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꿈이야기

타임머신과 역사연구

by 루펠 Rup L

또 늦잠을 잤다. 일어나서 보니 이미 부모님은 일을 하러 나가고 아무도 없었다. 얼른 수돗물을 한 컵 마시고 가방 안 책을 다시 확인한 후 바로 집을 나섰다. 세수도 하지 않은 상태이다. 그래도 이렇게 가면 지각은 하지 않는다. 한두 번 해본 게 아니라서 잘 안다.
버스라는 것도, 지하철이라는 것도 다 안다. 하지만 실물을 볼 수는 없다. 지식은 있지만, 그리고 언젠가 만들어야 한다고 배웠지만 아직 아무도 만든 사람은 없다. 휴대폰이라는 것도 알고는 있지만 각 집에 있는 호출기가 전부이다. 물론, 그 지식들도 학교에서 배운 것이고, 학교 선생들도 실제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는 모른다. 그들도 그런 것이 옛날에 있었다고 그저 배웠을 뿐이니까. 그런 것들을 실제로 사용해 본 사람들은 이미 수백 년 전에 죽었다. 그들은 그들의 사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만들어낼 거라고 믿었다고 하지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더욱이 직접 본 적도 없는 것을 말만 듣고 만들어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학교에서 배운 것은 이렇다.
수백 년 전, 지구에 무슨 일이 있어서 20여 개의 나라만 인구 중에 몇몇을 뽑아 우주로 보냈다. 20여 개의 국가밖에 그렇게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나라 당 이삼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자리가 많아도 인구 대비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닌 만큼 다른 나라 사람들을 태워주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는 대한민국도 있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행성은 지구에서 40광년 떨어진 곳이라고 한다. 그 거리를 몇백 년 걸려서 도착해서 자리를 잡은 것이다. 로켓은 많았지만 사람이 타고 있는 것이 절반이고 건물을 지을 수 있는 자재가 실린 것이 절반이었다. 그리고 착륙하자마자 원통형의 기지를 세우고 살아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행성에서 어떤 곳이 안전한지, 어떤 곳이 지진이나 화산 활동이 왕성한지 모르기 때문에 모든 나라들이 한 곳에 기지를 모아서 세웠다고 했다. 그리고 동물 실험을 한 끝에, 기지 밖에서 폐호흡이 가능하기는 하겠지만, 인간의 면역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결론을 내었다. 먼지가 많은 건 아니지만 공기의 구성 요소에 '약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일부는 그것이 기지 안에서 통제하기 위한 핑계라고 생각해서 반란을 일으키고 기지 밖으로 나가 버렸다.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남은 사람들도 단지 규정이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고 강압적으로 지시할 것이 아니라 질서 유지를 위해서라는 목적을 명확히 하고 규정을 개정해 나가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그러면서 우주선에 있을 때와 달리 조금씩 행성에서의 국가의 기틀이 잡혔다고 한다.
처음에 있던 위치에서 행성의 반대 편. 첫 기지에서 가장 먼 곳. 그곳이 대한민국이다. 기지도 가장 큰 돔으로 되어 있고, 우리 행성에서 처음으로 양압으로 특별한 시설 없이 외부 공기를 차단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돔의 크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여겼었는데 한 번 가능성이 증명되니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다. 그즈음 옛날에 탈출했던 사람들이 모두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공기 유입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돔 안에 산다. 언제쯤 돔에서 벗어나게 될지 모르겠다. 아직까지도 행성의 맨 공기에서의 식물 재배는 시험 수준이다. 학교에서 배운 바로는, 행성의 대기 중에서 우리가 식물을 재배하는 것이 아니라 알아서 퍼져 나가기 시작할 때가 되어야 가능성을 예상이라도 할 수 있다고 한다. 어쨌거나 내가 살아 있을 때는 그런 일은 불가능해 보인다.
내가 사는 곳은 서울 돔은 아니다. 서울 돔은 크기도 훨씬 크고 건물도 많아서 지각을 하면 뛴다고 될 것도 아니다. 내가 사는 곳은 천천히 달려도 돔의 끝에서 끝까지 한 시간 반이면 충분히 도착한다. 그런데 학교가 가운데 쪽에 모여 있기 때문에 돔의 어디에서 출발하든지 4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우리는 지구에서 탈출하면서 과학 기술을 모두 가지고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을 지금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먼저 그 과학 기술을 보려면 그 과학 기술을 압축해 놓은 '데이터'라는 것을 읽어야 하는데, 그 데이터를 읽을 수 있는 기계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그 기계를 만드는 법은 지구에서 온 로켓에 또 다른 데이터의 형태로 계산하는 기계에 들어 있는데, 도착한 이후 우리가 만든 전기로는 그 로켓의 전원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 로켓에서 그 기계를 분리해서 전기를 따로 공급하려고 하기에는 우리의 기술이 부족하다. 그러니 닭과 계란 중 어떤 것이 먼저인가의 문제에 빠진 것이다. 해결책은 우리가 만드는 전기의 규모가 그 로켓을 다시 살릴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미 로켓에 있던 한글로 된 종이 문서도 읽기 힘들어질 정도로 그때와 지금의 한국어가 많이 달라져서 그때 가서 읽으면 어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는 게 중론이다.
