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길은 순조로웠다. 학교에 가니 운동장에 우리가 탈 버스들이 일렬로 죽 서 있었다. 어차피 선생님들도 절반 이상이 차를 가지고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주차장이 꽉 찬 적도 없기는 했지만, 버스가 운동장에 들어와 있는 모습 또한 보기 힘든 광경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학교 앞 육 차선은 횡단보도만 있을 때에도 위험하기는 해도 여유를 가지고 서 있다 보면 건널 틈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차가 적게 다녔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신호등이 생겼을 때는 더 편하게 건너기는 했지만, 빨간 불일 때도 차가 한 대도 없을 때 종종 뛰어 건너는 아이들이 있기는 했다. 그런 때였으니 운동장에 버스가 열 대 넘게 서 있는 모습이 생경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버스가 우리가 탈 버스라는 사실은 아주 이상한 느낌을 주었다.
교실에 앉아서 선생님의 주의사항 이야기를 듣고 내려와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5-4'라는 숫자가 크게 프린트되어 있었다. 보통은 매직으로 대충 써 놓던데 신기했다.
극기훈련이라서 6학년 때 갈 수학여행에 비해서는 별로 재미가 없을 거라고 했다. 놀러 가는 게 아니라 '훈련'을 하는 거라는 주의사항도 몇 번이나 들었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연습을 실전처럼 해야 한다고 했고, 그 연습은 늘 문제 푸는 것뿐이었는데 갑자기 훈련이라면서 다른 곳에 간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버스를 타자마자 김밥을 꺼내 먹는 애들이 있었다. 나는 타자마자 자동차 냄새에 적응이 되지 않아 혹여 멀미를 할까 봐 걱정되어 숨도 조심스럽게 쉬었다. 그런데 김밥 냄새가 퍼지자 약간 멀미를 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 상태로 더 진행은 되지 않았다. 창가에 앉아서 창밖만 며칠 굶은 닭처럼 쳐다보고 있는데 옆자리 앉은 아이가 게임을 할 거라고 같이 할 건지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물었다.
"너네 멀미 안 해?"
"출발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멀미를 해? 너 멀미해?"
"아니, 아직 하진 않는데 속은 좀 불편해."
"야, 조금만 조용히 하자. 얘 토할 것 같대."
"내가 언제 토할 것 같댔어, 속이 불편하다고만 했지."
"차에서 속이 불편하면 토하는 거야. 누구 검은 비닐봉지 있어?"
무슨 말을 해도 다 깔깔거릴 만한 웃긴 얘기가 될 만큼 모두 들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어디서 읽은 일정 그대로인데, 그 어디서 읽었다는 것도 인터넷이라는 게 없었던 시절이라 이미 책이나 신문처럼 인쇄돼서 오랫동안 새겨져 있는 그런 것인데도 다들 수업이 없는 것만 생각해서인지 기분이 좋았다.
담임 선생님도 차를 타면 속이 별로 좋지 않은 타입이었는지,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버스들은 모두 만화영화를 보았다는데 우리 버스는 텔레비전을 틀지 않고 음악만 틀어 주었다. 그래도 다들 시장통처럼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랑이란 건 싫증 나면 버리는 장난감이 아냐"
최신 노래가 나오자 다들 합창하듯 따라 불렀다. 노래 하나 따라 부르는 게 즐거울 리가 없는데도 게임을 하던 아이들까지 전부 그 이후로 내리 다섯 곡을 다 같이 불렀다.
그렇게 버스는 장장 세 시간을 달렸다. 그리고 잠시 내린 곳은 휴게소.
"화장실 갔다 와. 화장실만 갔다 와야 돼. 뭐 사 먹는다고 늦으면 안태우고 그냥 간다. 뒤에 따라오는 선생님 있어. 그 선생님 차 타고 둘이 따라오게 할 거야."
그 따라온다는 선생님은 학년에서 제일 무섭다고 소문이 난 선생님이었다. 일단 화부터 낸다고 해서 평도 좋지 않았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모두들 표정이 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게소에서 속을 비운 아이들은 금세 감자와 가락국수 메뉴를 보고 군침을 흘렸다. 결국 김밥을 먹어치워 버린 그 녀석이 찐 감자를 사가지고 왔다. 가락국수는 아무래도 가지고 버스에 타기 힘들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때도 국물 있는 음식을 일회용 그릇에 담아주었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걸 가지고 타는데 집어먹을 수 있게 이쑤시개를 꽂아준 것이 문제가 되어 입구에서 선생님에게 뺏기고 말았다. 하지만 이미 너무 배가 고파서 김밥까지 다 먹어 버렸다는 말에 이쑤시개만 버리고 들어가서 식으면 손으로 먹는 선에서 정리하고 들어갈 수 있었다.
