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상자

시뮬레이션

by 루펠 Rup L

오늘은 15년째 작성한 프로그램을 구동시키는 날이다. 거창하게 동료도 몇 명 초청했고 대학교 동기도 두 명이나 불렀다. 이 프로그램의 인류사적인 의미라던가 과학의 한 획이라던가 하는 의미보다는 요즘은 다들 코딩이 대세라고 하는데 생애 최초로 그러한 유행을 따라잡은 기념 정도라고나 할까. 15년 동안 짜고 다듬은 자식 같은 프로그램이기는 하지만 사실 실용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단지 내 주관적인 생각을 시각화한 것에 불과하긴 하다. 그리고 오늘 최초 구동이라곤 하지만 솔직히 어젯밤 한 번 돌려 보기는 했다. 리허설이지. 사람들을 불러다 놓고 디버깅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사람들이 저마다 떡볶이와 계란말이 같은 음식들을 하나씩 들고 왔다. 모두 포장 주문을 해 놓고 오는 길에 받아온 것들이다. 음식들을 먹기 좋게 작은 그릇에 소분하고 일부는 자취방에 있던, 일부는 포장 봉투에 들어 있던 금속과 일회용 플라스틱의 포크들을 순서 없이 나누어 들고 다들 떡볶이부터 하나씩 입에 넣었다.
거실에 좌식 의자를 놓고 영화를 볼 때 사용하는 커다란 텔레비전에 노트북을 연결하고 화면이 나오는 것을 확인한 후 책상에서 마우스도 가지고 왔다. 프로그램을 고작해야 십 분에서 십오 분 정도만 보고 나서 나머지는 코드만 볼 것 같아 굳이 전원은 연결하지 않기로 했다.
노트북 전원이 100%인 것을 확인하는 순간, 벨이 울렸다. 대학 전자공학과 동기인 창수가 스프링이 튀듯 벌떡 일어나 문을 열러 갔다. 피자와 스파게티가 도착한 것이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하던 사람들이 손에 피자를 한 조각씩 들기 시작하자 분위기가 풀리며 경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중동은 어떻게 될 것 같으세요? 전쟁이 장기화될까요?"
"장기화되는 건 상관없어요. 확전만 안 되면 언젠가 가라앉겠죠."
"빨리 끝나도 불씨가 남아 있는 게 더 위험한 거 아닌가요?"
그러는 중에 나는 코드를 마지막으로 확인한 후 사람들이 조용해지는 틈을 타서 헛기침을 했다.
"흠, 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더니 자세를 고쳐 앉고 과장되게 바른 자세로 피자를 먹기 시작했다. 웃음을 참으며 내가 말했다.
"드디어, 제 생애 첫 프로그램을 구동하겠습니다. 그냥 3D 그래픽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그래픽 엔진을 사용했다면 이렇게까지 스스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우선, 최초로 이런 아이디어를 주신 조태현 대리님께 감사드립니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고, 사람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박수를 쳐 주었다. 나는 계속 이어서 말했다.
"최초의 아이디어는 우주가 시뮬레이션이라면, 우리 역시 시뮬레이션으로 우주를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우주가 시뮬레이션이라면, 우리가 시뮬레이션을 만들어서 우주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어차피 우주와 동일하게 동작한대도 거기서 지구가 어느 위치에 있을지 짐작도 할 수 없을 테니 우리 삶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않겠지만 적어도 물리 법칙이나 천체 현상들은 반복해서 돌려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었지요. 그리고 운이 좋아서 지구를 찾아낸다면 미래도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냥 재미있는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럼 지금 그 시뮬레이션을 완성한 건가요?"
누군가 물었고 나는 곧
"네,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상당 부분 간략화되기는 했습니다. 우주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설정 말고는 모두 간략화되었다고 보셔도 됩니다. 일반 컴퓨터로 돌리려다 보니 물리법칙이 동작할 필요가 없는 부분은 어쩔 수 없이 모두 생략했습니다. 일단 실행해 보겠습니다."
나는 아이콘을 더블클릭했다. 곧 검은 화면이 띄워졌다. 메뉴는 별 것 없었다. 단지 '시작', '중지', 종료' 버튼 세 개뿐이고 마우스로 여기저기 확대할 수는 있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주 안에서만 확대할 수 있게 되어 있었기에 지금은 화면 가운데 우주의 씨앗인 픽셀 하나만 있는 상태라서 마우스로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방향을 바꾸어 보는 것뿐이었지만 우주의 씨앗이 그저 하얀 점에 불과했기에 화면에 우리가 인식할 만한 변화는 없었다.
