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설상자

용면

재미로 쓴 글

by 루펠 Rup L

"전하, 결단을 내리소서."

동생 친정군의 말도 일리는 있었지만 급하다고 원칙을 짓밟는다면 급하다는 핑계로 못할 일이 뭔가 싶어 망설였다.

"전하, 해야 하는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사오나, 하지 말아야 할 일은 금하시고 해야 하는 일은 허하기만 하시면 되는 일이옵니다. 금하셔도 좋으니 결단만 내리소서."

주상은 아직도 대답이 없었다.

친정군은 아직도 엎드려 있었다. 서로 신경전인 듯 아닌 듯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친정군이 입을 열었다.

"전하, 한 가지만 여쭙겠사옵니다."

"그래, 말씀해 보시게."

"굿을 하지 않는다면, 혹시 그 밖에도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인가?"

"부적처럼 눈에 띄지 않는 수단 말씀이옵니다."

"그게 가능하다면 이제까지 내가 모르고 있었을 리가 있겠는가?"

"전하, 실은 저도 어제 처음으로 알게 되었나이다. 부적은 효력이 없지만 효험이 있는 그림을 그리는 장인이 있다 하옵니다."

주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뭔가, 중전의 방에 걸어야 하는 그림이라던가 하는 건 아니겠지?"

"눈에 띄지 않는 방법이옵니다. 사실, 종이나 비단에 그린 그림이 아니옵니다."

"그럼 그림을 어디다 그린다는 것인가? 기둥에 새기기라도 한다는 건가? 그건 부적보다 더한데. 아니면 합방할 때 지니는 것인가? 그럼 그냥 부적 아닌가?"

"사실, 그 그림을 그리는 중인이 도공이옵니다. 음식에 새아기의 기운을 북돋아서 자리를 잘 잡게 해주는 그림을 접시에 그리는 것이라 하옵니다."

"효험이 있는 건 확실하겠지?"

"허하신다면, 열흘동안 소인 나름대로 철저히 조사해 보고 다시 오겠사옵니다."

"좋아. 그렇게 해 주시게. 정말 고맙군."


스물여덟이나 되었고 금슬도 좋았지만 세자는커녕 임신조차 되지 않았다. 처음 몇 년은 조용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궁녀를 들이라는 신하들의 요구도 거세지고 있어서 조정에서 결정할 중요한 일이 있어도 주상은 후사 이야기가 나올 것이 틀림없다는 데서 큰 스트레스를 받으며 나갈 수밖에 없었다.


열흘 후, 친정군이 돌아왔다. 주상은 직접 일어나 친정군을 맞았다.

"어떻게 되었는가?"

"잘 되었습니다. 그림의 색소를 금강산 벽천사에서 만든다 하옵니다. 그리고 색소를 물에 갠 용액 자체를 기도를 올리며 만든다 하옵니다."

"아, 그곳이라면 원래 의학으로도 유명한 곳이니 효험이 뛰어날 수 있겠군."

"사용법도 간단하옵니다. 그림이 담긴 접시를 구워 오면 그 다섯 장의 접시를 매일 씻어서 반찬을 담는 데 쓰기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단, 그 접시는 중전마마 혼자서만 사용해야 하고, 그 다섯 장의 접시에 올린 반찬은 모두 잡수셔야 한다고 하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없고? 원래 후사는 하늘이 내려 주시는 것이니 부부 중 한 명만 노력해야 한다는 건 꺼림칙하지 않은가?"

"그것이... 아기씨가 생길 때까지 모든 식사를 두 분께서 함께 하여야 한다고 하옵니다. 그러나 전하께서는 그 반찬을 함께 잡수시면 안 되옵니다."

"그 정도면 할 만하 군. 다른 조건은 없소?"

"그 도공의 말이, 49일 동안 해 보고 안 되면 의학의 범주를 넘는 것이라 접시를 모두 깨어 버리고 다시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옵니다. 그 뒤에는 정말 불공이나 굿을 각오하서야 할지도 모를 일이옵니다."

"알겠소. 준비가 되면 알려주시오."


마침내 두 달이 지나고 정성껏 포장한 접시 다섯 장이 들어왔다. 친정군은 접시를 내명부에 전달하기 전에 주상에게 먼저 보여주었다.

"이것 가운데 용그림이 있는데 혹시 민간에서도 이 핑계로 용을 함부로 그린 것이 아니오?"

친정군이 웃으며 대답했다.

"저도 이 접시를 보자마자 그것부터 물었지만 아니옵니다. 이것은 전하와 중전마마를 위해 특별히 만든 것이고 원래는 희망할 '희' 자를 새긴다고 하옵니다."

"그렇군."

"더 보실 게 없다면 내명부에 전달해도 되겠사옵니까?"

"그런데, 가장자리가 평소 쓰던 접시와 비슷한 것 같은데, 일부러 이질감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그런 것이오?"

"아니옵니다. 원래 왕실에서 사용하는 그릇을 공급하던 공방이라 그렇사옵니다."

"그렇군. 알겠소. 가지고 나가게."


그러나 3일째 되는 날 일이 터지고 말았다. 여느 날처럼 주상과 중전이 나란히 앉아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주상은 중전이 반찬 다섯 가지를 모두 남기지 않고 먹는지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주상이 말했다.

"저 무침그릇의 용은 뿔이 하나가 없군."

자세히 들여다보던 중전이 대답했다.

