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의 어떤 도시로 여행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사실, 그 여행을 위해 오 년간 돈을 모았고, 그 도시에서 가보고 싶은 관광지도 모두 방문해 보면서도 너무 여유 없고 바쁜 시간을 보내기는 싫어서 일정을 한 달로 길게 잡았다. 대신 돌아오는 교통편을 비행기 대신 배로 잡았는데, 특별히 크루즈 같은 호화 여객선은 아니지만 웬만한 편의 시설도 다 있었고, 개인 선실과 식당들도 충분해서 오히려 글을 쓰거나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면서 대화를 나누기 좋았다. 갑판으로 향하는 중앙 통로에서 판매하는 커피는 의외로 맛과 향이 좋아서 밤이 되어서도 디카페인 커피를 주문해서라도 마셨고, 덕분에 밤에 잠을 설쳤지만 어차피 사 일간의 항해라 학창 시절 방학 때 하루 일과의 리듬이 조금씩 뒤로 이동했던 것 같은 느낌으로 즐길 수 있었다.
밤에 방에 난 창문으로 밤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는 찬바람을 맞으며 갑판에서 마시는 커피와는 매우 달랐다. 차가운 공기를 맞으면서 마시는 뜨거운 커피는 그 순간은 소중한 것 같지만 실제로 여운이 많이 남는 것은 살에 닿는 기온에 신경 쓸 필요가 없어 잔뜩 활성화된 시각으로 멀리 보이는 해변가 마을이나 등대의 불빛을 보는 일이었다. 선실 창틀 근처에는 접이식 책상이 벽에 붙어 있어서 그것을 펴서 내려놓고 앞에 의자 두 개를 바짝 가져다 놓고선 나와 아내는 서로를 쳐다보는 대신 창밖만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러다가 멀리 불빛이 보이면
"저게 뭘까?"
"고기잡이 배인가?"
"등대일까? 등이 하나만 있는데?"
"저건 높낮이가 있는 걸 보니 배가 아니라 마을인가 보다."
같은 말을 하며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출항하고 나서 한 번 어딘가 들렀는데, 우리는 관광할 일이 없으니 방 안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괜히 내렸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그 도시는 쇼핑으로나 유명했지, 어디를 방문해 보아야 하거나 하는 관광 스폿은 딱히 없었던 것이다.
관광 시간을 얼마나 주었는지 모르겠다. 크루즈 여행상품은 아니니 짧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나는 타자기로 글을 썼고, 커피를 미리 네 잔을 사 와서 아내와 두 잔씩 마셨으며, 갑판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위스키 한 샷을 마시고 돌아와 다시 글을 썼다. 아내도 화장실에 다녀온 것 외에는 딱히 돌아다니지 않았다. 그러다가 관광 시간이 다 된 것을 안 것은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면서였다.
"실례합니다. 승무원입니다."
문을 열었더니 배에 승선할 때 보았던 얼굴이 서 있었다.
"두 분 다 계시지요? 아, 계시네요."
표정이 밝아서 딱히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우리를 확인한 이유가 있나 싶어서 물었다.
"무슨 일 있나요?"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아니요, 지금 승선이 막 완료되어서, 입장하지 않으신 손님 분들은 하선하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는 분들만 계시기는 한데, 혹시 몰라서 정말 하선하지 않고 계신 건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하선할 때 누락했으면 승선하지 않았는데 떠날 수 있으니까요."
하고 대답했다.
"별 일은 없는 거죠?"
"이 방이 마지막 방입니다. 지금 모든 손님 분들이 그대로 다 계신 것으로 확인되었으니 곧 출발 예정입니다."
"다행이네요. 그럼 수고하세요."
"예,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잠시 후 선실에도 조그맣게 기적 소리가 들리고 배가 출렁 크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배가 한 번 움직이고 나면 급히 방향을 바꿀 때가 아니고서야 별 느낌이 나지 않았으나 이제 막 출발하는 참이니 앞으로 이삼십 분은 그런 느낌을 견딜 준비를 해야 한다. 그동안은 잠을 자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그 정도 일 외에는 특별한 일 없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단, 우리 집으로 가려면 이 배에서 약간 더 작은 배로 갈아타야 했다. 대신 그 배는 한 시간 정도만 가면 되었다. 우리 집은 섬에 있었다.
