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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꿈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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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p L May 27. 2024

주황색 하늘

-하늘이 주황색이다.
-아니다, 저 색은 파랑이라고 적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 파란 하늘은 없다. 지금도 흐린 코발트색에 회색 구름이 띠를 이루고 있다.
-그 모든 것을 묶어서 파란색이라고 하면 된다. 푸르스름하기 때문이다.
-아니다. 나는 모든 것을 묶어서 마음대로 상상하라고 주황색이라고 하고 싶다. 주황색 하늘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힘들겠지만.
-맞다. 나는 연막탄이 주황색인 것을 보았기 때문에 주황색 하늘이라고 하면 화약 냄새가 생각난다. 지금 그런 하늘은 아니지 않나.
-알겠다. 다시 쓰겠다. 하늘이 올리브색이다.
-그냥 파란색이라고 하면 안 되나?
-안 된다. 화창한 하늘 같은 느낌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바람이 세게 불고 구름이 뭉쳐져 있지 않지만 일정한 모양으로 흘러가는 것이 보인다. 아직 해가 질 때가 아니라서 하늘은 스펙터클 하게 붉은빛은 보이지 않는다. 주황색 하늘을 본 적이 있기는 하다. 해가 지려고 할 때였는데 그날은 유난히 붉었다. 아마 두 번쯤은 보았던 것 같다. 중학생 때였던 것 같은데, 하교 길이었다. 일곱 시쯤에 끝났기 때문에 집에 오면 바로 저녁을 먹었다. 그날도 배가 고파서 그리 심각하게 본 것은 아니었다. 단지 신기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렇지만 지금 누군가 하늘이 주황색이라고 말하면 그 모습을 다시 떠올릴 것 같다.
마지막, 두 번째로 주황색 하늘을 본 것은 대학생 때였던 것 같다. 동아리에서 술을 마시러 가는 길이었다. 하늘이 붉어서 어디선가 연기가 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누군가 술집 앞에서 "불길한데? 적당히들 마셔"라고 친절하게 입 밖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붉은 하늘. 노을이 지면 파란 하늘을 위로 밀어 올리고 지평선부터 점점 붉어진다. 하늘은 점점 불그스름한 푸른색이 되며 어두워진다. 그런데 그날은 불그스름한 푸른색이 아니라 주황색이 하늘을 온통 차지하고 어두운 주황색이 되어 해가 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정말 흔치 않은 일이다. 하늘을, 햇빛이 좋아서 감탄할 때만 올려다보는 나에게는 특히 그렇다. 그렇지만 지금 누군가 하늘이 주황색이라고 말하면 다시 불길하다고 말할 것 같다.
주황색 하늘은 노을과 다르다. 노을은 '주황색으로 물드는 서쪽 하늘'이다. 주황색 하늘은 파란 하늘의 파란색이 주황색으로 치환된 것이다. 하늘의 파란색은, 모든 빛이 동등할 때 우리 눈에서 인식되기 힘든 색이다. 눈에는 파란색을 인식하는 세포가 적기 때문에 파란색은 인식하기 쉽지 않다. 텔레비전을 자연스럽게 본다고 할 때 그 화면을 카메라로 찍으면 파랗게 나오는 이유가 파란색을 더 세게 쏘아 주어야 우리 눈에서는 균형이 잡혀 있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하늘이 주황색으로 보인다는 것은, 하늘의 색을 이루는 파장 중에 파란색만 유독 약해진다는 뜻이다. 빛의 균형이 맞아간다는 뜻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주황색 하늘은 여러모로 기분 나쁘다. 나의 경우에는 주황색 하늘에 대한 꿈을 꾼 적도 있다. 꿈이니 가능한 이야기이지만 그럼에도 뭔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스토리였다.
그 꿈에서는 하늘이 온통 주황색으로 물들었다. 뉴스에서 공기 중에 뭔가가 퍼졌으니 집 밖으로 나오지 말고 집 안에서는 공기청정기를 틀어 놓으라고 했다. 미세먼지 비슷한 것이겠지만 노란색이 아니라 주황색이라는 점이 다른 점이었다. 하지만 하늘만 주황색이었을 뿐 황사나 미세먼지 때처럼 땅 위로, 자동차 위로 주황색 가루 같은 것이 쌓이는 일은 없었다. 모두 집 안으로 들어갔다. 회사에서 나오지 못했다. 단지 식자재를 옮기는 자동차나 공무용 자동차들만 다녔다. 나는 꿈속에서 학생이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갑자기 휴교를 선언해서 등교했다가 집으로 향했다. 급식실에서 나누어주는 식재료를 한 아름씩 안고 모두 교문을 통과했다. 하늘은 주황색이었지만 파란색이 주황색으로 단순히 바뀐 것은 아니었다. 그 주황색은 농도가 있었고, 어딘가 모르게 떨리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서쪽으로는 무지개도 있었다. 무지개는 노란색으로 시작해서 마지막은 흰색과 검은색으로 끝났다.
