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꾼 꿈이 떠올랐다. 산속에서 나뭇가지를 하나 주웠는데, 마치 동물의 살처럼 보들보들하고 살짝 물렁물렁했다. 거기에 금속으로 된 경첩 같은 것이 고정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다가 결국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용이었다. 그게 뭔지 깨어 있을 때도 궁금해했는데 그 궁금증이 얼마나 컸는지 꿈속에서 다시 그 꿈을 기억해 낸 것이었다. 그 꿈을 생각하면서, 그게 나무가 맞았을까, 하는 질문을 하다가 내가 건너고 있는 다리 아래에 있던 하천이 사라진 것을 보았다. 다리 위로 걷기 직전까지만 해도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 연기 같은 검은 뭔가가 흐르고 있다. 물소리도 들리지 않고 사람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음 순간, 연기가 걷히고 그 아래로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 보였다. 검은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없을 무. 지구의 지각도, 우주도 아무것도 없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데에서 꿈이라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는데, 당시에는 그저 상식적인 지식일 뿐이었다.
사람들이 놀라서 달아나는 모습이 보였고 나 역시 하천에서 무조건 먼 곳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얼마나 뛰었을까, 원래 가려던 목적지에 도착했고, 아내와 만났다. 아내는 퇴근하는 복장으로 나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왜 사람들이 뛰는 거예요? 인터넷에서도 아무 얘기 없는데."
"안개 같은 게 나타나서 닿으면 다 사라져."
"무슨 말이에요?"
설명을 하려고 했지만 아무리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기에 다시 하천 쪽으로 손을 잡고 갔다. 무한한 검은 공간만 입을 벌린 것처럼 하천을 차지하고 있었다. 마침 어떤 어린아이가 그 안으로 돌을 던졌다. 돌은 작아져서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떨어졌다. 검은 것이 물이라던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저게 언제부터 있었어요?"
"내가 이 다리를 건널 때 흘러왔어. 상류 쪽에서."
"그럼 최소한 저게 흐르기는 하는 문질이라는 뜻이네요."
"검은 건 흐를지 몰라도 구멍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어. 원래 안개 같은 것이었는데."
아내와 나는 얼른 다리를 건너 집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갑자기 한 떼의 사람들이 골목에서 뛰어나왔다. 흡연구역처럼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담배를 피우던 곳이었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한 손에 담배를 든 채로 뛰어나온 것이었다. 골목 안에서는 아직도 밀지 말라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그 사람들은 뛰어나와서도 계속 뛰다가 하천을 보고는 비명을 지르고 방향을 바꾸어 도로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는 곧 알 수 있었다. 골목 안에서 고함소리가 갑자기 들리지 않더니 잠시 후 골목에서 검은 안개가 흘러나온 것이었다. 안개는 큰길로 나오면서 사라졌지만 골목 안에 있는 것은 그대로인 것 같았다. 큰길로 퍼지기 시작하면 도망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퍼지지는 않고 그대로 있다가 잠시 후 골목 전체가 하얀 구멍이 되었다. 두 건물 사이가 커다란 구멍이 된 것이었다.
"어떡하지? 어디로든 가야 할 것 같은데?"
"모르겠는데, 일단 지금은 저 구멍하고 하천에 있는 구멍하고 합쳐질지도 모르니까 일단 큰길 따라서 올라가자."
아내와 나는 건너편에서 건물 사이의 구멍을 쳐다보며 뛰었다. 두 블록정도 가니 사람들이 구멍에 대해 모르는 듯했다. 우리와 함께 뛰었던 사람들도 인파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하천을 보니 아직 듬성듬성 검은 부분이 눈에 띄기는 했지만 커다란 구멍은 아니었고 우리가 온 길을 내려다보니 건물들 사이에서도 검은 구멍이 나오진 않은 상태인 것 같았다.
"일단 놀랐더니 좀 가라앉혀야겠다. 탄산수 마실래?"
"응."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편의점으로 들러가 탄산수를 샀다. 2+1이라 세 개를 집어 들고 와서 계산이 끝나자마자 한 통을 비우고 한 통씩 각자 손에 들고 밖으로 나왔다. 어차피 하천 쪽에 머물러 있을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에 건물 반대편으로 난 문으로 나왔다.
그런데 이상한 광경에 눈에 띄었다.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한 명도 눈에 띄지 않고 사람들이 모두 벽에 붙어 있었다.
"무슨 일이지?"
"일단 파이프 잡으세요. 보면 알아요."