작은 배는, 나는 늘 타던 배라서 그렇게 작다고 느낀 적이 없었으나, 방금까지 며칠 동안 머물던 배가 개인 선실도 아늑하고 내부에 각종 매점과 술집, 식당 등이 있는 곳이다 보니 이제 와서 너무나 작게 느껴졌다. 여기는 개인 선실도, 매점도 없다. 음료 자판기만 두 개 있는데, 그나마 모두 콜라만 구입할 수 있다.
갑판에 서 있자니 바람 때문에 물방울이 자꾸 날아왔다. 그 느낌은 나쁘지도 않고 낯설지도 않지만, 딱히 유쾌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짐을 다 든 채로 이동을 하려니 모두가 서 있는 중앙 선실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비켜달라고 하지 않고는 도저히 자리를 낼 수 없었다. 그래서 중앙 선실과 중앙 선실을 잇는 통로에 바닥에 짐을 놓고 아내와 나란히 섰다. 중앙선실은 세 개가 있는데, 세 개 모두 각각 양쪽으로 두 개씩의 문이 있었다. 그리고 중앙선실끼리 잇는 통로가 있었는데, 어차피 바깥으로 나가면 굳이 이 가운데 통로를 통하지 않아도 드나들 수 있기 때문에 두 번째와 세 번째 중앙선실을 잇는 통로는 사람들로 꽉 찬 상태였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중앙선실을 잇는 통로가 비어 있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곳이 우리가 자리를 잡은 곳이었다.
누군가 통로 중간에 있는 문을 열고 나오면서 눈이 마주쳤다. 왠지 피곤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문틈으로 살짝 보니 나무 계단이 있었다. 위층 선실 쪽으로 가는 입구 같았다. 그러고 보니 사람이 나오기 전까지는 문이 있다는 자각도 하지 못했다. 벽과 똑같은 흰색이어서였을 것이다.
"들어가 볼까?"
아내가 조그마한 소리로 물었다.
"저길 왜 들어가?"
"조금 전 저 사람도 승무원 같지는 않았어. 들어가 보고 특별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나오지 뭐."
"그래도 내키지는 않는데."
"그럼 들어오기만 해. 내가 올라가서 물어보고 올라와도 되면 올라오라고 할게. 그전에는 문 앞에 있어."
별로 탐탁지는 않았지만 통로를 우리 짐으로만 막아 놓은 것 같아 눈치도 보였고 해서, 들어가겠지만 대신 문 안쪽 바로 앞에 있겠다고 했다.
문은 통로 쪽이 아닌 안쪽으로 열렸기 때문에 나는 짐을 계단에 두어야 했다. 배가 조금 움직이더라도 짐이 쏟아져서 문을 열 수 없는 일은 없도록 짐을 잘 정리한 후 아내가 먼저 올라갔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내려왔다. 미리 얘기한 것이 있어서 당연히 우리가 있을 수 없는 곳이겠거니 하고 다시 짐을 들고 문 밖으로 나가려는데 아내가 소곤소곤 말했다.
"올라가자. 올라가도 돼. 전부 선실에 자리가 없어서 올라온 사람들이야. 그런데 주무시는 분들도 있어서 크게 말 안 하고 직접 온 거야."