"그렇네요. 그러고 보니 눈이 사라진 그릇도 있습니다."

주상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후사가 먼저이기에 중전에게 우선 반찬을 모두 들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상을 내어 가는 궁녀에게 말했다.

"이 상에 있는 접시를 모두 씻어서 다시 가져오게. 깨끗한 상태로 말이야."

"예, 알겠사옵니다, 전하."

중전도 돌아가지 않고 함께 앉아서 기다렸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상이 다시 나왔다. 접시와 밥그릇 모두 식사 때와 같은 자리에 있었다. 주상이 접시 하나하나를 들어 햇빛에 비추어 보았다.

"이것이 아까 뿔이 하나 없는 접시 같구려."

"예, 눈 없는 용은 여기 있사옵니다."

"흠... 이거 이상한데..."

그림을 이리저리 비추어보던 주상이 손톱으로 그림을 긁어 보았다. 붉은 가루가 투두둑, 하고 떨어졌다. 금세 얼굴이 찡그려진 주상이 소리를 쳤다.

"밖에 누구 없느냐?"

"예, 여기 있사옵니다."

"당장 친정군을 들라 하라!"

"예, 알겠사옵니다."


그러나 친정군은 두 시간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아직 노기가 가라앉지 않은 주상이 다시 내관에게 지시를 내렸다.

"병조를 들라 하라."

"예, 알겠사옵니다."


"병조판서 이성휴 들었사옵니다!"

삼십 분이 되지 않아 병조판서가 도착했다.

"어서 들라하라!"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왕의 노기에 찬 목소리에 이성휴는 덜덜 떨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며 들어가 엎드렸다.

"병조판서 이성휴이옵니다."

"이것을 들여다보게!"

왕이 깨지지 않을 정도로만 거칠게 밥그릇을 던지다시피 굴렸다. 이성휴는 밥그릇을 들었지만 뭘 보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밥그릇 안에 뭔가가 있는가?"

"보이지 않사옵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보게!"

왕이 다시 굴린 밥그릇을 들여다보니 안쪽에 용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 것이 보였다.

"용이 보이나이다. 음각으로 새긴 것으로 보이나이다. 이것을 보라고 하신 것이 맞나이까?"

"맞다. 그러면 이것도 보라."

왕이 접시를 이제 깨지라는 듯 던졌다. 다행히 깨지지는 않았지만 바닥에 부딪히며 다른 곳으로 튕기는 바람에 병조판서는 바닥을 기다시피 해서 접시를 잡아야 했다.

"이것도 음각으로 새겨져 있는데 그림이 그 위에 덧칠되어 있나이다."

"그림이 멀쩡한가?"

"아니옵니다. 뿔이 한쪽이 없나이다."

"나머지 뿔을 손톱으로 긁어보게."

이성휴는 쪼그리고 앉아 체면도 잊고 손톱으로 그림을 긁었다.

"붉은색 가루가 나오나이다. 그런데 이 접시는 무엇인지 여쭈어도 되겠사옵니까?"

"친정군에 음식을 담아 먹어야 한다고 준 접시다. 그 가루가 음식에 섞이는 것 같으니 그 성분을 알아내야겠다. 이상한 성분이 하나라도 나오면 즉시 알려주게."

"예, 전하."

"그리고 내가 친정군을 불렀는데 아직도 오지 않네. 접시를 확인해야 하겠다고 한 뒤에 불렀으니 뭔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 우선 잡아들이게."

"예, 전하."


병조판서가 접시를 들고 나섰다는 소식은 금세 한양 곳곳으로 퍼졌다. 이미 달아날 준비를 하고 있던 친정군은 도자기 공방에 언질이라도 주었다가는 꼬리가 잡힐 것이라 생각하고 그대로 천안으로 향했다. 그러나 성문을 나서기도 전에 잡히고 말았다.

"네이놈, 내가 누군지 아느냐!"

친정군이 큰소리를 쳤지만 방법이 없었다.

"조금만 더 일찍 출발하지 그러셨사옵니까. 이제 주상전하를 뵈올 시간이옵니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나 버렸다. 친정군이 굿과 불공을 핑계로 왕권을 끌어내려했던 작전도 낱낱이 공개되었다. 그 누구도 누구를 비난하고 말고 할 시간도 없었다. 그러나 그 파장도 작은 건 아니었다.

왕실 장인들은 그 그림이 도자기를 굽기 전이 아니라 구운 후 그려진 것이며 굽기 전에 그려진 것처럼 보이기 위해 반짝거리는 성분까지 발랐다는 점을 밝혀냈다. 어의는 그 그림에 임신을 막는 성분이 들어 있으며, 일반 나물이 아니라 뜨거운 음식을 담았다면 한 번에 많은 양이 작용해 중전의 기운도 많이 빠졌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전부터 있던 중전의 그릇들이었다. 그 그릇들에는 처음부터 음각의 그림이 아니라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서서히 사라졌다는 사실을 궁녀들이 증언한 것이었다. 중전은 이미 몸이 많이 허약해져 있었고, 임신을 하더라도 위험할 정도가 되어 있었다. 주상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다섯 번이 넘는 친국으로 후사를 도모하여야 한다고 조정에서 외치던 신하들 중 다섯 명이 친정군과 짜고 주상을 압박하기로 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이로써 반정 혐의로 처형되는 것은 가족들을 포함해 60명을 넘어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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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적으로, 재미로 쓰기는 했는데 이걸 소설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잡설이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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