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새가 날아간다. 부리에 뭔가를 문 것처럼 머리를 가누면서 날아가지만 자세히 보면 아무것도 물고 있는 것은 없다. 단지 날아가는 모양이 그런 것뿐이다. 사람들은 황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옛날이야기가 그렇지 뭐"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황새가 아기를 물어다 준다는 동화를 듣고 자란 사람들이다.
하지만, 땅에서 한참 위에 떨어진 어느 곳, 하늘도 아니지만 우주도 아니다. 어떤 곳에도 속하지 않은 별이 있다. 이곳은 우리가 사는 곳과 달리 낮이 없는 곳이다. 해가 뜨고 지지 않지만 완전히 어둡지도 않다. 불을 켜서 밝은 곳도 있지만, 신기하게도 불빛이 없어도 완전히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은 없다.
영희는 이곳에서 300년을 살았다. 영희뿐 아니라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무척 오래 산다. 노인들은 700살 정도 되면 세상을 떠난다. 아기들은 황새가 물어 온다. 그 아기들이 어디서 태어나는지, 태어난 지 며칠이나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곳에서 태어나는 아기들도 있지만 황새가 물어오는 아기들이 훨씬 많다. 그리고 이곳에서 태어나는 아기들은 500년 정도 살면 세상을 떠난다.
영희는 어떻게 태어났는지 기억이 없다. 다른 사람들처럼 황새가 물어 왔다고 한다. 학교도 있고 여러 가지 직업도 있지만 생존을 위해서 하는 일은 없다.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되지만 먹는 즐거움을 위해 음식을 먹는다. 산에 가는 길에 각종 작물들이 자라고, 이것들로 어려서부터 요리를 배운 아이들이 요리를 한다. 영희나 그 밖의 요리사가 아닌 사람들은 한 번씩 맛난 음식을 맛보고 싶을 때 요리사의 집에 들러 만찬을 즐긴다.
이곳에는 외지인이 자주 들른다. 신기하게도 남쪽 산에는 동굴이 있다. 이 마을의 남쪽일 뿐, 별의 남쪽은 아니다. 아마도 적도 부근일 것이다. 별이 무척 작기 때문에 걸어서 다섯 시간 정도면 갈 수 있다. 이 마을 사람들은 호기심이 없기 때문에 일부러 가볼 일은 없지만, 반드시 가야 할 일은 있는 법이다. 세상을 떠나게 되면 노인들은 그 동굴로 들어간다. 그 동굴은 땅속으로 통해 있고, 그 땅 속은 저승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고 저승으로 간 노인들은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서 태어나는지는 모른다. 외지인들이 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외지인들은 노인들이 들어가는 동굴에서 나와서 몇 시간 후면 다시 그 동굴로 들어간다.
이곳은 낮과 밤이 없는 곳이지만 하루 종일 일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대략 가장 큰 별이 보일 때를 낮이라 부르며 일을 하고 그 별이 보이지 않게 되면 밤이라고 하고 잠을 잔다. 잠을 자지 않아도 별로 문제는 없다. 영희도 어릴 때 며칠을 잠을 자지 않고 이것저것 해 보았지만 특별히 몸이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차피 호기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외지인들도 밤에는 오지 않기 때문에 할 일이 없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옆방의 일연이 분주하게 준비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외지인들을 맞이하는 일을 한다. 자동차를 운전해서 사람이 스무 명 정도 탈 수 있는, 좌석이 고정되어 있는 수레를 매달고 동굴로 갔다가 외지인들을 태우고 마을로 온다. 자동차가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른다. 노인들도 알지 못했지만, 옛날에 자동차가 없을 때는 외지인들도 다섯 시간씩 걸어왔다가 다섯 시간씩 걸어 나갔다고 했다. 오고 가면서 보내는 시간이 바쁘니 마을에 별로 머무르지 않았고, 길에서 하는 이야기가 많았다고 했다. 지금은 외지인들이 오고 가는 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다 보니 외지인들이 마을에서 말이 너무 많아졌다. 덩달아 마을 사람들도 외지인들을 따라서 말이 많은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교묘하게 외지인들이 재미 삼아 이간질을 하면 실제로 그 때문에 싸우는 주민들까지 있다.
