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방식과 통섭

by 루펠 Rup L

버스에서 버스 지붕을 때리는 물방울 소리를 들으면서 멍하게 밖을 내다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바깥 풍경은 유리창을 통해 그대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버스 창문에 맺혀 있는 수많은 물방울들이 만들어 내는 왜곡된 형상들 사이로만 제대로 들어옵니다. 마치 많은 구멍이 타공 된 철판을 통해 내다보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단, 그런 경우에는 구멍이 동그랗지만, 버스 유리창에서는 물방울이 동그랗다는 것이 차이점일 뿐입니다.
제가 글을 쓰는 방식을 차분히 생각해 보면, 하나의 특징이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그것에 대해 생각이 흘러가는 것을 따라가면서 계속 씁니다. 그러면 문장이 진행되는 동안 생각들이 동시에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듯하다가 제가 작성하고 있는 문장이 끝나는 순간, 그중 하나의 생각으로 갑자기 정리가 됩니다. 여러 가지 생각이 있었다는 것은 알지만 그 '다른 생각들'이 무엇이었는지는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생각이 아무런 기록도 하지 않고 끝까지 진행되고 나면 마지막 결론만 제외하고 모두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아서 생각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되짚어볼 수 없는 상태로 가는 것과 동일한 과정인 것 같기는 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갈래 중에서 선택한 그 생각이 어떻게 선택되는 것인지는 아무리 관찰을 해도 아직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선택하기 직전, 그 생각 자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대략적으로 짐작이 갑니다. 전혀 상관없는 단어나 상황 같은 것이 떠오르면서 이제까지 쓰던 것과 컬래버레이션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게 계속 연결되고 또다시 다른 방향으로 연결되면서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글을 쓰지 않거나, 글이 써지지 않을 때는 책을 읽습니다. 책의 내용은 상관없습니다. 요즘 쓰는 글과 상관없는 쪽의 생각을 마치 먼지를 일으키듯 일어나게 해서 글을 쓸 때 자유롭게 합쳐지게 하려는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통섭'이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회사에서도 툭하면 꺼내던 말이기는 합니다. 경영 쪽에서는 마치 정치에서 단어를 만들어 내어 여론몰이를 하듯이 쓸데없는 것을 단어로 만들어서 외우게 하고는 합니다. 통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건 회사에서 경영하는 입장에서는 필요할지 몰라도 현장에서는 하던 일을 더 잘하는 것을 더 장려해야 합니다. 어차피 통섭이니 윈윈이니 용어가 만들어지더라도 아래에서 위로 그런 것을 가지고 와서 제안을 하면 다 잘라버리지 않습니까. 하지만 회사의 직원으로서가 아닌 개인의 차원에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재테크를 한다면 월급을 모으는 재테크 외에도 관심이 많아야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장사를 하더라도 장사 기법, 손님 대접하는 법 이런 것 말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곁들이면서 회자되는 일이 많습니다. 글을 쓸 때도 글과 관계가 없는 것들, 개인적인 경험이라던가, 잊고 있었던 특별한 광경들 같은 것이 합쳐지면서 신선한 주제가 됩니다. 제가 뉴스를 언급하는 일을 굉장히 꺼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도 언론에서 하는 말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도 하지만, 보통 다 아는 이야기를 굳이 말로 표현을 하는 건, 특히 글로써 표현을 하는 것은 내가 그 소식의 진원지이고 빨리 알려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 이상 글을 만드는 것이 아닌 단순한 복사와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그런 블로그나 유튜브 채널을 하도 많이 보아서 기피하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통섭은 회사에서 함부로 시도하면 안 되지만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꼭 필요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통섭이 잘 이루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공부하는 것도 제 스타일이 아닙니다. 제 방식은 어떤 것이 제 방식이 될 때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공부를 해서 사용한다는 것은 그것이 저에게 맞는지 맞지 않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제게 맞는지 맞지 않는지 고민하고 생각하는 과정에서 결국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에는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찾아본 과정이 결국 공부로 남습니다. 맞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나면 특별히 한 것 없이 그대로 손을 떼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찾고 읽어보면서 나에게 남은 지식은 하나의 '상식'으로 제 머릿속에 저장이 되어 또 언젠가 써먹게 되겠지요.
본격적으로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닌 이상 이것이 제가 공부하고 글을 쓰는 방식입니다. '나 자신을' 이런저런 것을 아는 사람으로 만들겠다,라는 방식으로 지식을 밀어붙이는 것은 제 방식이 아닙니다. 싫어도 공부해야 하는 것은, 공부할 것도 없고 공부할 생각도 없는 사람이 공부에 발을 들일 때나 쓰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도서관에서 몇 시간씩 책을 붙들고 앉아있거나 뭔가를 두세 권씩 마음먹고 외운다거나 하는 일은 하지 않았지만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도 공부를 하지 않은 날은 전혀 없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종교의 경전이든 레시피의 양파의 맛과 성분의 변화라던가 이탈리아의 기후라던가, 무엇이 되었던지 관심이 있으면 계속 찾아보았습니다.
그렇게 마구잡이로 머릿속에 담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정리를 하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글을 쓰면서 생각지도 않은 것이 톡톡 튀어나오는 걸 보면 제가 읽은 것들이 제가 필요하다고 해서 그때그때 일부러 찾기 좋게 배열이 된 것은 아니지만 또 아무도 어디 있는지 모를 어둠의 지식이 되어 버린 것도 아닌 모양입니다. 간혹 제가 글을 쓰는 방식이 어느 시점이 되면 밑천이 떨어져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는 그런 방식은 아닐까 겁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만 머릿속에서 이것저것 끄집어내어 준다면 제가 저 자신 때문에 글을 쓰지 못하게 되는 일은 없을 것 같아 안심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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