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붕 뜬다고나 할까. 4,5월이 되면 새 학기에 적응하고 나서 봄을 즐기던 학창 시절의 기분이 그대로 나를 사로잡는다. 운동장의 흙과 같은 색깔의 공기. 황사였지만 그 특유의 흙내음은 봄이라면 당연히 떠오르는 하나의 내용이다. 지금이야 그 황사에 각종 오염물질과 중금속이 섞여 있어 위험하다고 하지만 단지 사막의 모래가 바람에 밀려 올라간 것에 불과했던 과거의 황사는 운동장에 회오리바람이 불어 흙먼지가 날리는 것과 크게 다른 점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오후 두 시가 넘어서 햇빛이 레몬색으로 변해가고 아스팔트도 강렬한 노란색 햇볕에 검은색을 잃어갈 때, 길가에 있던 개나리들은 또 얼마나 반짝이던지.
그러나 그 시기는 '정말 봄이 왔구나' 싶을 때 금세 지나가 버렸다. 지금, 봄이나 가을이 너무 짧다고 느끼지만 그때도 그 좋은 봄다운 봄은 금세 지나버리고 말았다. 올해는 미세먼지도 서너 번인가에 불과해 마스크를 쓰라는 이야기도 별로 나오지 않았던 것 같고 수시로 비가 오고 나면 기온이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오곤 하는 일도 반복되었다. 항상 황사와 함께 그 특유의 햇빛의 각도, 그전까지의 서늘함 때문에 상대적으로 강하게 느껴지는 따뜻함이 3월의 끝을 선언했듯이 초여름으로 들어가는 길목은 그만의 색깔로 5월에 작별인사를 건넸다.
2025년 대선을 앞둔 주말, 열 시가 넘어 일어나 브런치를 사러 집을 나섰다. 카페에서 식사를 하고 올 수도 있었지만 별로 끌리지 않았다. 단순히 휴대폰이나 보면서 뭔가를 먹는다면 상관이 없지만 계속해서 읽을 책이 있었고, 커피만 마시는 게 아니라 스콘도 함께 먹는다면 어쩔 수 없이 더러운 손으로 책장을 만질 수밖에 없는 일이 꼭 발생했기 때문이다.
창밖을 보니 날씨가 좋아 보였다. 내가 좋아하는 봄날씨는 이미 한두 달 전에 끝났을 테지만 그래도 파란 하늘이 빌딩들 사이로 엿보이는 걸 보니 걷는 길이 기분 좋을 것 같기는 했다. 하얀 반팔 티에 바지를 입고 집을 나섰다.
흰 티는 햇빛을 가득 받은 그물처럼 눈부시게 빛났다. 나 혼자는 알 수 없었을 테지만 내 티셔츠와 모양만 다르고 똑같은 흰색의 옷을 입은 남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습을 보니 큰길에 나가면 내 옷도 저렇겠구나, 하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눈부심은, 태양이 머리 위로 그만큼 올라왔다는 여름의 신호이다. 여름 속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햇빛에 반사되는 것들은 점점 눈이 부셔진다. 8월이 되면 마침내 나뭇잎들조차 눈부시게 빛나는 초록색이 될 지경이니까.
하지만 6월은 여름의 초입이다. 막상 아스팔트가 검정이 아닌, 햇빛이 섞인 어떤 색이 되고 난 뒤라는 것을 깨달은 횡단보도 앞에서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4월의 날씨는 아니겠지, 하면서 길을 나섰지만 이미 등에는 땀방울이 맺히는 게 느껴졌다. 머릿속에도, 이마에도 조금씩 땀이 나기 시작했다. 단순히 햇빛만이 아니라 공기가 여름으로 돌아선 것이었다.
한여름은 아니다. 한여름에는 그 정도만 돌아다녀도 얼굴이 화끈거리기 때문에 내가 피해 다니는 편이다. 모자를 쓰거나 아니면 짧은 거리라도 버스를 타거나.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단지 여름의 초입. 여름방학을 앞두고 기말고사를 즈음했던 시기. 아직은 춥다면 추운, 봄 같지 않은 3월과 갑자기 따뜻해져서 봄이라는 것을 느끼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지 기분이 싱숭생숭해지는 4월처럼 여름은 아니지만 너무나 예상외로 더운 탓에 당황스러운 6월은 생각해 보면 내가 깊게 생각을 해본 적이 없을 뿐 매년 반복되는 일상 중 하나일 뿐이었다.
주문한 커피와 스콘을 받아 카페를 나섰다. 카페에 들어갈 때는 그렇게 시원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카페에서 나오니 문을 열자마자 따뜻한 공기가 팔과 얼굴 곳곳에 닿았다. 공기만으로는 더위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햇볕을 받으면 금세 땀이 나기 시작한다. 8월이 되면 그늘에서도 그 습도 때문에 땀을 줄줄 흘리게 될 것이다. 기후가 바뀌면서 날씨도 종잡을 수 없게 변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지구가 자전하는 각도가 변하지 않은 한 햇빛의 각도가 주는 느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비가 더 오느냐 덜 오느냐는 바뀔 수 있다. 최저 기온과 최고 기온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4월이 되면 3월에 비해 훨씬 따뜻해지고 6월이 되면 여름을 연습하는 것 같고, 7월이 되면 햇빛이 따가워서 선블록 크림을 바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깨달음을 (또) 얻게 되고, 9월이 되면 마침내 햇빛이 덜 사나워졌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반복될 것이다. 책 읽는 카페, 글 쓰는 카페, 생각에 잠겨 커피만 홀짝거리는 카페가 그래서 필요하다. 설레는 3월, 봄다운 4월을 장소로서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내 머리 위로 쏟아지는 햇빛의 각도가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