이틀이 지났을까. 누군가 길거리를 다니면서 소리를 쳤다. "외계인이 쳐들어왔다. 우리 귀에 도청장치를 달았다." 그런데 두세 바퀴를 돌면서 똑같은 말을 하고 다니다가 어느 순간부터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자 뉴스에서 이번 주는 불고기 재료를 나누어준다고 했다. 어른들은 공무원 외에는 집 밖으로 나오면 안 되고 공무용 차량만 다닐 수 있었다. 학교에 가서 식재료를 배급받았다. 하늘은 여전히 주황색이었고 짙은 주황색 공기의 떨림은 조금 더 심해졌다. 일주일 동안 집에서 쉬던 아버지는 버스를 타고 출근을 했다. 일주일 동안 회사에서 나오지 못하고 일한 사람들과 교대를 한다고 했다. 식재료를 가지러 가다가 만난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서 떠들면서 학교로 향했다. 누가 큰 소리로 말했다. "지금 외계인이 쳐들어와서 전 세계적으로 우리 사육당하는 거래. 언제 다 죽을지 몰라." 고개를 돌아보니 내가 좋아하던 지은이었다. 반가워서 "안녕?"하고 인사를 했지만 여전히 왜 친한 척하느냐는 눈빛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일주일 동안 집에서 놀았다. 책도 읽었고, 공부도 했지만 꿈 자체가 인터넷 같은 것은 없는 배경이라 뭔가를 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때맞춰 학교와 학원 교수와 선생들이 시위를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정부에서는 식량을 나누어 주는데 뭐가 불만인지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담배를 하루에 한 갑만 살 수 있게 되어 어머니가 매일 집 앞 슈퍼에 가서 담배를 한 갑씩 사다 놓았다. 회사에서는 담배를 살 수 없으니 아버지가 오시면 피울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반은 피우고 반은 가지고 갈 것이다. 어머니는 슈퍼에서 사람들의 소식을 가지고 왔다.
주말에는 다시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아버지는 담배를 반으로 줄이는 대신 본인도 집에 있는 동안 담배를 매일 사러 나가고 어머니도 계속 사러 나가게 하는 편을 택했다. 술은 마시지 않았다. 왠지 알 수 없는 긴장이 흘렀다.
그다음 주 어느 날, 어머니가 뒷마당에서 노트를 태웠다. 자세히 보니 내 노트도 아니었다. 언제 사온 건지도 모르고 쓸 일이 뭐가 있을까 싶은, 디자인도 예쁘지 않은 노트였다. 세숫대야에 한 권에 불을 붙여서 넣고 중간 정도 타면 다음 노트를 넣었다.
"펴보지 말고 이거 차례대로 넣어. 이거 꺼지면 안 돼, 한 번에 태워야 돼." "네." 굳이 펴보지 말라는 말을 하셔서 펴 보았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글씨체로 대화가 들어 있었다. 네 권인가 되는 노트가 모두 대화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평소 부모님이 대화하는 그 말투 그대로였다. 왜 집안에 알 수 없는 긴장이 흘렀던 건지 알았다. 일상적인 기본적인 말 외에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 밖의 모든 말은 그 노트들 안에 글자로 들어 있었다. 뭔가 입 밖으로 내면 안 되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아서 천천히 펴면서 들고 있는 마지막 노트를 불 속에 넣을 타이밍을 보았다. 그때 어떤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외계인>, <도청장치>, <공기 증폭>. 대충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서 마저 불 속에 넣고 재가 된 것을 확인한 후 집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메모지에 샤프로 <외계인 때문에 대화를 펜으로 하는 거예요?>라고 적어서 어머니께 가지고 가서 보여드렸다. 어머니는 놀란 표정이기는 했지만 안도하는 듯한 몸짓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술을 가리킨 후 손을 흔들었다. 말로는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다시 수요일이 되어 식재료를 가지러 학교에 가는 날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하는 대화용 노트와 나와 어머니가 하는 대화용 노트, 나와 아버지가 하는 대화용 노트가 따로 있었다. 어머니가 나와하는 대화 노트에 <애들하고 외계인 얘기 하지 마. 애들이 그런 얘기를 해도 그 가족이 다 없어졌다나 봐.><알겠어요.>

학교에 가서 교실에 앉아서 우리 반이 급식실에 식재료 받으러 가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50명 되는 자리 중 열두 자리가 비어 있었다. 빈자리에는 지난주에 외계인 얘기를 했던 지은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모두 긴장된 표정이었다. 나처럼 사실을 알고 있어서 그런 건지 비정상적인 상태가 오래가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집에 오자 아버지가 쾌활한 목소리로, "우리 내일 낚시나 갈까?"하고 말했다. 이상했지만 알겠다고 대답하고 바로 노트를 꺼냈다. <왜요? 무슨 일이에요?><그냥, 지금 아니면 너하고 낚시할 수 없을지도 모르잖아.><네. 내일 가요. 근데 운전해도 돼요?><낚시 가는 버스가 있어. 눈 돌리려고 하는 거지.>
그래서 다음날 오전 열 시에 학교 앞에 가서 '민물낚시'라고 쓰여 있는 버스에 올라탔다. 아버지와 맨 뒤에 가서 나란히 앉았다. 버스는 거의 가득 찼다. 다들 빈손이었다. 우리 집도 그랬지만 낚싯대도 없이 낚시를 가는 진풍경인 듯싶었다.
