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우는 형식이와 놀이터에서 모래밭에 발끝으로 그림을 그리며 빵을 먹고 있었다. 빵봉지를 뜯어 빵의 반조각은 자기가 먹고 두 살 어린 형식이에게는 빵을 봉지채로 주어 손에 크림이 묻지 않게 조심해서 먹으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빵을 절반쯤 먹었을까. 비둘기들이 근처에서 빵 부스러기가 있나 싶은지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형제는 어디선가 비둘기가 똥을 싼 모래밭에서는 놀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에 얼른 보도블록이 있는 곳으로 나가 벤치에 앉았다.
왕 중의 왕, 다른 비둘기에게 어릴 때부터 사납게 군 데다가 게으르지도 않아서 육중한 몸으로도 얼마든지 날아오를 수 있는 왕 비둘기 눈에 빵 부스러기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어른거렸지만 그 앞으로 빵가루 냄새가 나서 그 가까이로 가 보기로 했다. 가까이 가다 보니 멍청하고 약삭빨라서 몇 번이나 자신에게 혼이 난 적이 있는 말라깽이가 있었다. 왕이는 먼저 그 말라깽이에게 날갯짓을 하며 달려가 눈 근처를 쪼았다. 멍청한 말라깽이는 한 번의 반항도 하지 못하고 바로 도망갔다. 약삭빠르게 더 이상 공격받지 않을 방법을 택한 것이다. 말라깽이는 힘이 없어서 멀리 날지도 못했다. 보나 마나 시야에서만 사라졌지, 비열하게 근처 어딘가에서 기회만 엿보고 있을 것이었다.
다른 비둘기들은 멍청하지 않기 때문에 왕이가 배불러서 더 이상 먹을 것에 관심을 갖지 않을 때까지 그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형식이가 물었다.
"형아, 이거 빵, 저기 밥 못 먹은 것처럼 혼자 마른 비둘기가 있는데 줘도 돼?"
"응. 대신 아주 작게 잘라서 던져 줘."
"알았어. 이 정도면 되겠지?"
"응, 크림 손에 안 묻게 조심하고, 가까이 못 오게 그냥 던져."
빵이 말라깽이 앞으로 떨어졌다. 말라깽이는 서너 걸음 앞에 떨어진 빵을 보고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그쪽으로 뻗으며 걸었다.
그때였다.
왕이가 그 빵을 보았다. 그쪽으로 여유롭게 가서 맛보려는데 그 앞에 어느새 말라깽이가 와 있는 것이 보였다. 흥분한 왕이가 거의 날다시피 뛰어가 말라깽이의 날개와 목을 마구 쪼았다. 말라깽이는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형아, 저기 나쁜 비둘기 있어."
"그렇네. 하도 혼자 처먹어서 뚱뚱한 거 봐라. 저런 건 좀 맞아야 해. 근데 아까 빵 주려고 한 비둘기 앞에 있네. 저 돼지도 설마 사람 근처까지 와서 싸우진 않겠지"
하지만 형식이가 빵조각을 던지자 저 쪽에 있던 뚱뚱한 비둘기가 다시 작은 비둘기를 향해 돌진했다.
왕이는 이제 흥분해서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저놈의 말라깽이는 빵이 있는 곳에 어떻게 알고 미리 와서 버티고 있었다. 감히 내가 먹는 꼴을 못 보겠다는 거지? 어디 너 죽고 나 죽자!
"퍽"
순간 왕이의 호흡이 멈췄다. 왕이는 놀라서 조금 떨어진 곳까지 날아갔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저쪽에서 말라깽이가 빵을 먹는 모습이 모였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가 없어서 일단 말라깽이 근처로 다시 가 보기로 했다. 또다시 내 빵을 빼앗아 먹으면 그때 혼내주면 될 일이었다.
"잘 먹네. 그치, 형아?"
"응. 못 먹어서 마른 거였구나."
"어? 돼지 또 온다."
형식이는 조금 신경 쓰였지만 그래도 설마, 하면서 불쌍한 비둘기에게 빵을 한 조각 더 주었다. 그때, 돼지 비둘기가 또다시 불쌍한 비둘기를 쪼려고 달려왔다.
"퍽"
형우가 또다시 돼지 같은 비둘기를 발로 걷어찼다. 뚱뚱한 비둘기는 멀리까지 날아가 다시 앉았다. 하지만 곧 다시 이쪽으로 걸어왔다. 빵 냄새가 너무나 유혹적인가 보았다.
"형아, 저거 계속 이쪽으로 와."
"그러니까 돼지가 됐지. 괜찮아. 형아가 발로 차버리면 돼."
"알았어. 불쌍한 비둘기야, 너도 이거 많이 먹고 살쪄."
왕이는 두 번씩이나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말라깽이도 쪼지 못한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먹을 것도 아직 눈앞에 있었다. 생각은 접어두고 다시 먹으러 가기로 했다. 그런데 눈앞에 또다시 말라깽이가 있었다. 심지어 빵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나는 이제까지 한 조각도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 화가 나서 또다시 달려갔고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어디론가에 내려앉았다.
"너희들 지금 뭐 하는 거야? 비둘기를 왜 발로 차?"
어떤 할아버지가 호통을 쳤다.
"저거 못된 비둘기예요!"
형식이가 할아버지에게 설명하려고 했다.
"못된 비둘기가 어딨어? 빵으로 유인한 다음에 발로 차는 걸 내가 똑똑히 봤는데! 너희는 집에서 밖에 나가면 동물들 괴롭히라고 배웠냐?"
형우가 말했다.
"그게 아니고요, 여기 이 비둘기한테 빵을 줬는데..."
"그게 아니긴 뭐가 아니야? 혼났으면 죄송하다고 해야지, 어딜 어른한테 가르치려고 들어?"
형식이가 억울해서 소리를 질렀다.
"아니라고오!!!! 알지도 못하면서!!! 엉엉 엉엉"
형식이가 목청껏 울기 시작하자 할아버지는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형우가 달래기 시작했다.
"그 돼지 비둘기 같은 할아버지라서 그 돼지 편들어준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빵 먹자. 불쌍한 비둘기처럼 우리도 못 먹으면 안 되잖아."
"알았어, 형."
"유치원에서도 애들이나 선생님이 뭐라고 하면 우냐?"
"안 울었어."
형식이는 어느새 눈물 범벅 된 눈으로 웃음을 지었다.
말라깽이도 왕이도 빵가루가 더 이상 없는 걸 보고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