"오른쪽 아래에 시간이 있습니다. 년도, 월, 일, 시, 분, 초까지 찍힙니다. 년도는 지금 우주의 역사가 200억 년이 넘는다고 하기 때문에 만 단위와 억 단위까지는 분리해서 표시하게 해 놓았습니다. 왼쪽 아래에는 배속입니다. 배속이라기보다는 실제 일 초당 프로그램 안에서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는지입니다. 그러고 가운데에는 속도를 조정할 수 있는 버튼이 있습니다. 이제 시작해 보겠습니다."
다들 피자를 반 조각도 먹지 않은 채로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나는 '시작' 버튼을 눌렀다. 왼쪽 아래의 배속은 1초로 되어 있었는데 순식간에 우주가 거대한 풍선이 되었고 우주 전체를 보기 위해서는 마우스로 엄청나게 축소를 해야 했다. 그리고 나서 곧 변화가 없는 듯 정지화면처럼 되었고 그래서 배속을 늘려 1초에 1000년씩 흐르도록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버튼을 눌렀다. 모두들 스파게티를 접시에 옮겨 담았고 다들 시선은 화면을 보고 있는 채로 떡볶이와 계란말이와 스파게티, 피자를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우주 전체를 들여다보아서는 변화를 알 수가 없었다. 점들이 움직이기는 하는데, 그것들이 우리의 우주에서는 어마어마한 천체들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은하들의 모임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확대를 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아무리 확대를 해도 픽셀 이상으로는 커지지 않아서 어떻게 하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누군가 말했다.
"우주가 언제 사라지는지 시간이나 늘려서 볼까요? 실제로 다시 수축하거나 하면 시뮬레이션에서 확인해 볼 수 있을 거잖아요?"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나는 마우스로 공간의 확대 대신 시간 흐름을 조정하기로 했다. 속도 플러스 버튼을 계속해서 누르니 1초에 1 억년씩 흐르게 되었고, 곧 100억 년을 넘어섰다.
"지금 말하는 우주의 나이가 얼마죠?"
"267억 년인가 그렇다더군요."
"그럼 좀 더 빠르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줄어들거나 눈에 띄게 커지거나 하면 그때 느리게 하고요."
"그럼 10 억년씩 흐르게 하겠습니다."
나는 다시 마우스로 속도 버튼을 클릭했고 금세 프로그램의 시간은 200억 년을 넘어섰다. 나는 한숨 돌릴 겸 접시에 있는 떡볶이를 집어서 입에 넣었다. 그때였다.
"어? 시간이 안 가는데?"
무슨 말인가 싶어 화면을 보니 정말이었다. 프로그램 상 시간이 264억 7924만 2323년 06개월 28일 11시 56분 11초였다. 아니 11초가 아니다. 12초였다. 아니 13초. 14초. 15초.
"시간이 가긴 가는데 초단위로 가는데요?"
누군가 말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프로그램이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1초에 10억 년으로 설정이 되어 있지만 1초에 1초만 흐르고 있었다.
"일단 프로그램 일시정지를 해 보겠습니다. 뭐가 잘못됐나 봐요."
그리고는 중지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클릭을 하고, 프로그램이 멈추는 순간 마우스에서 손을 뗄 수 없었다. 구부정한 자세로, 손목은 꺾인 상태로 클릭을 했지만 불편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눈도 시리지 않았다. 그러나 눈을 깜빡거릴 수도 없었고 똑바로 앉지도 못했다. 눈으로 보이는 건 모두 볼 수 있고 입 속의 떡볶이 맛도 생생한 상태이지만 움직일 수는 없었다. 결론이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스치고 지나갈 필요도 없었다. 머릿속에 거창하게 양반놀음하듯 천천히 자리를 잡았어도 나는 어쩔 수 없었으리라.
우주는 프로그램이 맞았고, 나는 완벽한 프로그래밍을 했으며, 너무나 완벽해서 그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외부의 오리지널 프로그램, 즉 우주와 동기화가 되었고, 그렇게 얽힌 상태로 정지를 시키니 이 우주도 정지되어 버린 것이었다. 우주는 조금이라도 미래를 엿보는 걸 허용하지 않았고 시간이 멈춘 상태에서 나의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의 정신은 이 우주의 산물이 아닌 셈이다. 시간은 이 우주 안에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멈춘 상태로 나처럼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나만 홀로 이 프로그램을 짠 죄로 멈추었어야 하는 시간 속에 깨어서 존재하는 것일까?
가느다란 희망이 보였다. 노트북을 전원에 연결하지 않았으니 컴퓨터가 꺼지면 자연스럽게 연결고리는 풀릴 것이다. 그때까지만 기다리자. 그러나 알 수 없는 시간이 흐른 후, 배터리가 소모되려면 시간이 흘러야 한다는 절망적인 깨달음을 다시 얻고 좌절했다. 그러나 좌절한 상태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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