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상자

기록되지 않은 감정

by 루펠 Rup L

그 언젠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다면 무엇이라 대답하겠는가.
아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 것은, 과정을 확신하기 힘든 어떤 결과가 있어야 생길 수 있는 일이다. 무슨 결과가 있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을 것인가.
아무 결과가 없다면 어떤 질문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저 우리는 살았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그저 수많은 사람들, 많은 세대가 지나간 시간들의 일부일 뿐이다. 사람들이 모여서 대표를 뽑고, 인정하고, 반대하고 그 과정에서 피를 흘리기도 하고 축제를 벌이기도 하는 그런 시간들도 격렬하기는 매한가지이지만 그 시간들은 그래도 기록은 된다.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은 수많은 사람들의 기록이 되고 그 기록은 또다시 하나의 기준이 되며, 기준으로서의 가치가 있는지의 싸움을 통해 기억으로서의 자리를 차지한다. 그렇지만 아무도 이야기해 주지 않은 일은 기록이 되어도 기록물의 한계로 사라지게 마련이고 기록이 남지 않은 기억은 그 기억을 가진 사람들의 죽음과 함께 연기가 되어 날아가 버린다.

없었던 일.
없었던 일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억울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아니다. 없었던 일이 되기 때문에 억울하고 비통한 것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돌칼로 열매를 다듬고 짐승 사체에서 뼈를 발라내면서도 발정 난 짐승처럼 한데 뭉쳐 성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함께 미래를 바라보고, 더 좋은 칼을 만들고 더 큰 짐승을 잡아 미래에 대해 조금이라도 걱정의 간격을 넓혀보자고 의논을 하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행복해하는 삶이 없었으리라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 시절은 기록이 없다.
기록이 없으니 기억이 없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은 듯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다.
집고양이를 보아도 애틋한 동물 부부가 불가능한 일이 아닌데 오래전이라고 사람에게 그런 일이 없었을까. 가족을 생각하며 정성껏 바닥의 흙을 파서 그릇을 세우고 잘 익은 고기를 보며 환호성을 지르는 자식들을 보며 미소 짓는 어머니가 신석기시대라고 없었을까.

지옥에서조차 사랑은 움튼다.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세계 곳곳, 역사 구석구석에 얼마나 많은 사랑이 초록색 떡잎만 내밀어 보고 시들어 버렸을까.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하면
없었던 일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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