영희가 하는 일은 외지인들이 가지고 오는 돌멩이를 다듬는 일이다. 외지인들은 맨손으로 올 때도 있지만 가방에 바위를 넣어 오는 일도 있다. 가방을 열면 때로 조약돌 만한 돌에서 가방보다 더 큰 바위가 나올 때도 있다. 이곳이 신기한 것인지 외지인들의 기술이 신기한 것인지 모르지만 어째서인지 호기심이 없는 곳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 이유를 캐려고 하지 않았다.
일연은 두 번인가 외지인들과 결혼을 한 적이 있었다. 밤이 되면 영희와 셋이 놀고는 했는데, 외지인은 80년 정도를 살고 나자 노인들을 따라 동굴로 갔다. 그리고 보통은 일연과 시간을 보냈지만 영희와 셋이 시간을 보낼 때면 자신의 원래 삶에 대해 조금씩 생각나는 조각들을 말해 주곤 했다.
일연은 두 번째 남자가 동굴로 돌아간 후 자신도 노인들을 따라가겠다면서 동굴로 가 보았지만, 몇 번 시도를 했어도 동굴 속에서 혼자 길을 잃고 되돌아오고는 했다.
"우리는 죽을 수도 없는 운명인가 보다."
일연이 영희에게 한탄하며 말했다.
"그 남자가 한 말이야? 죽는다는 거?"
"응. 이곳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거지. 그 사람이 원래 살던 곳에서는 몸은 남는대. 그런데 여기서는 몸까지 사라져 버리니 원래 없던 사람이 되는 것과 뭐가 달라?"
하지만 영희 생각에 여기서 몸이 남아 있다고 해도 애초에 서로에게 관심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라 달라질 것은 없어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 남자의 이야기로는 자신은 죽은 게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이곳에 자면서 와본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자기가 어떻게 여기에 와서 이렇게 오래 있는지는 모르지만 잠에서 깨면 떠나야 할 거라고 말했다. 일연은, 아마 죽어서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여기서 태어나거나 황새가 아기로 데리고 와야 하는 게 맞다는 의견을 내었다. 영희 역시 그 남자가 외지인들이 오는 동굴을 통해 온 것을 보면 보통 외지인들이 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잠을 자고 있는 것이라는 것에 동의하였다.
보통 외지인들은 오면 이틀 정도 있다가 간다. 가끔 두세 번 연속으로 오는 사람들이 있어서 물어보면 그 이틀이 자신의 세계에서는 10분 정도인 것 같다고 했다. 여기와 시간 개념이 현저히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80년 정도 살면 죽는다고 하는데, 계산해 보면 700년을 산다고 해도 그리 오래 사는 것은 아닌 셈이다.
영희가 하는 일은 마을의 지하에 있는 서고 같이 생긴 창고에 다듬은 바위를 보관하는 일이다. 창고에 내려가면 수시로 여기저기에 있는 바위들이 빛을 낸다. 단 하나도 빛을 내고 있지 않을 때는 없다. 세상에는 이런 마을이 수없이 많이 있고, 그 마을들마다 이런 돌들을 이만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영희가 하는 일을 똑같이 하는 사람들이 이 마을에만 다섯 명이 있다.
그 남자가 어느 날 일연이 외지인들을 태우고 동굴로 돌아가서 혼자 있게 되었을 때 마을로 나와 영희가 일하는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재미있어 보여요?"
신경이 쓰여서 영희가 물었다. 남자는 살짝 미소를 짓더니
"그거 무슨 돌인지 알 것 같아요."
"이거 외지인들이 주고 간 돌이에요. 돌을 다듬으면 돈을 받아요."
"그 돈으로 뭘 하죠?"
"돈이 많으면 우리 마을이 잘 살게 되지요. 저는 마을에 더 많은 기여를 하게 되고요. 좋은 일을 많이 하면 나중에 돌아오는 것도 많지 않을까요? 뭐가 어떻게 되는지는 들은 바가 없지만 그게 당연한 것 같아요."
"내가 보니까 그건 잠자는 사람들이 꾸는 꿈이에요."
"그걸 외지인들이 왜 가지고 와요?"
