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이 삼십 평 정도 되는 집이 있다고 하자. 거실에는 커다란 텔레비전이 있고 텔레비전을 보거나 담소를 나누는 용도로 사다 놓은 소파가 있다. 그 소파는 물론 애초에 구입한 용도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담소를 나누는 것이었지만 그 용도에 충실하다고 할 수는 없다. 모두들 휴대폰을 쳐다보는 시간이 담소를 나누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것보다 훨씬 기니까. 그렇지만 그 소파에 앉아 편안한 마음으로 집안을 둘러보면 여러 가지가 눈에 띈다. 부엌 입구, 안방 입구, 화장실 입구 등. 모든 것의 입구들이 이 공간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다. 그러나 입구가 사람이 들어가는 곳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안방을 지나 화장실로 가는 통로 겸 벽에는 책꽂이가 설치되어 있다. 위아래로는 책꽂이이지만 사람 가슴 높이에는 독서대 같은 것이 놓여 있다. 엄밀히 독서대는 아니지만 책을 펼칠 수 있게 되어 있어 독서대라고 말고는 딱히 표현할 말이 없기는 하다. 그러나 독서대가 아닌 이유는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끈 때문이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줄이 책을 넘기는 것을 방해한다. 그러나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고유의 용도일 것이다. 책이 펼쳐져 있고 바람이나 책의 구조적인 균형으로 인해 페이지가 넘어가거나 심지어 저절로 덮이는 것을 그 줄이 막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노랗게 햇빛이 들어오는 나른한 오후. 텔레비전을 켜도 눈에 들어올 것 같지 않은 그때, 독서대에 펼쳐져 있는 그림이 눈에 띈다. 집안의 분위기와 어울린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나쁘지도 않다. 오히려 계속 집중하지 않고 벽과 함께 보면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나른한 오후에 노을이라기에는 밝은 그 햇빛이 창문을 가로질러 무늬를 만드는 벽에 걸려 있는 인상파의 그림. 모든 문이 사람이 몸을 이끌고 들어가도록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안방, 화장실처럼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입구와는 달리 오직 시선으로만 들어가야 하는 입구가 이곳에 함께 있었다.
꿈속의 이 장면이 내게 순식간에 그림에 대한 관심을 일으켰다. 그 장면은 아무 스토리 없이 사진처럼 스쳐 지나갔지만 다른 어떤 꿈보다도 더 생생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림이 환경에서 차지하는 역할, 내 무의식 안에서 차지하는 위상 같은 것이 애초의 관심이었지만 그런 건 심리 분석의 대상일 뿐이라는 생각에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원인을 찾아가는 것이 동쪽이라면 나는 서쪽을 향하기로 한 셈이다. 관심이 생기면서 저절로 떠오르는 생각들에 집중하며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얻지 못한 것도, 얻은 것도 있었다. 얻지 못한 것도 얻지 못한 대로, 얻은 것도 얻은 대로 과거의 내가 현재의 다른 존재가 되도록 충분히 이끌어 주었다고 생각한다. 얻지 못하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그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다,라는 게 아니라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었다는 뜻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업이 된다는 것은 아직까지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종의 신비로운 과정이다. 생각해 보면 그림뿐만 아니라 나의 무언가를 가지고 결과물을 팔아 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 책임감에 있어서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이 아무 소용이 없는 부분이기는 하다. 어쩌면 그 책임감, 작품이든 스스로의 생활이든 내 몸으로 책임을 진다는 마음 자체가 신비로운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하나의 화풍이 생긴다는 것은 그 책임감의 누적인 셈이다. 그러나 결국 그건 얻지 못했다. 그 길을 가야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역지사지도 머릿속으로 생각만 해서는 잘 되지 않는다고. 얻은 것은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취미니까 가능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한다.
꿈에서 본 것처럼 커다란 집은 아니지만 내 방에는 내가 그렸던 그림이 걸려 있다. 그림으로 그리고 싶은 것이 떠오르 면 한 달 정도 곰곰이 생각을 한다. 글을 쓸 때처럼 손만 대면(물론 손만 댄 상태로 시간이 계속 가기도 하지만) 될 정도의 상태까지 머릿속으로 밀어붙인 후에 시작을 한다. 그렇지만 글을 쓸 때처럼 규칙적이지도 않고, 그려야겠다고 다짐을 하는 일도 없다. 그저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혹은 그림을 그린 직후에 그림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러나 좋은 경험에서 끝나게 될 것 같다. 그림을 계속 그리고 비닐로 된 파일철에 잘 꽂아두었다가 때로는 액자에 걸기도 하겠지만 그와 별도로 그 꿈도 이제 보내줄 때가 된 것 같다.
글을 쓰면서 얻은 것과 얻지 못한 것들은 그 상태로 영원하지 않다. 글은 쓰고 나면 그 상태로 보존되겠지만 나는 계속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얻은 것처럼 보였던 것이 아직 신기루였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도 있고 얻지 못했다고 생각했지만 인생의 어느 날, 그것이 어느새 내 손에 들어왔다는, 이해가 된다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살아가는 여정 중에 그림을 이토록 친근하게 느꼈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에 힘이 얻는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