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한 올 한 올 흐트러져 있습니다. 물결이 치자 생각끼리 엉겨 붙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엉겨 붙은 생각들은 더 큰 덩어리가 되고 이윽고 그것을 건져서 말리거나, 꼬아서 뽑아내어 엮으면 하나의 문단이 됩니다. 아직 그 문단들을 모아 몇십만 글자나 되는 작품은 써내지 못했지만 그것은 단지 결심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결심만 하면 되는 쉬운 일이라는 뜻이 아니라, 초조해할 필요 없이 기다리다가 때가 되면 저절로 결심을 하고 착수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전까지는 계속해서 그 생각들을 건저 올리고, 모으고, 말리는 과정만 계속하게 될 것입니다.
글이 만들어지는 것은 제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는 활동입니다. 그 생각들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생각들을 체로 걷어서 모으고, 한데 엮는 것은 목화를 키워서 솜을 뽑아, 옷을 만드는 것과도 비슷하고, 김을 만드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하지만 생각이라는 것에만 집중해서 쳐다볼 때에만 그렇습니다.
실제로 생각은 제 머릿속에 있는 것이지만, 글은 제 머리 밖에 있는 것입니다. 안에 있는 것을 밖에 내놓으려면 그릇이 있어야 합니다. 게다가 생각처럼 무형의 것이라면 그릇의 모양에 따라 형태가 바뀌니 액체라 보아도 무난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그 그릇의 모양일 텐데, 제가 글을 쓰는 것은 '글'의 형태로 생각을 늘어놓는 것이니 '글'이야말로 글 자체의 그릇이며 글 자체의 형식일 것입니다.
그런데, 글이라는 그릇은 제가 그 안에 생각을 풀어놓으면 끝나는 완제품이 아닙니다. 글 역시 제 머릿속에서 나온 추상적인 개념입니다. 그런 그릇을 상상하면서 그 형태에 생각을 따르는 것이 글을 쓴다는 행위입니다. '글', '그릇'. 글은 그 안에 담긴 생각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글이라는 형식이 없이는 개인의 머릿속에서 나올 수 없고, 글의 모양은 생각의 외침에 따라 다르게 보이게 마련입니다. 어쩌면 글은 투명한 싸구려 그릇이라 누구든 가지고 있고, 그 안에 고유의 색을 가진 생각을 부어 놓는 게 아닐까요? 생각에 따라 그릇의 색깔도 다르게 보입니다. 하지만 생각은 어디서나 그 글이라는 그릇의 모양일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그 그릇이 싸구려가 아닐 때도 있습니다. 도대체 몇 번을 읽어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불투명한 그릇도 있고, 자세히 읽지 않아도 화려한 글도 있습니다.
글의 형태는 글을 쓰면서 사용하게 되는 일종의 형식입니다. 그 형식도 글에 담기는 생각처럼 머릿속에서 나옵니다. 글을 쓰면서 잡히든, 글을 쓰기 전에 구도를 잡든,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곧 종류는 다르지만 둘 다 생각이겠지요.
일단은, 형식과 내용, 그릇과 액체라는 이중화된 요소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 이제까지 열심히 비유를 했습니다. 내용은 제 삶에서 경험한 것들과 그 경험의 필터로 바라본 세상의 모습 같은 것에서 나옵니다.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공유하기 위해 쓰는 글이라면 그 필터의 효과가 극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내용이겠지요. 아니면 단순히 사실을 전달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주관이 들어가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심지어 '어떤 정보'를 제공하려고 하는지 고르는 것조차 주관이 들어가 있을 테니까요. 그러면 글에 담기는 액체는 허공을 떠다니는 생각을 건져낸 것이 맞을 겁니다. 그런데 그릇은 어떨까요? 그릇은 우리가 어떻게 알고 만드는 걸까요?
작가들의 '글쓰기'나 '글 읽기'에 대한 글을 읽다 보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고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반드시 나옵니다. 이건 어쩔 수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글의 비밀입니다. 생각은 유튜브를 보아도, 토론회를 돌아다녀도 얼마든지 키울 수 있습니다. 주관을 또렷하게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하지만 굳이 자기의 주장이 강하고 확신에 넘쳐야 할 필요가 있는 건 아닙니다. 저 자신이 그래서겠지만, 남들이 자신의 입장을 너무 강하게 내세우는 것도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 항상 생각은 생물처럼 계속해서 변해 갑니다. 생각과 기준이 변하지 않으면, 그 말과 행동을 예측하기 위해 인공지능도 필요 없을 것입니다. 생각과 기준이 무생물처럼 되는 것은 스스로에게 비인간적으로 변하도록 강요하는 게 아닐까요?
늘 변해가고, 늘 내 주위가 조금이라도 바뀌면 적응해 가려는 생물의 기본 행동처럼 생각 역시 조금만 생각의 배경이 바뀌어도 새로운 것을 계속 덧붙여 나가야 합니다.
