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절은 활자들의 묶음입니다. 단어는 어절들의 묶음입니다. 문장은 단어들의 묶음입니다. 글은, 그 문장들의 묶음입니다. 글은 모여서 글뭉치가 됩니다. 그렇게 쌓여간 글의 뭉치들은 몇 메가바이트나 되는 파일이 되기도 하고, 한 박스씩 되는 종이 뭉치가 되기도 합니다. 파일 형태로 된 글의 데이터나 종이 뭉치나 기계가 한 번에 인식하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문서 파일을 기계가 내용의 규칙성을 파악하고 하나의 글로 변환을 한다고 해도 그 의미를 파헤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각 글을 날짜별로, 혹은 내용별로 분류하는 것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기계가, 같은 규칙으로 나누어진 글을, 이를테면 날짜별로 구분된 글을 날짜순으로 분리한 후 인공지능을 이용해 내용의 요약을 나열하게 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날짜별로 구분하는 규칙을 넣어 주어야 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그 규칙들을 인터넷에서 일괄적으로 학습해서 적용할 수도 있겠지만, 학습한 그 자료 자체 역시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그런 형식으로 날짜를 쓸 이유가 기계에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같은 날짜에 썼다고 하더라도, 혹은 날짜가 적혀 있지 않더라도 내용 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글들이 줄줄이 쓰여 있게 마련입니다. 주제가 어떻길래 전혀 다른 글이라고 분리를 해야 하는 것인지와 같은 '상식'은 애초에 인간들, 그것도 개인들이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각자 임의로 정해서 사용하는 것이므로, 애초에 분리를 하지 않았지만 분리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전혀 다른 글이지만 마지막에 처음 하던 이야기에서 중간에 나온 글의 내용의 영향을 받아 다시 이어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공적이지 않은 글의 경우에는, 특히 개인적인 메모인 경우에는 글의 목적이 분석이 아니라 사람이 쓰고 사람이 읽는 그 자체가 용도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글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글의 목적은 읽는 것일까요? 읽는다는 것은 듣는다는 것입니다. 왜 듣기를 바라는 걸까요? 믿으라는 걸까요? 옛날에 그리스의 숙제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인터넷에서 검색할 수 있으리라는 것은 당연하긴 하지만, 출처가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비석에 '나는 비석입니다.'라고 쓰여 있으면 그것은 참일까요? 그것을 쓴 사람은 비석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 말을 하기 위해 그 말을 새긴 사람에게는 거짓입니다. 하지만 소리 내서 읽으면 어떻게 될까요? 독자는 비석인가요? 아닙니다. 따라서 글을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 모두에게 그 말은 거짓입니다. 그 글이 참이 되려면 비석이 말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비석은 소리 내어 읽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글은 곧 만화의 말풍선 같은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말의 목적은 그 말이 새겨져 있는 돌이 비석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됩니다.
"야, 저기 비석이 있다. 뭐라고 쓰여 있나 보자."
"그래. 내가 읽어 볼게. '나는 비석입니다.'... 이거 비석 맞대."
이 외의 용도가 더 있을까요? 단지 명제일 수도 있습니다. 정보가 아닌 규칙입니다. '이런 돌은 비석이라고 하자.'같은 것이지요.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글 자체로는 목적도 없고 의미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관계, 쓰는 사람과 글과의 관계, 읽는 사람과 글과의 관계 속에서 글의 목적이 발생하고 의미도 만들어집니다. 즉, 쓰는 사람에 따라서, 그리고 읽는 사람에 따라서 글의 의미와 목적이 정해지는 것입니다. 제가 글의 '연습'을 위해 글을 써지는 대로 쓰고, 즐거움을 위해 머릿속에서 불러주는 대로 쓴다고 해도 읽는 사람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다른 이야기지만, 저는 주역도 비슷하게 처음에는 아니었다가 중간에 어떤 읽는 자세의 변화로 인해 점을 치는 책으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일반적인 삶의 지혜를 담았던 책이지만 오래되었기 때문에, 더 깊은 지혜를 가졌으리라 짐작하다 못해 점을 치면 신비한 힘으로 사실을 반영해 준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애초에 지혜의 전수가 아니라 사실의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발생한 쐐기문자는 그만큼 신비감이 적었기에 그런 것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이 아닐까요? 요는, 글을 쓴 사람이 '우주가 움직이는 이치'를 설명하는 과학책으로 썼더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점술서로 받아들인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글을 쓴 사람과 글의 관계가 글을 읽는 사람과 글의 관계와는 또 다른 것이고, 그런 상황이라면 애초에 글을 쓴 사람과 글을 읽는 사람 사이의 관계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오해를 받더라도 글이 있어야 가능한 일일 거고 말입니다.
