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듯이 처음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관광지에서 민박을 했는데, 가정집에서 대여하는 호텔방 같은 느낌이었다. 에어비앤비 같은 것이었나 싶다. 하지만 건물 안에 주인도 살고 있었고, 아파트처럼 구분된 현관문도 있었다. 밖으로 나와서 버스를 타고 어딘가 가기도 하고, 걸어서 마을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마을은 좁더라도 인도는 모두 있었고, 어느 정도 경사가 있는 골목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내가 좋아하던 길은, 밖으로 나가자마자 건물 왼쪽으로 뻗은 골목이었는데, 정식으로는 아니지만 대략 2차선인 양 차들이 양쪽으로 다녔고, 이런저런 카페나 슈퍼마켓들, 옷가게들을 구경하다 보면 사거리가 나왔다. 그때 사거리이기는 하지만, 위로 올라가는 길이 두 개, 직진하는 길이 하나, 아래쪽으로 내려가는(오른쪽으로 길을 건너야 하는) 길이 하나 있어서 삼거리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위쪽으로 올라가는 길은 삼각형으로 된 블록을 끼고도는 길이어서 첫 번째 길로 가서 기찻길을 만나서 건너지 못하고 블록을 따라가면 두 번째 길을 통해 다시 사거리로 나왔다. 그렇게 돌아 제자리로 오면 더 이상 가지 않고 그대로 숙소로 걸어오고는 했다. 때로 위스키 작은 병을 사 올 때도 있었고 맥주를 사 올 때도 있었다.
내 옆방엔 어떤 가족이 살고 있었는데 가끔 꼬마가 혼자 있을 때가 있었다. 그때 내가 인기척을 내면 방문을 두드리곤 했는데, 방에 처음에 들여보내 준 게 화근이었던 것 같았다.
꼬마는 내 카세트데크를 좋아했다. 스피커가 따로 없어서 이어폰을 꽂아야 음악을 들을 수 있는데, 음악을 틀어주면 발을 까딱까딱하면서 테이프 한 면이 다 끝날 때까지 조용히 있곤 했다. 카세트 데크는 오토 리버스 기능이 없어서 음악이 끝나고 아이가 나에게 와서 바지를 당기면 다시 테이프를 반대로 꽂은 후 플레이 버튼을 눌러 주었다. 다행히 민감한 기계니까 마음대로 만지면 안 된다고 했는데 그 말은 참 잘 들었다.
문제는 내가 음악을 듣고 있을 때도 가끔 오곤 했는데 음악을 들려 주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것저것 손을 대고 만져 본다는 점이었다. 어쩔 수 없이 꼬마가 오면 카세트 데크를 양보해야만 했다. 하루는 방에 없는 척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고, 한 번은 하루 종일 공중전화로 통화할 일이 있어서 다섯 시간 만에 집에 왔는데 아이가 얼마나 서럽게 우는지 문밖에서도 들릴 지경이었다.
내가 꿈을 꾼 시점에서는 아이는 오후 네 시에 와서 한 시간 정도 음악을 듣고 가는 것으로 대략 일정이 정리된 상태였다. 나는 아이가 돌아가고 나면 밖으로 나와 식료품과 술을 사가지고 돌아갔다.
어느 날 물건을 이것저것 샀는데 집에 와서 보니 주머니 속에서 본드와 술 등이 충격 때문인지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조금 흘러나왔다.
'옷을 빨아야 하나'
생각을 했지만, 곧 주말에 한 번에 빨기로 했다. 그리고 잊어버리고 글을 쓰다가 문득 권총의 총알이 주머니에 함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총알을 네댓 개 꺼냈는데, 별 이상 없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넣어 두려다가 왠지 뜨끈한 느낌이 드는 것 같아서 선반 위에 있던 조그마한 접시 위에 올려놓았다.
십분 쯤 지나, 이상한 유황 냄새가 나서 혹시나 하고 선반에 가서 보니 접시 위에 있는 총알 하나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다. 불량품이라 술이나 본드 같은 것이 스며든 모양이었다. 연기는 아주 적어서 다른 집에서 궁금해하거나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총알이니까 불이 번져서 발사하듯이 튕겨 나가면 큰일이기 때문에 세면대에 걸레를 놓고 물을 받은 후 걸레 가운데 부분으로 접시째 밀어 넣어 두었다.
아침까지 까맣게 총알의 존재를 잊고 있다가 볼일을 보러 화장실에 갔더니 접시를 막 넣었을 때는 보글보글 올라오던 거품이 더 이상 나지 않았다. 세면대의 물을 빼고 걸레를 한 겹씩 풀어서 접시가 보이게 했다. 총알들은 얌전히 있었다.
'이걸 어디다 버려야 하지? 총에다 넣었다가는 내가 더 위험할 것 같은데?'
어차피 탄창이 몇 개 있기 때문에 총알을 낱개로 가지고 다닐 이유가 없기는 하다. 그냥 탄창을 여러 개 가지고 나가기 싫어서 총과 총알 몇 개를 챙긴 적이 있을 뿐이다. 주머니에 총알을 넣은 지 며칠이나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관리가 안 되는군.'
앞으로는 절대 탄창에 넣지 않고 총알을 들고 다니는 일은 없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애초에 총을 쓸 일이 없는데 가지고 다니는 게 문제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