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꿈이야기

꿈속에서 만난 나와 너

by 루펠 Rup L

잠을 오랜만에 걱정 없이 푹 잔다. 오전 휴가를 낸 덕에 출근 시간이 점심 이후로 미루어져 여유 있게 알람도 꺼 놓은 까닭이다. 중간에 끊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진 꿈이 기억 속에 박힌다. 기억이 박힌 동굴은 곧 밝은 빛에 통째로 녹아내릴 것이기에 얼마나 단단히 박혔는지는 크게 상관이 없는 일이다. 그렇게 사라지기 전에 기억의 조각 몇 개를 눈에 대고 비치는 것을 되새겨본다.

꿈에는 여러 사람이 나왔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너다. 꿈을 꿀 때는 현실 세계의 여러 사람들이 그대로 꿈에 나오는 경우도 있고 실제로는 본 적도 없지만 꿈속에서는 오랫동안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도 처음 보고 꿈에서도 처음 보는 사람은 결국 아무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오늘 아침의 너는 내가 모르는 사람이다. 꿈속에서는 오랜 앙숙 같았지만 나는 너의 얼굴도 이름도 모르고 깨어나고 나서조차 왜 너를 안다고 생각했을까, 꿈이긴 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꿈속에서는 괴롭히고 괴롭힘 당하는 두 사람이 되었고 주변 사람들은 그것을 일부는 의아하게, 일부는 고소하게 생각했다.
꿈에서 우리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나는 중학교 때 내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고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도 1학년 1학기까지는 전교 1등을 고수했다. 많은 아이들이 내가 공부하는 것을 보면서 따라 했고, 전자기기를 사용하지 않고 공부 계획을 다이어리에 펜으로 세우는 걸 보면서 학교 앞 문구점에도 연말연시에나 갖다 놓던 다이어리를 한여름에 갖다 놓기도 했다. 그때 너는 전교 2,3등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고, 나는 다른 사람들은 신경 쓸 틈도 없이 공부만 했지만 너는 계속 내 주변을 맴돌면서 내 귀에 들리도록 아이들에게 내가 잘난척한다느니, 공부를 티 내서 하는 1등이 어디 있냐느니 하면서 결국은 과외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떠들어댔다. 하지만 집에 돈이 없어서 밤늦게까지, 주말까지 학교에 나와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밖에 나와서 공부하면 과외를 받을 시간은 또 어떻게 내느냐고 하고 싶었지만 쓸데없이 받아주고 싶지 않아 아예 말을 섞지 않았다.
아이들 중에도 나처럼 그렇게 반론을 제기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너는 그런 아이들을 그냥 피했다. 나를 시샘하는 아이들만 데리고 다니면서 정신승리를 하고 네가 성적이 나오지 않은 것이 마치 규칙을 교묘하게 피해 간 내 탓인 것처럼 만들라고 했다.
너는 1학년 2학기 기말고사를 시작으로 2학년 2학기 중간고사까지 전교 1등을 했다. 나는 2등이었지만 내신에 크게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성적에 1등이라는 건 그저 남들보다 잘한다는 뜻이었기에 안정감 말고는 전교 5등과 딱히 차이가 없어서 한두 과목에서 특별한 하자만 생기지 않으면 되는 쪽이었다. 그 이상은 바라보았자 그 뒤로 따라오는 지출을 집에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너는 달랐나 보다. 1등을 하고부터는 과외를 했더니 1등을 빼앗았다면서, 과외는 과외를 하지 않으면 이기지 못한다고 다시 소문을 내고 다녔다. 선생님이 나와 너를 한 번씩 번갈아 불러 보고 우리 집에 와서 집안 사정을 보고 가서 타일러도 보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냥 떠들고 다닐 때는 괜찮았다. 그렇게 고3까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1,2등을 번갈아 가면서 왔다 갔다 할 때도 너는 떠드느라 뺨이 잔뜩 부풀어 올랐지만 나는 그 페이스를 유지하는 데만 집중했다. 그리고 대학에 가면서 우리 둘은 헤어졌다. 나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너는 내가 가는 학교에 떨어진 것이 그렇게도 억울했나 보다. 내가 한 만큼 공부를 했으면, 그렇게 떠들 시간에도 공부를 했으면 과외까지 받은 네가 나보다 더 좋은 곳에 갈 수 있지 않았을까?
대학에 가니 고3 때 우리 반 동창회를 하였다. 우리 반에는 전교생과 두루두루 친한 신기한 아이가 있었다. 그리고 네가 만든 소문을 전교로 퍼뜨려준 아이도 그 애였다. 그 애의 초청으로 네가 우리 반 동창회에 왔지. 그리고 와서는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저기, 잘난 척하고 앉아 있는 것 봐라, 눈을 내리깔고 있지만 아닌 척하는 표정은 고등학교 때가 아니라 중학교 때부터 내공이다, 등등. 나는 여전히 신경 쓰지 않았다. 다들 술을 마시면 그럴 수 있다. 나는 여덟 시가 되면 집에 가서 하교하고 나서 수업을 받겠다고 한 고등학생 과외를 해야 하기 때문에 혼자서만 맨 정신이었다. 왜 왔을까. 술 마시고 떠드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면 사람들은 항상 그렇다. 우리 학과 사람들도, 교수님들도, 친구들도. 너는 재수를 한다고 했다. 나 때문에 대학 망쳐서 나 때문에 재수를 할 건데 괜히 여기 와서 나 때문에 공부할 마음을 잡쳤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에 온 건 나 때문에,라고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미 술에 잔뜩 취했기에 대꾸도 하지 않고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말이 이어진다. 너도 사실 지금 재수하고 있는 거 아닌가, 원래 속이 시커매서 그걸 속이고 여기에 잘난척하러 온 것인지도 모른다,라고 하면서 자기가 재수하면서 공부해야 할 황금 같은 시간을 투자해서 내가 실제로 수업을 듣는지 확인하러 오겠다고 한다. 왜? 점점 술이 취해서 헛소리를 하는 건가.
"학생증 보여줄까?"
라고 물어보았지만
"저것 봐, 미리 준비해 온건지도 몰라. 학생증이면 보통 직방이잖아."
말이 통하지 않는다. 이제는 나도 약이 올라서
"나를 중고등학교 때 내내 봐놓고 그런 거 신경 쓸 시간이 있어 보이냐? 그런 머리로 대학을 결국 갈 수는 있을지 모르겠다. 재수할 생각 하지 말고 우연히 붙었을 때 그냥 다니지 그랬어?"
라고 쏘아붙여 버렸다. 저 정도면 정신병 아닌가? 그 정도 쏘아붙인 걸로 끝났으면 감사해야 할 수준이 아닐까?
과외는 선생에게 있어 기계적으로 학생이 이해를 했는지 하지 못했는지만 판단하고 다른 방식으로 다시 설명을 하거나 다음으로 넘어가거나 하는 선택의 문제이다. 물론 그 선택의 근거, 즉 이해를 했는지를 제대로 캐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생 본인은 감을 잡았지만 설명을 하지 못하면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 앵무새처럼 설명을 외웠을 뿐이지만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비슷한 문제를 다시 다 틀릴 때도 있다. 시험범위와 학생의 상태에만 집중하다 보면 감정 소모 없이 과외는 금방 끝난다. 요즘 말로 힐링이 되는 단순 작업이다. 숙제를 내주고 어머님과 이십 분 정도 학생의 상태와 숙제에 대해 설명드린 후 지하철을 타고 집에 왔다.
지하철에 서서 멍하게 창밖을 쳐다보니 그제야 슬슬 약이 오르기 시작한다. 한 대 쥐어 박을 것을 그랬나? 술 마시고 싸움이 나는 건 흔한 일이니까 별일 없지 않았을까?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몇 달이 지났는데 왜 아직도 저런 것일까? 내 탓을 하면 다시 대학에서 들어오라고 해줄 것도 아닌데 왜 나를 가지고 저러는 거지? 나를 보면 재수가 없으면 보지 않으면 되는 걸 왜 굳이 찾아와서 그럴까? 너를 앞에 갖다 놓고 마구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뺨을 때리고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머리를 쥐어뜯고.
내려야 할 역이 되자 다시 내려서 걷기 시작했다. "삑"하고 카드를 찍고 주머니에 넣으려다 미끄러져서 카드가 떨어졌다. 바닥에 툭, 튀기며 다시 열차 타는 곳 쪽으로 들어갔는데

