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과 푸른 회색의 화살표

by 루펠 Rup L

방향은 흐름이다. 아니, 흐름의 순간이다. 흐름의 얼굴이 향하는 방향, 혹은 흐름이 외면하는 혹은 이미 떠나온 방향을 가리키는 기호이다. 어느 방향을 향하느냐, 혹은 어느 방향을 외면하느냐 하는 것은 어느 방향에 우호적인지, 차가운지,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 없애고 싶은지를 설명하는 중의적인 표현이 될 수도 있다. 내가 화살표에 꽂혔던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화살표와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 혹은 화살표가 나오는 곳은 그 대상에 대한 색채를 대신할 수 있다. 열정이 빨강이고 외면이 차가운, 푸르스름한 회색이라면, 나침반 위에서는 북쪽은 빨강, 남쪽은 푸르스름한 회색이 되리라.
비행기를 타는 동안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이코노미석은 설계 당시 어떤 사람들의 체형을 바탕으로 만들었는지, 혹시 사람이 앉을 거라고 상정하지 않고 만든 건 아닌지 궁금할 정도로 한 시간만 넘게 앉아 있어도 불편하다. 몸이 불편한 상태가 기본적인 환경이고 보니 아무리 보고 싶었던 영화가 있어도, 전자책에 넣어 온 소설이 아무리 긴박한 스토리를 앞두고 있어도 지루함이라는 것, 언제 끝나는지 모르겠다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두꺼운 책을 읽다가 아무리 읽어도 흥미로운 부분이 나오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을 때 뒷부분을 마저 읽어 나가면서 느낄 지루함이나 영화를 보다가 재미있는 부분이 나올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30분이나 지났을 때에나 느낄 법한 지루함이 나의 존재 자체에서 만들어지는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곧 착륙할 예정이니 안전벨트를 착용하라는 방송이 나왔을 때에는 그 말이 얼마나 기쁘게 들렸는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되리라. 그때 나는 영화를 끄고 이륙 후에 간간이 보았던, 비행경로를 표시하는 지도 화면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에는 비행기 밖을 비추는 카메라 화면을 볼 수 있는 메뉴가 있었다. 밤이라 별 게 없을 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cockpit이라고 쓰여 있는 버튼을 누르니 생각보다는 선명하게 가로등 같은 것들이 보였다. 화면을 보니 살짝씩 긴가민가하던 위아래로 출렁거리는 느낌이 실제로 비행기가 회전하거나 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비행기는 활주로를 향해 정렬을 했고, 그때 나는 그 화살표를 보았다. 빨간색으로 꽉 찬 몸통과 녹색으로 된 빈 삼각형. 사실 그 두 줄의 녹색으로 된 화살표 머리가 활주로였고 빨간 몸통은 활주로 시작 부분을 표시하는 것 같았다. 머리가 빨간색이고 몸통이 녹색이었다면 화살표 느낌과도 상당 부분 맞았겠지만 그게 중요하세 느껴지진 않았다. 어쨌거나 그 이후로 두고두고 그 화살표가 떠 있는 화면을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다.
밤이어서 볼 수 있었을 화살표였고 밤이어서 피로 때문에 좀 더 영향을 크게 받았을 거라고 생각을 하지만 여전히 그 화살표는 나에게 있어 하나의 상징처럼 되었다. 화살표가 외면하는 출발지, 화살표가 가리키는 목적지 공항의 활주로. 화살표일 필요도 없고 삼각형이어도 방향이라는 상징성만 있으면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그때부터 삼각 구도를 가진 그림을 보면 그런 생각을 한다. 삼각형이 안정적이기 위해서는 밑변이 아래로, 꼭짓점이 위로 가야 하는데 삼각형이라는 것이 측면이었던 것도 그림을 돌리면 얼마든지 밑변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삼각형의 세 변 중에서 그림의 프레임과 평행인 것을 밑변이라고 생각한다. 아무 방향성이 그림 내에서 보이지 않는 한, 불꽃처럼 안정감 있게 아래에서 위로 보는 화살표가 된다는 것이 일종의 고정관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흥미를 끌게 되는 것은, 그림의 방향은 정해져 있는데 삼각형의 밑변이 아래에 있지 않은 경우이다. 그럼 그 삼각형의 세 변 중에서 가장 밑변에 가깝다고 생각되는 것은 무엇인가. 원근감을 표현하다가 자연스럽게 조성된 삼각형 구도라도 예외는 없다. 하늘의 삼각형이 아래를 바라보는 경우도 흔하다. 그렇다면 그것은 결국 하늘에 있는 것들은 중력 때문에 아래를 향하게 된다는 상징성을 부득이하게 가지게 되는 걸까? 바닥에 있지만 거꾸로 된 삼각형도 꼭짓점으로 서 있기 때문에 불안정하다는 느낌보다는 땅 속에 깊이 박혀 있는 듯한 안정감을 상징할 수는 없을까?
이것은 내가 그림을 보면서 생각하는 것들 중 하나이다. 이 생각만 하는 건 아니니까 기준은 아니다. 방향이 외면하면서 무채색의 차가움을 주는 쪽이든 적극적으로 바라보면서 붉게 물드는 쪽이든 그것 역시 내 상상 속에서 일어나는 일일 뿐, 실제 그림의 채도나 색을 보는 데 영향을 주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인가? 당연히 중요한 일이다. 그림을 보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중요한 일이다. 그 모든 일이 그림을 보는 목적 안에 들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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