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나를 얼마나 충실히 표현하는가

by 루펠 Rup L

어떤 사물이 있다고 합시다. 그 사물에 대해 아무 개념이 없는 사람에게 그 사물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다면, 그 사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상태로 만들 수 있을까요? 중세 시대 사람에게, 손바닥 반 만한 크기의 동그란 물체가 있고, 그 위는 동그란 모양의 유리로 덮여 있어서 내부가 들여다 보이며 그 내부에는 톱니로 연결된 몇 개의 바늘이 동그란 물체의 중심을 동심원으로 하는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도는데, 각 바늘 별로 돌아가는 속도가 정해져 있어서 이것을 보고 시간을 알 수 있다,라고 설명을 해 준다고 실제 시계에 대해 상상이라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나의 물체도 그럴진대 저 자신에 대한 것을 글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저조차 제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합니다. 느낀 바를 다시금 느끼고 싶어서 영상을 다시 보기 위해 저장을 하듯이 기록을 하지만, 그 기록은 다시 읽어서 그런 느낌을 다시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그 느낌을 받았던 기억을 되새기게 하여 그 기억이 느낌을 가져오는 것을 도와주기만 할 뿐입니다. 제 글을 모두 모아도 제 생각을 다 표현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제 글을 통해 저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고 한다면, 제 생각은 저 자신보다 훨씬 크다고 할 수 있겠지요. 저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지만 제가 상상 속에서 내다보는 세상은 우주만큼 거대하고 다채롭습니다. 때로는 고요한 밤처럼 정적으로 가득하고, 때로는 그 정적을 모두 밀어내는 빛이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빛만으로도 고요를 물리치는 세계가 제 안에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로는 저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또한 저 역시 글로는 그런 이미지를 모두에게 똑같이 떠올리게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사실상 글은 써야 하니 쓰는 것이고 써지는 만큼 쓰는 것이어서 저를 표현하기 위해서라는 목적이 없는 만큼 저 자신에 대한, 제 생각에 대한 메시지는 자연스럽게 녹아든 만큼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녹아든다는 것은 보이는 것과는 달라서 내가 나를 보여주기 위해 누군가에게 저 자신에 대한 묘사를 하는 것보다 어느 정도는 더 또렷하게 보여주는 부분도 있겠지요.
설명의 한계는 또렷합니다. 설계도라고 해도 실물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하물며 말로, 글로써 하는 설명은, 게다가 추상적인 세계에 대한 설명은 저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얼마나 진실과 닮아 있을 수 있을까요? 만약에 제 안에서 자라는 생각과 상상이 늘상 변하고 있어서 같은 것에 대하여 매일 쓴다고 하더라도 백 일이 지나면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 수도 있을 텐데 말입니다.
어느 날, 우주선에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침묵 중의 침묵, 절대적인 고요를 고독 속에 즐기고 있다면, 저는 그것조차 글로써 남겨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글로 설명하게 되면, 다시 그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말로 변환을 하여야 합니다. 절대적인 고요마저 말을 빌리지 않고서는 표현할 방법이 없는 한계를 여실히 느끼게 됩니다. 실상 표현할 방법이 말과 글밖에 없는 한계입니다. 막막해서 눈앞이 깜깜한 것조차 검은 종이 한 장이 아닌, 이리저리 굽어지고 잘려 나가고 빨려 들어가는 듯한, 눈으로 보아야 그 깜깜해지는 순간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그림을 통해서만 표현할 수 있는 화가와 같은 무력감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화가는 그런 수단이라도 있어서 다행입니다. 표현한 그대로 다시 느끼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예술의 목적이다,라고 말하겠지요. 저는 제 글을 읽으면서 똑같이 느낄 만한 것이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읽으면서 재미 있으면, 공감을 하기도 하고, 공감이 가지 않기도 한 그 사이에서 줄타기하듯 지나가는 시간 자체만 즐겨도 좋겠다 싶은 마음입니다. 애초에 무엇을 그 화가처럼 절실히 표현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것을 알게 되면 그때 가서는 그런 '작품'을 쓰는 작가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꿈에서 한 소녀를 보았습니다. 제 집의 작은 방을 빌려 자고 아침에 나가는 길에 출근 준비로 너무 바빠서 화장실에 다른 여자의 화장품이 있는지도 모르고 나간 소녀의 꿈이었습니다. 꿈속에서 저도 어렸기 때문에 누구의 칫솔이고, 누가 쓰는 바디로션인지 물어볼까 조마조마했지만, 씻고 나가는 데까지 10분이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서둘렀기에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과연 이것은 알아챘기 때문에 바쁘게 움직인 것일 수도 있다고 다시 해석을 시도할 수 있는 걸까요? 하지만 그건 제가 의도한 건 아닙니다. 꿈의 내용에 나의 의도 같은 것이 들어갈 수나 있을까요? 혹시 꿈에서조차 소설을 쓰고자 하는 열망이 크다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모든 것은 스토리다.', '의식의 흐름조차 그 흐름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가 없다면 말할 가치가 없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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