"잠을 자면 꿈을 꾸는데, 그것이 때로 자신과 관련이 전혀 없는 꿈을 꾸기도 하거든요. 아마 보관해 놓은 돌에서 읽어오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자신이 밖에서 겪은 외지인들의 잠과 이곳에서의 자신의 잠이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는 남자 덕에 무슨 말인지 알게 되었다. 물론, 생각을 해서 알게 된 것보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난 남자가 자신의 침대에 생겨난 바위를 가지고 왔을 때, 그 바위가 외지인들이 가지고 온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뭔가 들어맞게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 바위는 꿈이고, 나는 다듬는 사람이다.
남자는 자신의 바위를 보면서 꿈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래서 영희에게 보관해 달라는 말을 하지 않고 자기 방에 두었다. 그리고 어느 날, 일연에게 말했다.
"이거 이제 그만 보관해도 될 것 같아. 그리고 나도 떠날 때가 되었어. 이 꿈 말고 남기고 갈 수 있는 것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일연은 그전에도 똑같이 이별한 적이 있었기에,
"아니야, 원래 그런 거야. 저거라도 두고 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야. 이걸 남겨두면 나보다 당신이 더 여기를 그리워하게 될 거야."
그러고 나서 일연은 영희를 불렀다.
"아무래도 이걸 다듬는데 이 남자가 도와주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외지인들은 꿈을 어떻게 다듬든 그냥 돌로밖에 못 보니까 도움이 되지 않잖아. 이 남자는 이 안에서 꿈도 볼 수 있대. 도움이 될 거야."
그리고 영희와 남자는 그 돌을 다듬기 위해 외지인이 없을 때마다 만나서 의견을 나누었다. 남자가 말했다.
"이 안에는 동그란 모양으로 꿈이 있어요. 자세히 보면 빛나는 부분이 있는데, 거기를 보면 제 꿈이 보여요."
"하지만 노인들이 이야기해 주었어요. 우리도 한때는 구가 완벽한 도형이라고 생각해서 구형으로 깎으려고 했는데, 꿈은 완벽한 구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그렇게 하다가 구의 일부라도 정이 닿으면 바위가 액체처럼 터져 버렸어요."
"터질 때 닿으면 다치나요?"
"다치는 게 뭐예요?"
"뛰다가 넘어지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지거나 할 때 피가 나는 거요."
"뛰다가 넘어지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지거나 하는 일은 종종 있지만 어떻게 되지는 않아요. 다시 일어나면 되죠."
"제가 있던 곳에서는 그게 잘못되면 죽을 수도 있어요. 깊은 잠에 빠질 수도 있고요."
하지만 영희가 있는 곳에서는 피가 뭔지도 모르고 다치는 일도 없다. 바위를 다듬다가 잘못해서 정에 찔리거나 맞아도 그냥 그뿐이다. 그렇게 이해가 안 가는 것들은 건너뛰고 남자의 말 중 이해가 가는 것들만 받아들이기 시작하니 어느 순간 바위 안에 동그스름한 것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혹시 안에 주황색으로 빛나는 저거 말씀하시는 거예요?"
"맞아요. 그게 꿈이에요. 꿈은 이 바위 전체이지만, 그 부분만이 핵심이에요. 솔직히 저 돌 통째로 가 아니라 그 부분을 보관하는 게 창고의 목적일 거예요."
"그러면 왜 바위가 통째로 왔죠? 외지인들도 저것만 가지고 오면 될 텐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저는 특이한 케이스이고, 꿈이 어디부터 어디까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알지 못해요. 그냥 꿈을 꾸면 그대로 가지고 오는 거예요."
"그럼 당신도 모르는 거예요?"
"저는 제 바위를 10년 넘게 보았어요. 이제 알죠."
"그게 뭐죠?"
"저는 살아 있을 때 회사원이었어요. 회사에서 즐거운 일이 있었는데, 이게 그 꿈이에요. 단체로 축구를 보러 갔었는데, "
"축구요? 그게 뭔가요?"
"20명 정도가 하는 경기인데 수천 명이 같이 구경을 해요. 그 구경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어요."
"수천 명이 20명이 하는 일을 감시한다는 거예요?"
"재미로요"
"그건 재미가 없어요. 너무 잔인해요."
"대신 그 스무 명은 돈을 많이 벌어요."
