 없다. 컴퓨터가 눈앞에 있으면 컴퓨터로 글을 쓸 것이고 키보드만 있다면 휴대폰에 연결해서 글을 쓸 것이다. 집이라면 때로는 리추얼처럼 경건하게 타자기를 꺼내고 종이를 끼운 후 글을 쓸 수도 있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바로 수첩을 꺼내면 된다. 그렇지만 그저 글을 쓰고 싶다는 건, 마치 날 좋은 오후, 호숫가 풀밭에 앉아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고 싶다는 그런 것과 같다. 그냥 평소에 읽지 못했던 책을 펼치고 음악을 틀어놓는 것과 같다.
그런 상황에서 글을 쓰면 글의 내용은 상관없이 마음이 풀린다. 글을 쓰면서 나만의 생각에 잠기기 때문에 명상과 같은 효과가 있는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극기훈련이니 뭐니 가면 마지막 밤 꼭 하던 모닥불 바라보는 순서가 있었는데 불이 거의 다 꺼졌을 때, 그래서 불속을 바라보면 발개진 나무토막들이 하나하나 보이고 타닥타닥 하는 소리도 훨씬 선명해졌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가 생각난다.
아무리 말이 되지 않는 글을 써도 신기한 것은, 내가 충분히 썼다고 생각하고 다시 읽고 지울지 말지 결정하기 전까지 시간은 도도하게 흐른다는 것이다. 다시 읽어보니 말 그대로 기분 전환용 행사였구나 싶을 때가 있고, 그래도 쓸만한 글이 나왔다 싶을 때도 있지만 그런 결과는 상관없이 시간은 비슷하게 걸린다. 공통점을 굳이 찾자면 마음이 많이 편안하고 가라앉는다는 것. 그래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쓰는 글은 그 글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글을 쓰는 데 보낸 시간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시를 읽거나, 덤덤하게 풀어쓴 글이지만 챕터 하나가 끝날 때마다 책을 덮고 그 장면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책을 읽을 때도 읽은 페이지수나 양에 비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 의아했던 적이 있었다. 똑같은 글자 수에는 똑같은 양의 정보가 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글자들 사이에는 정보가 똑같이 들어가 있을 수 있겠지만, 행과 행, 문장과 문장 사이에는 쓰여 있지 않은 말이 숨어있을 수 있다. 그 정보라는 것은 앞뒤 문장이나 글 전체에 숨어 있을 수도 있지만 내 인생에 숨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작가조차 말하지 못한 것을 내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그런 생각도 해 보았다. 누군가를 만나 내용도 없는 수다를 떨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소리를 어디서 읽었는데 그게 내가 글을 쓸 때 느끼는 그런 건가 하고. 책을 읽을 때와 비슷하다고 느꼈지만, 그 비슷하다는 것이, 사실은 전혀 비슷하지 않지만 그 정도 거리로 접근한 활동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비교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나서 글을 쓰면서 마음이 나아지는 것과 정말 비슷한 활동을 내가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면 찾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어쩌면 그것이 백팔 배일 수도 있고 러닝일 수도 있고 줄넘기 오백 번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육체적인 활동이 아니라면 악기 연주일 수도 있겠다. 아니 악기 연주는 아닌 것 같다. 소리는 내지 않는 편이 더 좋으니까.
글을 쓰고 싶을 때 글을 쓰듯이 그런 활동도 하고 싶을 때 하면 되겠지만 생각해 보니 모두 별로 하고 싶지 않다. 이제까지 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그 말은 그 활동 중에서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글을 쓰는 것보다 나을 것 같지 않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아서 눈 쌓인 숲을 걷는다는 건 등산을 의미한다. 그냥 눈 쌓인 나무 주변을 걷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인데 눈 쌓인 숲은 어렵다. 빌딩숲도 미끄럽거나 눈이 다 치워져 있거나 둘 중 하나이기 때문에 쉽지 않다. 막연히 뭔가를 세상에 내놓고 싶다, 나밖에 보지 못하겠지만 그렇게 작디작은 의미만 담은 글이나마 혼자서 취미로 인형옷 만들어 보듯이 써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쓸 때면 종이 위에, 화면 위에 써지는 글자들이 상상 속의 핀란드 숲 속, 나무와 나무 사이의 거리로 보건대 길이 틀림없지만 이미 눈에 덮여서 볼 수는 없는 길에서 아무 발자국 없는 눈 위로 힘겹게 뽀드득뽀드득 소리를 들으며 의외로 은하수만큼이나 많을 눈송이보다 내 두 발이 내는 소리가 더 크다는 것에 놀라며 집으로 향하는 길에 뒤돌아보았을 때 문득 발견한 내 발자국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내는 발자국이지만 처음 가보는 길은 아닌, 더욱이 내가 태어나기보다 몇백 년 전에 이미 만들어져 있는 길이니까.
그래, 내가 쓰는 모든 글은 미래의 나에게는 발자국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