글은, 글을 어떻게 써야 한다고 말을 해 주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연습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썼을 때 어떤 모습이 되는지 알면, 원하는 모습이 있을 때 그 모습에 가깝게 가는 방법도 알 수 있습니다. 구를 깎아 보아야 실제 구에 가깝게 만들기 위해 어디를 더 깎아야 하는 것이 보이는 법입니다. 생각이 계속해서 변해 나가는 존재라면, 우리가 만드는 생각의 그릇 역시 계속해서 변해 나가야 합니다. 생각처럼 머릿속에서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의도하는 바가 추상적으로라도 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글의 형태에 대한 것도 우리의 생각의 일부일 것입니다. '표현하고자 하는 바'와 '표현하는 방식에서 추구하는 바' 두 가지가 마치 별개의 두 레일이 영원히 함께 가는 기찻길처럼 함께 가야 합니다. 그리고 글은 자신이 써 보아야 하고, 남이 쓴 것을 읽어 보아야 하고,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별로 못썼다, 잘 썼다를 단정 지어버리는 초등학교 때의 글쓰기 수업은, 방과 후 수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저 자신에게 몇십 년동안 제대로 글의 그릇을 만들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원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때라면 아직 '내 스타일'이라는 것도 없을 때니 말입니다.
소설을 읽다 보면 작가의 특징이 보입니다. 풍경을 묘사하는데 왠지 단색렌즈를 대고 본 것 같은 때도 있고, 채도가 너무 높아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곧 내가 쓰는 글에도 반영이 됩니다. 이런 연습은 수시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글이 남의 글로 인해 수시로 바뀌는 것은 초기에는 당연한 일이고 그런 카멜레온의 시간이 끝나면 그제야 제 글을 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직은 제 그릇은 남의 그릇을 보고 흉내 내 보는 중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스타일이 굳어질 때까지 계속 써야 합니다. 남들도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미 '나는 이런 방식으로밖에 글을 쓰지 못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그 사람이 부럽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소설을 읽거나, 에세이를 읽거나, 대담집을 읽으면 그 말투나, 묘사하는 방식이 곧바로 묻어나옵니다. 표가 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쓰면서 깜짝깜짝 놀라기 때문에 읽었을 때는 다를 거다,라고 생각할 틈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지우고 다시 쓰지는 않습니다. 글이 되는 순간, 모두가 제 글이고 제 글로써 녹여낸 그런 방식이 저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제 스타일에 대한 것이라 누구에게 물어볼 생각도 없습니다.
제 경험 때문에 글을 쓸 때의 형식은 반드시 글을 읽어야 형성된다고 늘 이야기합니다. '책을 많이 읽어라', '글을 많이 읽어라'라는 말을 하는 건 아닙니다. 많이 읽어 보았자 나에게 영향이 없으면 소용이 없으니까요. 어떤 사람이 하이킹이 취미라서 다른 사람에게 '많이 걸으면 상쾌하고 좋아'라고 이야기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바로 집의 골방에다 러닝머신을 사다 놓고 하루에 대여섯 시간씩 걸으면서 '하나도 상쾌하지도 않고 기분도 딱히 좋지 않으니, 거짓말쟁이로군.'이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물론, 콩나물시루처럼 아무것도 얻는 게 없는 것 같으면서도 분명 변화가 있기는 할 겁니다. 그런데 보통은 책을 읽을 때 내용만 파악하면 끝내지 않습니까? 저는 심지어 '발췌독'이라는 말까지 들어 보았습니다. 사실은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발췌'는 일부를 꺼내어 인용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발췌독은 보고 싶은 곳만 쏙쏙 빼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건 제가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기 전에 하는 일입니다. 그러고선 '다 읽었다'며 꽂아놓으면 그 책은 발췌독해서 다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글이 나오려면 그릇을 다듬는 법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글에서 배우려면 글을 읽으면서 이중으로 생각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글의 형태와 글의 생각. 그런 점에서 저는 자기 계발서, 재테크, 과학 같은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책은 저와 맞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책에서는 형식을 배우기가 힘이 듭니다. 내용도 결론만 알아도 될 것 같고 말입니다. 챕터 구성 같은 형식이 아니라 문장을 구성하는 방식이 너무 단조롭기 때문에 오히려 제가 쓰는 글이 닮을까 봐 꺼리는 편입니다. 나중에 제 스타일이 생기고 나서야 원 없이 읽어볼 생각입니다.
늘 그렇듯이, 이 글도 충고하고자 쓴 글이 아닙니다. 안내서도 아니고요. 제 방식에 대한 변명입니다. '나는 이렇다', '내가 읽는 방식은 이렇다.', '내가 책을 읽을 때는 이런 것들을 본다.' 이것을 한 번쯤 풀어놓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