"돈은 의미가 없잖아요."
"제가 있는 곳에서는 돈은 나만의 것이에요. 의미가 있어요."
"나만의 것이 많아도 그걸로 음식을 바꿔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남들 다 가진 집을 더 갖는다고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제가 있는 곳에서는 음식으로 바꿔먹을 수도 있고, 집도 없는 사람이 더 많은 데다가 돈이 많으면 다른 사람 집을 빼앗을 수도 있어요."
"그런 곳에서 어떻게 살죠?"
"원래 그런 곳에서 살았으면 살 수 있어요. 영희 씨는 힘들겠네요."
"전 여기가 좋아요.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요."
"어쨌든 축구를 보면서 기분이 좋았던 경험이 꿈으로 만들어졌어요."
"기분 좋은 거였으면 다행이네요."
"네. 이게 그 꿈이에요. 그리고 주황색 부분은 기분이 좋은, 경기를 선수들이 잘 해낸 순간이지요."
"그럼 주황색 부분이 아닌 곳은요?"
"아마 나머지 부분 때문에 영희 씨가 힘들게 바위를 깎는 일을 하는 것 같아요."
"뭔지 아신 거예요?"
"네, 들여다보니 보였어요. 처음에는 아니고, 몇 년 계속 매일같이 쳐다보니 알겠어요. 그건 이곳에 없을 때, 살아 있을 때의 저예요."
"잠깐만, 살아 있을 때의 당신이요? 꿈을 꾸었다는 걸 보면 아직 살아 있는 것 같은데요?"
"맞아요. 이제까지 죽어 있듯이 살아 있었지만 이제 돌아가서 깨어날 때가 되었어요. 그래서 말해주는 거예요. 이왕 일하시는 거 우리 모두에게 더 좋게 일하시라고요."
"음.. 다시, 나머지 부분이 그럼 뭐인 거죠?"
"아까 얘기한 대로 저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자 보세요, 지금 대화를 꿈으로 꾼다고 해보세요."
"네."
"영희 씨가 제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것을 알아서 기분이 좋아졌다고 합시다."
"네..."
"새로운 것을 알아서 기분이 좋아졌다는 자체가 주황색 부분인 거예요."
"나머지 부분은요?"
"영희 씨가 원래 하는 일, 그리고 제 얘기겠죠. 그래서 빼야 하는 부분이죠."
"왜죠?"
"제가 보기에 창고에 있는 바위들은 나중에 꿈을 꿀 때 사용돼요."
"그래서요?"
"꿈을 꾸면서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정보가 섞여서 나오는 거예요.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나와 상관없는 꿈이네'하고 잊어버리는 거죠."
"그러면 안 돼요?"
"여기에 바위로 된 꿈을 보관하는 게 아무 의미가 없는 거라면 상관이 없겠지만, 우주의 시스템이 일부러 보관을 한 꿈을 다시 불러내게 했다는 건 꿈을 꾸는 데 의미가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만들었잖아요. 영희 씨나 다른 네 분도."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죠? 한 번에 주황색 부분이 보이는 것도 아닌데."
"영희 씨도 지금 제 꿈에서 주황색 부분을 봤잖아요?"
"네."
"요령을 찾았어요. 일단 겉면을 모두 갈아내세요. 영희 씨 작업장에 안 쓰는 기계 있잖아요?"
"겉을 갈아내는 거요? 그건 제가 오기 몇백 년 전부터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제가 보기에 여기에 의미가 없는 것은 없어요. 그걸 꺼내 봅시다."
"그럼 꺼내서 동작을 하는지는 해 볼 게요. 쓸 줄 아는 사람도 없어요."
"제가 도와줄게요."
영희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작업장에 원래 들어오시면 안 되는데... 대신 들어오시면 어떤 바위에도 손을 대시면 안 돼요."
"알겠어요."
그렇게 밤새도록 뒤져본 끝에 사포가 달린 기계를 찾았다. 너무 단순하게 생겨서 기계인 줄도 몰랐다. 기계는 영희가 손을 대자 무서운 윙윙 소리를 내며 사포를 돌렸다. 소리가 밤중에 울려 퍼져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영희야, 그게 뭐냐?"