저는 제 글이 많이 읽혀도 좋고 적게 읽혀도 좋습니다. 많이 읽히면 기분은 좋겠지만, 그만큼 싫어하는 사람도 많아지겠지요. 사람은 누구나 겁쟁이가 될 수 있으니 그렇다고 칩시다. 하지만 글은 계속 늘어 가면 좋겠습니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보면 작품의 주인공은 열심히 소설을 씁니다. 그건 보관을 위한 종이 뭉치입니다. 누군가에게 그 종이 뭉치를 가지고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지만 실제로는 증명이 목적이 아닙니다. 하지만 읽는 사람은 증명이라고 간주하고 그 증명이 옳은지 국가 자원을 사용해서라도 밝혀 내고자 합니다. 또한 주인공이 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아무도 읽지 못하게 하는 종이 뭉치도 있습니다. 결국 주인공이 쓴 소설에 나오는 종이뭉치가 주인공이 쓴 소설이고, 소설 속의 종이뭉치가 주인공 자신의 증명이라, 그의 소설 속의 종이뭉치 역시 스스로를 증명하려고 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아무도 읽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의 소설 안에서 주인공은 그 종이뭉치를 누군가에게 읽어도 좋다고 하지만 실제의 종이뭉치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 읽게 됩니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종이뭉치와 그 소설 속 종이뭉치는 분리가 됩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그 둘은 같은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글의 묶음이지만 존재 자체로 존재하는 글의 묶음입니다.
저 자신에게 있어서도 이렇게 저의 존재 자체의 증거이자 스스로 머금고 있는 내용의 실존 주장으로서의 종이 뭉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이 경우에는 파일이 되겠지요. 최후에 남은 파일의 확장자는 pdf가 될 수도, docx가 될 수도, 소박하게 txt가 될 수도, 혹은 아주 희박하지만 hwp가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파일을 '2진법의 규칙성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데이터 조각'이 아닌, '사람이 쓴 글'의 형태로 읽을 수 있느냐 없느냐겠지요. 홍수에 떠내려가서 젖은 채로 이리저리 눌리고 찢겨서 결국 지점토처럼 되어버리는 것과, 더 이상 작성할 때 사용한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아서 데이터의 형태를 알 수 없는 것은 똑같은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 존재를 증명하는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주장하는 존재의 종말입니다. 그런 존재를 남겨 놓을 수 있다는 희망이 계속 글을 쓰게 하는 힘입니다. 그 글이 제 뇌의 데이터 한 조각일 수는 없습니다. 항상 하는 생각이 아니니까요. 글을 쓸 때는 그 순간에만 하늘하늘 새어 나오는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기발한 아이디어, 창의적인 아이디어,라고 할 때의 그 아이디어가 아니라, 아이디올로지라고 할 때의 아이디어입니다. 하나의 명확한 처음과 끝이 있는, 그런 유명한 사상들과 비할 바가 아니지만, 그 스스로가 저로서도 어디서 나왔는지조차 추적할 수 없는, 아니 제 것이 맞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스스로 존재하는 것 같은 그런 것이 물속에서처럼 풀어져 나오는 것을 받아 쓰는 것뿐입니다. 제 뇌가 하는 일은 손가락을 움직이고 눈으로 보며 바로잡아 가면서 글씨로 변환하는 것뿐입니다. 같은 내용을 쓰려고 했더라도 오늘 써지는 것이 다르고 내일 써지는 것이 다릅니다. 쓰려고 했던 내용은 들어가겠지만, 똑같이 써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록은, 매일 쓰는 글은 저를 관통한 '그런 생각이 있었다'는 것의 흔적입니다. 그러니 그 흔적들을 모으면 제가 될 것입니다. 글쓰기가 즐거운 것은, 풀어져 가는 것을 조금 더 잘 풀 수 있기 때문입니다. 털실을 푸는데 살살 풀어야 엉키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마구 당기면 풀려난 실들끼리 다시 엉키게 됩니다. 살살 풀면서 털실 뭉치의 한 가닥에 불과한 것이 규칙이 있는 형태의 털실 제품이 되도록 만들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삐쭉삐쭉 튀어나온 목각제품을 사포로 문질러 부드럽게 할 때의 쾌감과 비슷할 것입니다. 글쓰기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제가 글쓰기를 계속해야 글을 쓸 것이 계속 나올 것이고, 그렇게 엉키지 않게 정리하고 다듬을 것도 계속 생겨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글과 관련된 이 모든 것이 멈추면, 제가 돈을 받고 하는 일, 남들이 나를 보고 판단하는 일들만이 저를 증명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부디 저를 증명해 줄 글이 남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