도착해서 짐을 풀자마자 시작된 극기훈련 일정은 정말 듣던 그대로였다. 새로울 것도 하나도 없이, 교관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겁을 주고, 우리는 달리기를 하고, 장애물 넘기를 하고, 군대 같은 천막에서 식판에 밥과 반찬을 받아먹고 내무반과 다른 점이라고는 이층 침대라는 것뿐인 숙소에서 잠을 잤다. 피곤한 하루가 가고 밤에 침대의 2층 사이를 뛰어다니는 애들을 말리다가 다리가 발에 깔려서 우는 애부터 해서 끝까지 조용히 가지 않는구나 싶을 때, 다 편안한 차림으로 운동장으로 나오라는 방송이 나왔다.
방송을 듣고 준비물을 챙겨서 운동장으로 나가니 커다란 모닥불이 있었다. 그것도 모두 알고 있던 그대로였다.
'이제 우는 시간이겠구나'
모닥불 주위에 반별로 앉았다. 스피커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가 끊임없이 무한반복으로 나왔다. 교관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엄마, 아빠 죄송했습니다."
같은 편지를 읽어 주었다.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예상대로였다. 그런데 뒤에서 코 푸는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나에게 일정에 대해 미리 이야기해 주었던 바로 그 녀석이 눈이 빨개져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너 왜 안울어?"
라는 것이었다.
"네가 얘기 다 해준거잖아."
라고 하자 뭐라고 웃으면서 욕설을 했다. 나도 웃었더니 다시 고개를 숙이고 코를 풀었다.
마무리는 5분 정도 줄 테니 부모님께 편지를 쓰라고 했다. 나는 이미 써 갔기 때문에 가만히 있었다. 교관이 지나다니다가 나보고 뭐 하냐고 해서 편지봉투에서 편지를 꺼내서 글씨가 쓰여 있는 것을 보여주었다. 교관이 고개를 끄덕이고 지나갔다.
그렇게 숙소에 들어와서 가라앉은 분위기로 잠을 자고 아침이 되자 다시 시끌벅적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일어나 보니, 베개 싸움이 벌어져 있었다. 나는 얼른 고개를 숙이고 자는 척을 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눈을 감자마자 누가 베개로 얼굴을 때렸다. 독한 놈들. 눈을 감고 있으니 졸려서 그대로 잠이 다시 들었다가 방송 소리에 깨어났다.
아침을 똑같이 식판에 먹는데, 어제 일정 때와는 달리 교관들이 아주 친절했다. 우리가 이제 가니 그런가 보다 했다. 밤에 사고가 나면 안 되니까 화를 내면서 분위기를 잡은 건가.
오전에는 훈련이 아니라 오락 같은 그런 게임만 조금 했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반별로 짐 정리를 하고. 그리고 그때부터는 다시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가 다시 흘러나왔다.
도착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버스가 일렬로 서 있었고 반별로 다시 반이 쓰여 있는 버스를 찾아 탔다. 다시 탈 때는 설레는 건 없었기 때문에 다들 타자마자 잠이 들었다. 노래도 틀어준 것 같기는 한데, 별 생각은 없었다. 아침에는 흐리기만 하더니 교관들이 일렬로 서서 웃으면서 손을 흔드는 것을 보면서 출발하고 마을을 하나 통과하는 동안부터 창문에 줄이 하나 둘 그어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순식간에 어두워지더니 비가 내렸다.
중간중간 깨어 큰 도로로 가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하늘이 매우 어두워서 밤인가 싶긴 했지만 가로등은 켜져 있지 않았기에 그 정도로 어두운 건 아니구나 싶었다.
갈 때처럼 한참 달린 끝에 휴게소에 들렀다. 똑같은 휴게소는 아니었다. 선생님이 말했다.
"어제와 다르게 그다음 도착까지 두 시간 정도 걸리니까 화장실 꼭 가야 돼. 전부 내려서 화장실 갔다 와"
그냥 계속 잠을 자려던 아이들은 쫓겨나다시피 내려서 화장실에 다녀와야 했다. 뭔가 먹을 걸 사 오는 아이도 없었다. 하지만 그때 잠을 많이 깬 것 같다. 그때부터 웅성웅성거리기 시작해서 나 역시 잠에서 계속 깼다 잤다를 반복했다. 앞 좌석 뒤에 달려 있는 손잡이와 재떨이가 거슬렸다. 무릎을 돌리고 옆으로 눕다시피 해서 자는데 옆자리에 앉아 있는 아이가 내 쪽으로 그렇게 하고 자고 있기에 마주 보고 기분이 이상해서 다시 창문 쪽으로 돌아 누웠다.