혼잣말이 조금 크게 들렸는지 바로 옆에 있던 여자가 우리에게 말했다. 허리보다 조금 높은 위치에 건물 도시가스관이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도시가스관을 등지고 등 뒤로 파이프를 잡았다. 그때, 어떤 사람이 골목에서 뛰어나왔다.
"응, 가고 있어. 금방 택시 타고 갈게!"
그가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돌풍이 불더니 그 사람을 도로 쪽으로 날려 보냈고 그 사람은 바닥에서 삼십 센티미터 정도 뜬 상태로, 선 자세 그대로 지나가는 버스 앞으로 날아가 버스에 치였다. 버스는 잠시 섰지만 바람 때문에 뒷바퀴가 살짝 밀리는 것이 보였고, 방금 치인 남자는 저 멀리 골목 사이로 바람에 붕 뜬 채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한바탕 하고 나면 잠잠해져요. 그때 얼른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돼요."
버스가 다시 출발하는 걸 보며 여자가 말했다.
"지금!"
바로 뒤, 사람들이 가스관에서 손을 놓고 뛰는 것을 본 여자가 외치며 달려 나갔다. 우리도 서로 눈을 맞추고는 뛰기 시작했다. 우리 목표는 대각선으로 위치한 상가건물이었다. 밖에서 고립되는 것보다는 화장실에라도 물이 있는 상가가 낫다는 판단이었다.
우리가 상가에 거의 다다랐을 때 뒤에서 돌풍이 느껴졌다. 그러나 건물 가까이 있었기에 바닥에서 10센티미터 정도 떨어진 것으로 느껴졌지만 큰길이 아닌 건물 안쪽으로 밀렸고 우리는 치킨집 유리문에 쿵 하고 부딪히며 문을 열고 들어가게 되었다.
"어차피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은데 맥주나 한 잔 할까?"
아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꿈이라서 가능한 상황이었겠지만 맥주는 맛이 있었고 치킨 주문은 했지만 먹을 수 없었다. 잠시 앉아서 맥주를 훌쩍거리는데 누군가 아르바이트생에게 하는 말이 들렸기 때문이었다.
"화장실이 없고 그 자리에 이상한 구멍만 나 있어서요. 2층 화장실은 못 쓰나요?"
"죄송해요. 우리 가게는 직원들도 거기로 가서요."
우리는 그게 무슨 말인지 한 번에 알아채고 계산을 하러 갔다.
"음식이 주문이 들어가서 계산은 하셔야 하는데 괜찮으세요? 기다리셨다가 포장해 가셔도 돼요. 포장으로 주문 바꿔 드릴게요."
"죄송합니다. 결제만 하고 갈게요."
"알겠습니다."
결제를 하려던 찰나, 큰길 쪽 통유리가 폭발하듯 안으로 깨졌고 그 순간 상가 복도 쪽 문도 빠지면서 쓰러져 깨져 버렸다. 아내와 나는 서로 마주 보고는 그대로 인테리어로 설치된 난간을 붙잡았다. 아르바이트생은 한 손에 내 카드를 든 채로 얼이 빠져 있었다.
"카드 놓고! 이거 같이 잡아요!"
돌풍은 화장실 쪽 구멍을 향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내 꿈속에서 한 생각이니까 맞았겠지만 확신이 없어서 바람이 들어오는 쪽으로 나가자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아르바이트생은 어느새 두 손으로 난간을 붙잡고 있었다. 테이블을 붙잡았던 사람들은 펄럭거리다가 유리문이 있던 곳으로 빨려나가거나 다른 기물에 머리를 부딪히고는 공중에서 바람을 직접 받고 있었다. 아마도 질식 상태였으리라.
"난간이 힘 많이 받으면 빠질 수 있으니까 앉아서 난간 아래쪽을 잡아!"
내 말과 동시에 아내와 아르바이트생이 몸을 낮췄고 둘 다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앉는 순간 내 머리가 있던 곳을 지나 의자가 날아갔다.
"바람이 언제까지 불어요?"
"나도 모르는데, 5분 안될 거야! 밖에서도 그랬어!"
아르바이트생에게 확신하는 듯 말은 했지만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가스관이 있는 뒤로 가자니 화장실에서 나온 구멍이 얼마나 커졌을지 모르겠고 앞으로 가자니 다시 돌풍이 불면 손도 못쓰고 날아가 버릴 게 틀림없었다. 바람이 살짝 잦아든 사이에 아르바이트생이 얼른 일어나 모니터 덕분에(모니터는 고장 났다) 바람에서 안전했던 맥주잔을 들고 얼른 앉았다.
"이거라도 드세요. 치킨은... 기다리셔도 못 드리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