마을 안에서 외지인들이 아무 데나 들어가지 못하게 관리하는 정규가 물었다. 정규도 이미 600살이 넘어서 언제 동굴로 가게 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거 바위 다듬을 때 쓰게 될 것 같아요."
"어디서 났는데? 아무거나 막 쓰면 안 돼!"
정규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정규는 외지인들이 와서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함부로 그런 걸 얘기하면 안 된다고 저지하곤 했다. 쓸데없는 정보라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아니에요. 이거 원래 여기서 사용하던 거예요. 제가 왔을 때도 안 쓴 지 오래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옛날에는 썼다는 소리죠."
"그걸 갑자기 왜 쓴다는 거냐?"
"일을 좀 더 빨리 끝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일찍 끝내서 뭐 하게? 조용히 좀 하면 안 되겠냐?"
"어떻게 일을 할지를 알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이걸 꼭 써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만들어 놓았겠죠."
정규가 불만 섞인 얼굴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뒤에서 다른 아주머니가 소리를 쳤다.
"그럼 우리는 전부 일을 잘못하고 있다는 거야? 너만 맞고? 너 같은 마을 사람 맞아?"
바위를 다듬는 다른 가게 주인이었다. 그 말도 맞다. 하지만 일은 제대로 해야 하니까.
"저도 몰랐는데, 아주머니도 가게 뒤져 보시면 이거 있을 거예요. 옛날에는 다 쓰던 건데 쓰던 이유가 있어요. 저도 지금 깨달았어요."
"안 쓰게 된 이유도 있겠지!!"
"그걸 안 써도 잘하게 돼서 안 쓰게 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저는 그걸 안 쓰고는 그걸 쓴 것처럼 할 수가 없어요."
그래도 막무가내였다. 그때 남자가 끼어들었다.
"아주머니 잠깐만 가까이 오세요."
"아니, 외지인이 어딜 끼어들어?"
"영희 씨, 제 꿈을 얇게 한 겹을 벗겨낸다는 생각으로 골고루 갈아내 주세요."
아주머니는 불러 놓고 대꾸를 하지 않는 남자를 계속 노려보고 있었다.
영희는 바위를 살며시 기계 가까이 댔다. 불꽃을 튀며 바위고 골고루 갈려 나갔다. 영희는 재빨리 방향을 바꾸며 바위를 빙글빙글 돌렸다. 빠진 부분이 없이 모두 갈리자 갑자기 거친 소리가 위잉하는 소리로 바뀌었다. 영희는 기계를 멈추었다.
"와"
모여 있던 마을 사람들이 모두 탄성을 질렀다. 바위 안쪽의 주황색 동그란 풍선 같은 것이 빛을 내는 것이 확연히 보였다. 바위는 약간 하트 모양 비슷했지만 그 안에 있는 것은 구에 가까운 모양이었다.
남자가 말했다.
"이 안의 동그란 부분만 남기고 깎으면 되는 겁니다. 밖의 하얀 부분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부분이에요. 수많은 변주가 가능한 꿈인데, 이렇게 남겨 놓아서 특정한 정보가 섞이면 그 정보까지 포함한 꿈을 꾸어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꿈을 꾸는데 방해가 되죠. 실제로 꿈을 꾸어 본 사람으로서, 저와 상관없는 이런 부분이 있는 꿈을 꾸면 '개꿈'이라고 부르면서 가치가 없다고 취급했어요. 그리고 그게 맞다면 실제로 꿈의 가치를 깎아먹는 게 맞고요."
"네가 뭘 알아?"
아주머니가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외지인들은 우리가 필요하니까 가지고 오는 거야. 방법이 잘못됐으면 안 오겠지. 아니면 지들이 알아서 하던가 했을 거야! 무슨 외지인이 꿈이 어쩌고 저쩌고, 받아주면 감사한 줄 알아야지!"
결국 남자는 사과를 하고, 아주머니에게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아주머니는 씩씩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정규가 영희에게 물었다.
"이 기계는 계속 쓸거니?"
"네, 써야 할 것 같아요. 보셨잖아요? 그 용도가 맞을 거예요. 그 남자 말처럼 다 갈아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주황색 부분이 보이게라도 보관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알겠다. 여러분도 아셨으면 이제 가시죠. 이런 소리가 나면 그냥 이건가 보다 하십시오."