버스 뒤쪽에서 낄낄거리면서 쿵쿵하는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눈을 떴는데, 한 명이 큰 소리로 얘기하면서 팔걸이를 밟고 올라갔다가 통로로 뛰어내렸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선생님도 주무시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어쩌면 쿵쿵거린 건 다른 일이었고, 하필 내가 쳐다보았을 때 팔걸이에 올라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계속 그랬다면 기사 아저씨라도 뭐라고 했을 테니까.
그때 갑자기 차가 쏠렸다. 앞으로였다. 순식간에 앞 좌석 쿠션에 머리를 박았다. 그 아이를 보다가 고개를 돌린 직후여서 정면으로 박았다. 쿠션이라 아프거나 하지 않았는데 똑바로 앉자마자 다시 뒤에서 다른 충격이 있었다. 그 충격 때문에 강제로 똑바로 앉게 되었다. 그리고 곧 다시 앞 좌석 쿠션으로 머리를 박았다. 똑바로 앉자마자 안경을 다시 썼는데 이미 다리는 양쪽으로 벌어진 상태였다. 대충 맞춰서 쓰고 보니 버스 앞유리가 깨져 있는 것이 보였다. 여기저기서 여자 애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기사 아저씨가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지금 이 차로 운행할 수가 없으니 내려서 뒤차를 타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아니고, 갓길로 세운 다음에 차례차례 움직이세요."
그리고 담임 선생님이 마이크를 잡았다.
"들었지? 일단 얌전하게 앉아 있어. ㅇㅇ도 들어가고."
ㅇㅇ는 조금 전에 팔걸이에 올라가서 놀던 아이다. 서 있다가 충돌하는 순간에 맨 앞으로 미끄러져 나간 모양인데, 운전석 쪽으로 발을 향한 채로 통로에 딱 맞게 누워 있었다. 그쪽이 머리를 향한 것보다는 훨씬 낫기도 했고, 그 자세인 것을 감안하면 미끄럼 같은 거라 재미있을 것 같기도 했다.
차는 조금만 가서 곧 멈춰서 문을 열었고 우리는 맨 뒷좌석부터 일어나서 내렸다. 내려서 보니 우리 앞에도 버스 한 대가 있어서 우리 차가 받았고, 우리 차 뒤에도 버스가 있었다. 뒤에 있던 버스도 우리 버스처럼 앞유리에 금이 가 있었는데 이상하게 문을 열고 내리지 않고 있었다. 뭐 하는 건가 싶어서 보고 있으니 기사 아저씨가 안에서 앞유리를 뜯고 있었다. 문이 열리지 않아서 내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갓길 끝에 서 있으니 다른 반 버스들이 곧 도착했다. 한 줄로 갓길에 바짝 서고 우리는 한 대에 열몇 명씩 올라탔다. 그리고 거기부터는 한 시간 동안 입석이었다. 고속도로에서 입석이라니. 다리가 아프긴 했지만 팔걸이에 기대어 앉다시피 해서 나쁘지는 않았다. 맨 앞과 맨 뒤에 있는 아이들은 계단처럼 된 바닥에 앉을 수 있었지만, 중간은 콩나물시루처럼 되어 바닥에 앉을 수가 없었다.
소식이 미리 전해진 건지, 학교에 도착하자 구급차와 학부모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다음 날, 학교에는 몇 반의 누가 죽었다, 그래서 구급차가 와 있던 거다, 하는 소문이 있었지만 곧 다른 소문이 들리기를, 학교 앞에 있었던 구급차는 추가 사망자가 나올까 봐 대기하고 있던 거고 몇 반의 누구는 너무 위급해서 이미 고속도로에서 구급차를 타고 갔다는 것이었다.
그다음 날에는 다른 반에 갔다가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내 옆에 앉은 아이가 죽었다는 것이었다.
"야 너네 반에 ㅁㅁ라는 애, 사고 났을 때 죽었다며?"
"아닌데? 오늘도 학교 왔는데?"
"진짜야?"
"어. 내 짝이야."
알고 보니 우리 반에서 소문이 퍼졌던, 고속도로에서 실려가서 죽었다는 아이는 이빨이 부러져서 치료를 받았는데, 실제 그 반에서는 우리 반에서 사망자가 나왔다고 소문이 퍼졌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 수업이 끝날 때 선생님이 소문에 대해 말했다. 그 이빨이 부러졌던 아이 말고는 다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너네는 우리 반 애들 말고는 안 만나니?"
이상하다는 듯이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물었다. 그게 뭐 중요한가? 재미있는 얘기라는 게 중요하지, 그때 우리들에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