버스가 도착하자 버스 짐칸에서 기사 아저씨가 낚싯대를 나누어 주었다. 낚싯대에는 좌석 번호가 쓰여 있었다. "부수거나 잃어버리면 바로 티 납니다. 물론 정부에서 이걸 물어내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아껴서 써 주세요." 사람들이 네, 하고 힘없이 대답했다. 아버지는 버스 안에서 노트를 꺼내서 이미 말을 했었다. "밖에서 노트로 대화하면 눈에 띄니까 대화는 그냥 말로 하는 대신 조심해야 해."
낚싯대를 드리워 놓고 오르막에 기대고 앉았다. 하늘은 주황색이지만 정오의 햇빛은 여전히 따가웠다. 하늘을 보니 해가 없는 쪽에 뭔가가 있었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주황색 하늘 중에 태양빛 때문에 살짝 그림자가 지는 곳이 있었다. 저게 외계인이 있는 유에프인가 싶기도 했다. 그때였다. 누가 소리를 질렀다.
"저기 봐! 저기에 외계인 새끼들이 있는 거야! 우리 도청하는 새끼들! 우리나라를 마음대로 하는 것들! 미국이 저것들한테 대한민국을 팔아먹었어!"
그때 갑자기 그림자가 졌던 곳 아래에 뭔가 움직임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뭔지 몰랐지만 그것 역시 주황색의 어떤 형상이고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공기 중에 진 그것의 그림자라는 것을 알았다. 계속 보고 있으니 그것의 형상은 사람 같은 모양이었다. 마치 사람이 공중에서 뛰어 오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내 손을 끌어당겼다. 안 그래도 놀란 상태였는데 갑자기 잡아당겨서 놀라서 아버지 얼굴을 보니 아버지도 놀란 표정이었다. 아버지가 내 손등에 글자를 썼다. <로봇이 내려온다. 버스 타라고 하면 바로 가자.>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버지는 바로 버스로 갈 수 있게 낚싯대를 정리했다. 넋 놓고 하늘만 쳐다보던 일행들도 모두 우리를 따라서 낚싯대를 서둘러 정리하기 시작했다. 원래 민물낚시 버스는 점심을 제공해서 두시쯤 돌아갈 사람들과 저녁까지 있을 사람들로 나누어서 낚시를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두 주섬주섬 준비를 하는 데다 기사 아저씨도 그 이상한 광경을 보고 있었기에 우리가 준비하는 것을 보고는, "버스 타려면 지금 타세요. 모두 타시면 출발할게요!"하고 말했다.
사람들이 모두 낚싯대를 차례대로 버스 짐칸에 넣고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버스가 출발하려고 시동을 막 걸었을 때, 경찰차가 급히 와서 버스 앞을 가로막았다. 경찰관 세 명이 내려서 버스 앞문을 두드렸다. 기사 아저씨가 문을 열자 경찰이 말했다. "아까 여기 일행 중에 어떤 분이 소란을 피웠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그분이 내려야 출발 가능합니다." "그 사람 우리 버스 타고 온 사람 아니에요." 누군가 소리쳤다. 그러자 경찰이 멍하게 기사 아저씨를 쳐다보았다. 조금 지나자 경찰 무전으로 무슨 숫자 같은 것을 말하는 소리가 났다. 경찰이 말했다. "그렇네요. 죄송합니다. 버스 번호만 이야기를 듣고 출동한 거라 착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일부러 여기 분들 사이로 섞여서 소리친 것 같습니다. 모두 가셔도 됩니다." 그리고는 내려서 경찰차로 돌아가 사이렌을 울리며 주차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학교 앞에 도착하고 나서도 모두 겁에 질려서 버스에서 내렸다. 집에 도착해서 나는 가만히 책을 읽었다.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공부도 해서 뭐 하나 싶었다. 밥 먹고 나서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옛날 영화를 보는데 아버지가 어머니와 대화하는 노트에 글을 적고 어머니와 내가 모두 읽을 수 있게 들어 보였다. <아까 경찰들, 버스에서 내려서 그 사람 찾으러 경찰차 다시 탈 때 총을 장전했어.>

그 꿈이 계속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다. 분위기로는 반란은 꿈도 꿀 수 없는, 전지구적인 스케일의, 모든 지구인들을 한 손에 쥔 듯한 느낌이었다. 주황색 하늘은 그 자체로는 의미 없는 공기의 조합일 뿐이지만 불길한 느낌을, 어쩔 수 없이 받는다. 그 꿈 때문인 것인지 원래 그런 느낌이기 때문에 그런 꿈을 꾼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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