역사는 20개국의 협의체가 만든 타임머신으로 계속해서 다듬어 가고 있다. 타임머신은 번개의 전기로 움직인다. 이건 미국이 지구에서 가지고 온 기술인데, 순간적으로만 전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자세한 기능을 알기 위해서는 로켓을 살려야 해서 미국도 로켓에 싣고 왔던 제품 그대로만 사용하고 있다. 우리 행성에서의 과거로는 아직 갈 수 없고, 자동으로 과거 지구 상공의 좌표로만 이동하기 때문에, 우리 행성으로 오기 전에 지구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관찰하고 역사책에 반영하는 그런 용도로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듣기로는 과거에 가는 것은 맞지만 실제로는 몇 분 간 내려다보기만 하고 돌아오는 그런 정도밖에는 기능하지 못한다고 한다. 타임머신에 타려면 지구에 대한 지리와 20개국 외에도 그때 지구에 있었던 다른 나라들에 대한 지식까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대학을 나와야 해서 나와는 관계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최근 역사 교과서가 바뀔 만한 발견이 연일 신문에 대서특필되고 있어서, 타임머신 때문에 대학에 가겠다는 친구들도 제법 늘었다. 뭔가 새로운 것이 지구 대한민국에서 발견되었는데, 그 때문에 학자들 간에 갑론을박이 심각한 것 같았다. 일본과 미국 학자들도 가세해서 매우 복잡해졌는데, 거의 매일같이 그런 회의의 결과가 신문으로 발표되는 것이다.
우리는 75년 전 일식 때 이곳의 행성들이 일렬로 배치되었을 때를 0년 1월 1일로 새로 정했다. 오늘은 75년 7월 3일이다. 그때가 모든 나라들이 자신의 영토로 인정받는 땅으로 각각 돔을 옮기는 일이 완료된 해였다. 그 전은 이동기이다. 지구에서는 이와 달리 과학적인 지식이나 정치적인 사건이 아닌, 종교적인 사건을 기준으로 연도를 만들었는데, 그 때문에 계산이 복잡해졌다. 때로 그 연도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나라마다 다르게 사용하기도 했고, 심지어 왕의 이름으로 연도의 기준으로 삼은 나라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학은 다른 중요하다고 하기는 하지만, 너무 비효율적으로 기록할 도구가 많이 필요하다. 그런데 조선이나 고려, 삼국시대 같은 것은 이미 종이 형태로 많은 책이 로켓에 실려 왔기 때문에 대략 그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데, 때로 그 책의 내용을 확인하러 타임머신을 타고 가더라도 무엇을 확인해야 할지 몰라 아무 소득이 없이 돌아오곤 했다. 백제와 신라의 전쟁이 있다고 해서 그 사진을 찍으러 가서, 그것도 한 번에 몇 분 못 있기 때문에 몇 달이나 되는 시간을 매번 그곳만 방문하면서 낭비해 버렸는데도 불구하고(국가들마다 돌아가면서 번개가 칠 때만 갈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몇 번 안 되는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다.) 전쟁 장면을 확인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인내가 필수다, 같은 이야기가 어느 나라든 역사학자를 지칭할 때마다 나오는데, 이번에 어떤 교수가 대한민국 독립 '순간'에서 시선을 돌려 일제 강점 '기간'에 대한 관점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갔다가 의외의 발견을 해낸 것이었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역사책도 역사책이지만, 사소해 보이고 당연한 것처럼 보여도 집중할 필요가 없는 것은 없다는 경종을 전 세계 역사학계에 울렸다는 점에서 훌륭한 일이라고 다들 떠들어댔다.
교수는 건축물에 집중했다. 전쟁 같은 이벤트보다는 하나가 세워지면 오래도록 남아 있고, 보통 초석만 찾으면 확대한 사진에서 얼마든지 실제 그 건물을 세운 날짜와 이유 같은 것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차례가 되면 몇십 년 동안 내내 건축물과 초석 사진만 찍어서 옮겨적고, 가끔 그것을 묶어서 출판하기도 했다고 한다. 출판을 해도 어차피 도서관에서만 읽을 수 있지만.
그렇게 떠들기 시작한 게 2주 전이었다. 지난주에는 역사학자들끼리 모여 회의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 역사 시간에 역사 선생님이 어제 서울 돔에 가서 들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세계 역사 회의를 마치고 교수들이 돌아와서 역사 교사들을 모아 다시 강의를 한 모양이었다. 사진은 찍고 나서 행성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몇 분 동안만, 그것도 타임머신 안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열심히 연도와 글자들을 옮겨 적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사진을 세계 역사학계가 공인한 외국인 화가가 함께 타고 가서 순식간에 스케치를 해 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 그림을 다시 베껴서 나누어 주었고, 우리 역사 선생님도 그 그림을 한 점 얻어 와서 오늘 보여준 것이다.
