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

by 루펠 Rup L

비 오는 오후, 외출을 했습니다. 외출이라고 해서 특별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우연히 알게 된 책 한 권을 구입하기 위해 광화문 교보문고에 다녀왔습니다. 원래 계획에 있던 것은 아니었으나,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무엇을 할까 하다가 브런치에서 읽은 페르난도 페두아의 책을 직접 구입해서 들고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

누군가는 책을 구입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왜 전자책으로 읽지 않고 힘들게 종이책으로 읽느냐고 합니다. 왜 남이 어떻게 읽는지에 관심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종이책이냐, 전자책이냐 하는 논쟁은 항상 있을 수 있고, 그런 '취향의 문제'는 '믿음'의 문제처럼 주관성이 충분하기 때문에 토론으로 결정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시간이 한참 지나서 종이를 만드는 것이 환경적으로 많은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이 되면 플라스틱으로라도 책을 만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손으로 넘기는 맛이라던가, 직접 빛을 반사해서 눈까지 도달하는 종이의 질감 같은 것 때문이 아닙니다. '책'이라는 것을 상상하면 책의 형상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많이 남아있는 한 어쩔 수 없는 일일 겁니다.
저 역시 단순히 정보를 얻는 책은 전자책으로도 많이 읽습니다. 하지만 두고두고 읽거나 여운이 많아서 읽는 데 한참 걸릴 것 같은 책, 다 읽고 나서도 한 번에 치우기 힘들 것 같은 책은 종이책으로 구입하는 편입니다. 지금의 전자책은 한 마디로, OTT 사업자들이 말하는 '평생 소장'같은 개념이어서, 종이책과 가격 차이는 별로 나지 않는데 실제로는 집에 가져오지 못하고 도서관에 보관해야 하는 책 같은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전자책 리더에 책을 다운받아 놓더라도 주기적으로 로그인을 해 주지 않으면 다시 읽을 수 없습니다. 나중에 그 서비스가 사라지면 제 책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종이책의 '구입'과 전자책의 '구입' 사이에는 이렇게 소비자에 대한 '예의'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특히나 에세이나 시집의 경우는 구입하러 서점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샀는데, 나와 맞지 않아서 읽을 수 없다면 안 되기 때문에 직접 읽어 보고 구입하는 것입니다. 교보문고는 바로드림이 있기 때문에 미리 그 책이 있는지 확인하고 버스를 타고 갑니다. 같은 책의 여러 번역판이 있으면 하나씩 확인을 합니다.
가는 길에 버스에서 혹시 덕수궁 수문장교대식을 하면 보고 걸어갈까 생각을 했지만 비가 생각보다 꽤 왔고, 무엇보다 우산을 쓰고 다니기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바람이 거세서, 그냥 비 오는 날 복장은 어떤지나 보자는 마음으로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앞에서는 수문장교대식이 아닌, 어떤 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무대를 만들어 놓고 그 앞에 좌석을 40개 정도 배치해 놓았습니다. 비가 와서 실제 앉아 있는 사람은 다섯 명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여기저기에 성조기와 '부정선거' 같은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습니다. 부정선거야 주장하려면 그것도 믿음의 문제라고 치고 존중은 하자, 이런 마음으로 시위를 바라볼 수는 있겠는데 거기에 성조기가 있는 이유는 집에 돌아오고 나서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미국에서 트럼프가 당선되었을 때 부정선거 이야기를 들어본 것 같은데 그런 연장선일까요?
교보문고에서 비바람을 뚫고 계단을 내려가서 드디어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여기저기서 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다니는 우산을 든 사람들과 마주쳤습니다. 더 이상 우산 비닐을 주지 않고 우산을 한두 번 쓸어서 물기를 줄이는 장치만 해 놓았기 때문에 뒷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몇 번씩 혼자 우산을 털다가 들어가면 몰라도, 어쩔 수 없이 물을 떨어뜨리고 다닐 수밖에 없어 보였습니다. 비 오는 날, 서점에서...
교보문고는 주말이라 사람이 많았습니다. 하긴, 오늘 같은 날은 비도 오는 데다 바람도 많이 부니 다들 실내 활동을 많이 할 것입니다. 오늘 코엑스에 가기로 했다면 어떤 고생을 했을지 보지 않아도 소름이 끼칩니다. 비가 많이 와서 습도도 높은데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뚫고 다녀야 하고, 그것도 단순히 아이쇼핑 말고는 할 게 없는 상태라면 말입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오면서 보니, 덕수궁 앞뿐만 아니라 사방에 성조기가 걸려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도움을 받아 감사한 마음이 드는 건 알지만 시위를 할 때마다 태극기가 걸리는 그런 나라가 있다고 해 봅시다. 아마도 저 같아도 이해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미국 사람들의 시선을 제가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비 오는 날은 파전에 막걸리라고 하는데, 신발까지 젖어 가면서 술을 마시고 기름진 전을 먹으러 가고 싶지는 않아서 재빨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새 책을 펴고 읽어볼 생각이나 해야겠습니다. 세 권이나 되는 책이 너무 든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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