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상자

유려한 마법

by 루펠 Rup L

할아버지는 마법사였다. 내가 다섯 살 때까지 수시로 아무것도 없던 손에서 자두를 만들어 내 입에 넣어 주시기도 하고 문 뒤에 숨었다가 사라지고는 다시 나타나는 묘기를 보여주시기도 했다. 여느 사람들의 어릴 적 추억처럼 할아버지에 대한 나의 기억 역시 매우 단편적이지만 그 모두가 마술에 대한 것이었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닐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분명히 할아버지와 손을 흔들고 나와 부모님과 같이 계단을 하나하나 내려갔는데 1층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할아버지가 밖에 나가서 서 있던 것도 기억난다. 할아버지는 베란다 창문으로 날아서 내려왔다고 했지만 부모님이 웃는 모습이 장난 같아서 믿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어떤 다른 방법이 있는지 상상하기는 힘들었다.
또 가끔이지만 할아버지가 안아주실 때가 있었다. 몸이 많이 안 좋으셨기에 아빠처럼 덥석 들어서 안지는 못하셨다.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마법을 쓸 줄 알았기 때문에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안는 시늉을 하면 내 몸이 두둥실 떠오르곤 했다. 그리고 안고 장난치듯이 팔을 폈다 접었다 하면 내 몸도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자주 하던 것이었는데, 분명히 내가 먹으려던 귤이 상에서 내가 보고 있는 앞에서 사라져 버리곤 했다. 내가 할아버지 손을 보고 있을 때는 사라지지 않았는데 순간적으로 한눈을 팔면 사라져 있었다. 울고불고하다 보면 어느새 내 앞에 까진 귤이 있었다.
때로는 꿈에 할아버지가 나와서 친구를 사라지게 할 때도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놀이터에 나가 보면 잘 놀고 있어서 안도한 적이 몇 번이나 되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다섯 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기에 더 이상의 장난은 없었다.
부모님 말씀으로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정신이 없이 장지까지 끌려다니다 보니 내가 많이 지쳐서 수시로 졸곤 했다고 한다. 그러다 마지막에 집에 돌아오고 나서 보니 할아버지가 집에도 안 계시는 데 놀라서 이틀 동안이나 엉엉 울어서 오죽하면 옆집 아주머니도 눈물을 글썽이셨다고 하니 앞으로 할아버지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나 보다. 물론 내 기억에는 할아버지가 부리던 마법만 있을 뿐 그렇게 울었던 기억은 없지만.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나면서 모든 것이 잊혀졌고 귀여운 딸이 태어났다.

딸이 세 살쯤 되었을 때 아버지가 나에게 와서 말했다.
"내가 슬기를 부를 테니까, 네가 좀 도와줘라."
"뭘요?"
"뭘요는 무슨, 아빠가 해준 것처럼 해달라고."
"뭘 해줬는데요? 말씀을 제대로 해 주셔야 도와주든가 말든가 하죠."
"정말 몰랐냐?"
"뭘요?"
"할아버지가 너 드는 척하면 내가 널 뒤에서 들어 올린 거?"
"네? 할아버지가 저를 날게 한 거 말씀이세요?"
"날긴 누가 날아, 인마, 내가 다 들고 생쇼를 했지."
아...
그랬구나...
그럼.. 해야지.
"알겠어요. 뒤에서 안으면 되죠?"
"안되지, 그게 그렇게 쉬운 줄 아냐?"
"그럼 어떡해요?"
"바지 입혀. 바지를 들어야 돼. 두 손으로 들면 누가 안는지 돌아보잖아. 등 쪽에서 한 손으로 들어 올려야 몸이 저절로 뜨는 줄 알지. 애들이 얼마나 약았는데. 드는 느낌만 나면 누가 드는 건지 알걸?"
"알겠어요."
이렇게 해서 우리 아버지도 우리 딸의 아법사가 되었다. 아버지가 슬기에게 하시는 걸 보니 내가 어려서 마법으로 보았던 게 어처구니가 없었다. 같이 귤을 먹다가 갑자기
"슬기야!"
해서 슬기가 아버지를 보는 순간 손가락으로 귤을 툭 쳐서 상 밑으로 굴러 떨어뜨려버리는 것부터 해서 몇 번 그러고 나서 엉엉 우는 사이에 여유롭게 귤을 까서 눈앞에 짠, 하고 들이대는 것까지.

"아버지."
"왜?"

"생각해 보니까 이상한 게 있는데, 저 어렸을 때 엘리베이터 없는 아파트였죠?"

"엘리베이터 있었지. 근데 우리가 2층이라서 그냥 걸어 다녔지."

아... 음... 그랬구나...
"아버지는 슬기 다 커도 감당할 수 있겠어요?"
"뭘?"
"할아버지는 저 어릴 때 돌아가셔서 마법사라고 기억에 있었는데, 아버지는 오래 사셔야지요."
"야, 걱정 마라. 오 학년만 돼도 내가 장난쳐서 속은 거 가지고 한 시간은 놀려먹을 수 있을 게다."
아... 그러시겠죠.
하지만 아버지도 나도 몰랐던 게, 슬기가 워낙 똑똑해서 문제였다. 분명히 표정을 보면 아는 게 틀림없는데 들어 올리는 게 재미있어서인가 열 살 때까지 속는 척을 했다. 덕분에 마흔까지 열 살짜리 아이를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건강한 몸을 가지게 되었으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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