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과 시간

2026.01.01_06:42

by 루펠 Rup L

수첩에 글을 쓰다가 수첩을 양면으로 거의 다 썼을 때가 되면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종이가 모자라서 글이 다음 수첩으로 넘어가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생각이 나는데도 이번 남은 종이로 끝내겠다고 마음대로 글을 줄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빈 종이로 놔두고 수첩을 바꾸는 것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닌 듯싶기도 하고. 그래도 이번에는 운이 좋아서 충분한 페이지가 남아 있다. 그리고 다 쓴 수첩에는 2025-2026이라는 딱지가 붙겠지.
오늘은 1월 1일이다. 2026년.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읽은 글이 인터넷에 있는, "친구가 어제 '내일이면 지구도 2026살이 되겠네.'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이 글을 읽는 순간 마치 2026년도 훤히 보이는 듯했다. 예언처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소소하게 "2026년도 2025년과 크게 다르지는 않겠구나"하는 것이었다. 나는 새해에도 틈틈이 글을 붙들고 씨름할 것이고 손이 따라주지 않는 그림을 두고 가볍게 고민을 이어갈 것이며, 읽고 또 읽으면서 소설들이 누더기처럼 기워 올라가며 키우던 궁전은 계속해서 커져만 갈 것이다.
국제 정세나 연말 들어 외국 기업 하나가 법과 정부에 기어오르던 건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뭔가 속이 시원하다거나, 두 손을 치켜들고 "브라보"를 외칠 만한 극적인 결과가 나올까 싶기는 하다. 그렇게 희망은 하되, 기대는 크게 하지 않는 편이다.
투자에 있어서도, 흐름을 타는 것을 예측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상황에 맞는 대응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늘상 고민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테다. 도대체 새해가 되어서 좋은 건 틀림없이 겨울이 지나가고 있기는 하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것뿐일까.
그렇다.
1월 1일. 수많은 사람들이 해돋이를 보겠다고 바닷가에서 날을 지새우며 새벽을 기다릴 지금, 밖은 너무나도 춥다. 영하 10도라고는 하지만 바람도 제법 분다. 새벽에 나갈 일이 있어 잠시 나갔다 왔는데 보통 두세 명은 담배를 피우고 있었던 흡연구역에 오늘은 아무도 없었다. 추워서 나오지 않았겠거니 생각했지만 해돋이를 보러 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멈칫했다. 그 두세 명이 모두라기에는 조금 비약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새해가 곧 밝는다. 새 수첩과 새 1년이 기다린다. 기대 없는 희망의 새하얗고 차가운 촉감. 빙판 위로 한 번 미끄러지면, 멈출 때까지 기다리거나 움직여서 멈추어야 한다. 저절로, 즉시는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관점, 변경을 넓히는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