"아..."

하면서 어떡하지 하는 표정을 짓는 순간 뒤에서 카드를 찍으려던 아저씨가 카드를 주워 주셨다.
"감사합니다..."
"네, 들어가세요."
짧은 대화. 짧은 대화가 더 훈훈하다. 다시 너의 독기 가득한 말들이 나를 찌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너를 때리고 싶은 마음, 너를 짓밟고 싶은 마음, 이것도 결국 내 마음속에서 나온 것인데, 너를 실제 때리는 것과 차이가 있을까? 어쩌면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이 네가 원한 것인지도 모른다. 엄밀히 나는 너를 무시하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 생각해 보니 꿈속의 나나 꿈속의 너나 똑같은 내 꿈속의 등장인물이다. 1인칭이기에 나일뿐, 내가 본 너는 충분히 내가 될 수 있다. 내가 너인 꿈을 꾸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미치도록 보이지 않게 무시하는 너를 몇 년 동안 견디다 미쳐버린 그 시간을 겪어볼 수 있었을까? 내가 현실에서 만났다면 단순히 수많은 미친년 중에 하나였겠지만 내 꿈에 나온 두 명이라서, 어쩌면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너 때문에 괴롭힘 당하는 꿈을 꾼 아침이라 기분이 살짝 안 좋았지만 거꾸로 내가 너인 꿈을 꾸었다면 몇 년 동안 열등감에 삭아가는 더 지독한 경험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꿈이 아니었던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까?
혹은, 실제로 현실에서 만나는 수많은 미친놈들이 모두 내가 직접 그들의 경험을 지나쳐 온다면 피할 수 없는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아니다. 이건 틀림없이 아니다. 꿈속의 인물들은 본질적으로 나의 존재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이해할 일말의 핑계가 있지만 현실에서는 보통 그런 사람들은 사상적인 뿌리라고는 자의적으로 만들어 낸 얄팍한 편견이 전부다. 나와 존재적으로 겹치는 기반 따위는 없다. 받아들일 수 있는 진상은 꿈에서 보는 사람들이 전부인 듯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예고 없이 찾아오는 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