교실은 열기가 뜨거웠다. 수학을 가장 잘한다고 잘난 척하던 반장도 대학을 갈까, 하고 고민할 정도였다. 사실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하는 것도, 가서도 공부만 하는 것도 힘들어서 그렇지, 간다고 가족 생계에 어려움이 있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래도 반장은 수학이나 과학을 잘하니 돔 부품을 생산하는 곳에서 연구를 하고 싶어 했는데, 이제는 역사학이 멋있어 보였나 보다.
역사선생님이 가지고 온 종이는 제법 컸다. 힘들게 얻어왔다고는 말하지만 실제로는 수업에 사용하라고 일부러 나누어 준 게 아닌가 싶었다. 가방에서 돌돌 말린 종이를 꺼냈는데, 그것을 다 펴자 네 번이나 접혀 있어 다시 펼쳐야 했다. 그러고 나니 꽤나 큰 종이에 자세히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 그림에는 하늘에서 내려다본 경복궁과 그 앞에 위치한, 어울리지 않는 양식의 건물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이상한 건물 맨 위의 첨탑 같은 것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이건 마지막에 화가와 함께 갔을 때 본 거고, 교수님이 처음 본 건 똑바로 서 있는 모양이었대. 지금 보는 그림에 나오는 게 철거하는 순간이었던 것으로 추정하는데 정말 희귀하게 타이밍을 잘 맞춘 거라서 그림으로 이렇게 남길 수 있는 건 보통 의미가 아닐 거야."
"이게 무슨 건물인데요? 저건 경복궁 아닌가요?"
"맞아. 이게 경복궁이고, 여기가 광화문. 우리가 수업 때 배운 조선총독부 건물이 이거야."
"조선총독부 건물이 경복궁 안에 있었어요?"
"아니, 광화문이 대문이니까, 경복궁에 못 들어가게 그 사이에 세웠다고 봐야지."
조선 총독부는 악랄했다고만 배웠지, 별로 관심이 있지도 않았다. 어차피 일본이나 몽골이나 미국이나 한 번씩 한국 땅에는 들어와 본 거 아닌가? 여기서는 땅이 넓으니 서로 침범할 일이 없어서 다행이기도 하고, 그러니 지구에서는 살아 남기만 하면 된 거지, 싶었다. 그러고 보니 지구에서 로켓으로 탈출한 20여 개국 안에 용케도 들었네.
선생님이 말을 이었다.
"이제까지는 우리가 기록에 쓰여 있는 것만 보고 일본이 항복 선언 했을 때 독립이 된 걸로 생각을 했는데, 교수님이 발견한 건, 조선총독부는 일장기만 걸지 않았을 뿐, 1990년에서 2000년 사이까지 멀쩡하게 서 있었다는 거야. 정확한 연도는 계속 연구해 봐야겠지만."
"근데 100년도 아니고 50년밖에 차이 안 나는데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이번 발견이 중요한 건 단순히 몇 년이 차이가 난다, 이런 게 아니야. 어차피 지금도 정확한 연도를 모른다고 하지 않았니? 중요한 건, 기록으로 가지고 있는 건 맞다고 치고 확인만 하는 차원에서 다녀오는 수준이었는데, 우리 전쟁도 며칠 차이인지 몇 달 차이인지 심지어 몇 년 차이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결국 실제 장면은 못 봤던 적이 있는 건 다들 알지? 그런데 그게, 실제로는 기록이 자기 나라를 미화하기 위해서 애초에 잘못되어 있었을 수도 있다는 걸 교수님이 증명하신 거야. 그래서 전 세계 역사학계가 다 술렁거리고 있는 거지. 뼈대부터 어쩌면 새로 찾아내야 할지도 몰라. 로켓의 데이터만 있으면 쉽게 밝힐 수도 있는 일이지만. 일단 자료가 많으면 교차로 대조할 것도 많을 테니까."
"그럼 어떡해요?"
"아마 본격적으로 전기 출력을 올리는 시험을 많이 할 것 같아. 그러려면 돔 밖에서 시험할 사람들도 많이 뽑겠지. 역사가 이제 역사만의 문제가 아니게 된 거야."
"그냥 발견해서 좋은 걸로 끝나는 게 아니네요."
"당연하지. 그리고, "
그러더니 선생님이 칠판에 붙였던 종이를 떼고 칠판에 큼지막하게 숫자를 적었다.
"교수님이 발견한 걸 우선 반영해서, 이제 시험에는 이렇게 나올 거니까 다시 외워."
"아, 좋게 끝나는 일이 없네."
다들 시무룩해져서 투덜거렸다. 역사학자가 어쩌고 하던 열기는 이미 간데없었다. 선생님이 칠판에 쓴 것은 다음과 같았다.
"일제강점기 1910 - 1945 에서 1910 - 1990 으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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