그래서 함께 계단을 올라가 보았다. 중앙선실 바깥쪽 통로에 튀어나온 곳이 있는데, 그게 이 계단 때문에 생긴 것 같았다. 직선으로 끝까지 올라가니 나무 바닥으로 된 널찍하지만, 마치 작은 아씨들 같은 데 나올 것 같은 방이 나왔고, 가운데에는 마치 상담하는 곳처럼 생긴, 칸막이 있는 책상이 늘어져 있었다. 칸막이 있는 책상은 양쪽으로만 칸막이가 있고 마주 본 사람과는 자유롭게 대화를 할 수 있게 뚫려 있었다. 그런 책상이 여덟 개정도 나란히 붙어 있고, 끝에는 룰렛이 있었다. 아내를 따라 룰렛 쪽으로 돌아 반대편으로 들어갔다. 거기까지 모든 자리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 짐을 두고 안듯이 그 위에 엎드려 잠을 자는 사람, 책상과 의자에 모두 짐을 넣고 그 아래 바닥에 앉아 있는 사람, 의자에 앉아서 작은 가방 하나만 다리 위에 올려놓고 엎드려 있는 사람 등이 있었다. 룰렛은 의자가 없어서 옆에 아무도 없었고, 사용한 지 꽤 되는 양 먼지가 쌓여 있었다. 저 뒤쪽으로는 블랙잭 하는 데 사용한 것 같은 초록색 테이블이 있었다. 그 옆에는 책상들과 의자들이 쌓여 있었다. 우리는 룰렛 반대편 쪽 끝까지 걸어가서 책상과 바닥에 짐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옆에는 사무실에서 쓰는 것 같은 책상이 높여 있고 거기에도 피곤에 찌든 듯한 아주머니 한 분이 가방을 책상 위에 놓고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있었다.
"여기는 무슨 카지노 같은 곳인가 봐요?"
아내가 물었다.
"장거리로 대여섯 시간 운행할 때는 특별 손님들 올라와서 놀던 곳이에요. 십 년쯤 전부터 이런 배로는 장거리를 갈 수 없게 돼서 안 쓰고 있지만, 저도 수시로 타서 한두 번 들어와 봤어요."
아주머니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피곤은 얼굴에서 조금도 씻기지 않았다. 마치 힘겨움을 무릅쓰고 마지막 힘을 짜내서 웃는 것 같은, 약간 소름 끼치는 모습이기는 했다. '어두침침한 나무 바닥 위에 만들었지만 결국 버려진 오락 시설'에서 말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와 굉장히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도 어릴 때부터 이 배를 탔는데, 전 단거리 노선밖에 안타 봤거든요. 꼭 ㅇㅇ에 내려서 다른 배를 타고 갔는데 멀리 가는 배도 있었나 보죠?"
내가 궁금해서 물었다. 아주머니는 말을 할 때, 'i'가 들어간 단어를 말할 때마다 보조개가 귀엽게 생겼다. 보조개가 없었다면 입을 열 때 덜 인간적이고 조금 더 소름 끼쳤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 생각이 아주머니에 대한 무서움을 약간은 동질감이라던가 동료애 같은 것으로 바꾸어 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한 마디라도 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실제로는 그리 많이 궁금하지도 않은데 질문을 생각해 낸 게 아닐까.
"아, 맞아요. 장거리는 전부 ㅇㅇ에서 출발해요. 이 배도 그랬어요. 그래서 그때도 지금 가는 ㅁㅁ에서 출발할 때는 단거리니까 여긴 안 열었어요. 대신 운영을 할 때가 있으니까 그때는 단거리 노선일 때도 이렇게 방치한 게 아니라 문을 잠가 두었지요."
"그럼, 여기 말고 저쪽 통로 있는 데서 올라가도 방이 있나요?"
"당연하죠. 저 끝에 책상 쌓여 있는 곳에 가면 책상 뒤에 문이 있어요. 하지만 그 문은 항상 잠겨 있었답니다. 아마 지금도 그렇겠죠. 거기는 여기 오는 사람들과는 다른 분들이 드나들었죠. 이용료도 따로 있었어요. 신사분들이 돈을 내고 저 방에 들어가면 마음대로 시가도 피우고, 신문도 읽고 그랬죠. 아마 이용료에 커피도 들어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나는 상관없는 일이었죠. 이 방은 커피보다는 럼이니까요."
그때 책상 건너편에 엎드려서 자고 있던 남자가 우리를 살짝 노려보았다. 내가 움찔하자 아주머니가 눈치채고 그 남자에게 바로 말했다.
"그냥 자요. 쓸데없이 끼어들지 말고. 그렇게라도 자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요. 아래층이면 앉지도 못했어. 자게 놔두니까 이제는 조용히 자고 싶은 거요?"
아내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마 나처럼 싸움이 나는 줄 알고 철렁했을 거다.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신랑. 성격이 안 좋긴 한데, 나한텐 순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