그렇게 사람들이 물러갔다.
얼마 후 남자도 동굴로 돌아갔다. 그리고 몇십 년이 지나 영희가 400살 가까이 되었을 무렵, 외지인들을 태우고 온 일연이 영희를 찾아왔다.
"옛날 그 남자가 다시 왔어. 그런데 나를 못 알아봐."
"이번에는 이틀이야?"
"응, 내일 가는 사람들 틈에 있어."
"건강해졌나 보다. 다행이네. 그렇게 생각해."
"응..."
몇 시간이 지나자 영희 앞에 그 남자가 나타났다. 영희도 반가웠지만 일연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였기에 남자에게 말을 걸진 않았다.
남자가 다른 사람들이 준 바위를 갈아내는 영희를 보고 물었다.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갈아내지 않던데, 여기는 조금 다른가요?"
"여기는 돈을 더 받지요."
"이유가 있어요?"
"보고 계셔 보세요."
영희는 여유 있게 바위를 한 겹만 갈아냈다. 몇십 년 전 남자가 하라는 대로 갈아냈을 때와 같은 속도였다. 다 갈아 내자 붉은빛을 내는 원형이 비쳐 나왔다.
"저 부분을 건드리지 않게 하면서 최대한 저 모양대로 갈아낼 거예요."
"저 부분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데요?"
"저 부분이 핵심이라서, 저 부분이 깨지면 이 바위는 통째로 없어져요. 액체가 되어 사라지는 거죠."
"이 바위가 뭐길래요?"
"뭐긴요? 꿈이죠. 다른 곳에서 꾼 꿈 중에서 기억할 만한 것들을 가지고 오시는 거예요."
"어떻게 알고 우리가 여기로 가지고 왔죠?"
"뭘 알아서 가지고 온 것이 아니에요. 저절로, '가래야 하니까', '우주의 시스템 상 어쩔 수 없이' 들렸다 가시는 거죠."
"저 부분을 갈아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이 꿈들은 보관되어 있다가 다른 사람의 꿈이 되기도 한답니다. 그렇게 인류는 점점 발전해 나가는 거죠. 가끔 기발한 꿈을 꾸었던 것이 다시 사용되게 되면 더 이상 기발하지 않은 것이 됩니다. 그게 꿈의 용도예요. 인간은 처음부터 발전하도록 만들어진 존재예요."
"그래서요?"
"만약에 이 돌멩이 때문에 행복한 꿈을 꾸셨다고 해 보세요."
"네."
"나중에 손님을 모르는 다른 사람이 꿈을 꾸었는데, 그 꿈에서 내 이름이 손님의 이름이고 그곳은 가본 적 없는 이상한 이름의 장소이면 행복했던 꿈을 꾸더라도 현실성이 있을까요?"
"현실성이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이 원형 부분만 남아 있으면, 꿈을 꿀 때는 자신의 정보를 거기에 입히면 되지요. 꿈 자체에 다른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는 건 나만의 꿈이 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뜻이에요."
"그게 중요한가요?"
"나만의 꿈이 되지 않으면 쉽게 잊어버리지요. 그냥 잊어버리고 꿈이었던 적도 없던 것처럼 되어 버리면 이렇게 보관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보관한다는 자체의 의도를 생각해 볼 때 필요한 작업이라는 거죠?"
"저도 태어나면서부터 이 일을 하게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가 없어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후 입을 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별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는데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네, 물어보세요."
"혹시 그 말씀대로라면, 제가 지금 꿈을 꾸고 있다는 뜻인가요?"
"네, 맞아요. 꿈속이세요."
"아까 트럭을 타고 올 때 운전하시는 분 보고 괜찮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럼 이 꿈도 기억이 날 수 있겠죠?"
"아마도, 그렇다면 다음번이나 언젠가 돌이 올 거예요. 저희 말고 다른 마을로 갈 수도 있겠지요."
남자는 한참이나 작업하는 모양을 보면서 감탄을 했다.
멀리서 일연은 그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영희는 정을 들고 바위를 깼다. 조금씩 조금씩 작아지는 바위를 보면서 남자를 흘끗 쳐다보았다.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영희는 살짝 입가에 미소가 비쳤지만 남자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