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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소설상자

16만 년 후의 세계

by 루펠 Rup L

어느 날 갑자기였다. 지표면의 불균형으로 조금씩 지구 이곳저곳에서 판의 경계면마다 지진과 화산이 요동을 치던 몇만 년이 지난 어느 날, 북극의 얼음층이 순식간에 녹으면서 불균형이 진동을 일으키고 그로 인해 지표면이 순식간에 부드러운 맨틀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그 바람에 지표면에서 가장 무거운 곳이 마치 물이 고이듯 회전축 위로 부드럽게 안착했고, 그렇게 해서 히말라야는 북극 한가운데 위치하게 되었다. 그 여파로 지표면이 순식간에 몇천 킬로미터를 움직이면서 건물과 자동차와 사람들은 그 원심력을 이기지 못하고 떠올라서, 아니면 그 관성 때문에 그 지표면을 따라가지 못하기도 하면서 땅 위는 온통 충돌과 불과 비명의 세계가 되었다. 바다에는 수많은 바다생물들의 시체가 떠올랐고, 또는 지표면에서 미처 지표면의 이동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낮은 곳으로 떨어진 사이에 덮친 바닷물에 죽은 동물과 사람들도 있었다. 폐허의 모양으로는 어디가 원래 그 지표면에 붙어 있던 곳이고 어디가 바다였던 곳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인류는 문명을 잃어버리고 수만 년의 선사시대를 지나게 되었다.
남극의 대륙 역시 지표면을 따라 움직였기 때문에 새로운 남극에는 육지가 없어 옛날의 북극과 같이 얼음으로만 이루어진 곳이 되었다. 하지만 수만 년 동안 쌓인 눈과 얼음은 탐사 전에는 그 사실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인류는 다시 수만 년 동안 처음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석기에서 청동기로, 청동기에서 철기로 발전을 했고 마침내 기존보다 조금 늦은 16만 년 만에 전기를 기반으로 한 컴퓨터 문명 시대에 들어가게 되었다.
플라스틱 천지였던 쓰레기 매립장은 이제 수만 년 동안 쌓인 바위와 흙의 무게로 압축되어 다시 석유가 되었다. 그런 장소가 옛 문명의 중심지 근처라면 어디에나 있었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인류는 먼 옛날의 자연환경이 어떻게 석유를 만들게 되었는지만 연구를 했다. 콘크리트 유적지는 다 부스러지고 철근은 철광석이 되었다. 그러다 대한민국이었던 곳이 위치했던, 옛날에는 반도였으나 다시 빙하기가 오면서 그저 구릉지대가 된 넓은 땅에서 강이 흐르던 흔적과 뭔가 이상한 것이 육지 깊은 곳에 묻혀 있는 것 같다는 지표면 투과 연구 결과를 보고 땅을 파 보던 연구팀이 있었다. 최신 기술을 사용해 몇 킬로미터 아래를 살펴본 결과 터널 같은 것이 이리저리 끊어져 있는 채로 설치되어 있는 것을 찾아냈다. 그곳은 과거 문명의 여의도였지만 그들이 그 위치의 의미를 알 수는 없었다. 유독 유리와 콘크리트로 만든 터널이 많은 데다가 아래지반이 약해서 건물들이 형태는 유지하고 있었다. 아래로도 단단하고 그 위로 16만 년간 쌓인 지층도 두꺼워서 흔적도 없이 자갈이 되어 버린 옛 강남과 확연히 달랐다.
지표면 투과 영상과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나라 전체가 들썩거렸다. 유리는 현대의 강화유리와 같이 다른 성분을 섞어서 최대한 강도를 유지하고 액체의 성질을 최소화해서 흐른 정도를 보면 만들어지고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있었다. 터널은 그 유리들이 설치된 시기에 건설되었을 것이었다. 연구 결과는 놀라웠다. 약 10~20만 년 전. 역사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은 2만 년 전에는 문명이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유리를 분석한 결과는 그래서 더욱 떠들썩해졌다. 자연산 유리는 절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였다. 터널이 그때 만들어진 것이 맞다고 해도 그 터널을 만든 이유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용도를 알 수 없는 것은 사람이 만든 것이라는 주장에 아무런 부연설명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이 연구 중인 터널은 과거 문명에서 IFC타워라고 이름 붙은 건물이었다. 그것도 옆으로 만든 터널이 아니라 하늘을 향해 뻗은 건물이었다. 그러나 철골의 구조가 모두 뭉개진 상태에서는 그 사실을 알기 어려웠다. 그것이 터널이 아니라 하늘을 향해 세워진 건물이었다는 것은 그 유적이 발견되어 주변의 출입이 폐쇄되고, 그러고 나서 실제로 굴착이 시작되어 단지 투과된 모양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로 사람이 그 위를 밟고 올라서서 손으로 만질 수 있게 된 200년 후에나 가능해진 이야기였다. 해당 장소를 내려다볼 수 있게 만든 전망대는 전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되었다. 연구를 목적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출입증을 발급받은 후 엘리베이터를 통해서만 그 아래로 내려올 수 있었다. 철골 구조물들이 여기저기 뭉개진 상태로 노출되어 있었다. 연구자들은 사진을 꼼꼼하게 찍고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에 입력했다.
그 결과 그것은 어떤 순간적인 힘으로 인해 건물이 통째로 바닥에서 들어 올려졌고, 이어서 기초와의 연결이 끊어지면서 쓰러진 건물로 나타났다. 그 때문에 이 건물을 공격한 주체가 거인이나 거대로봇이어서 들어서 내려놓았다는 설도 잠시 나왔지만, 그런 건물이 두세 개 연달아 발견되고 건물들이 쓰러지면서 겹쳐진 모양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어서 지진으로 인해 쓰러진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 사이에서 사람의 뼈는 발견되지 않았다. 아마 10만 년 넘게 눌리는 과정에서 콘크리트와 철골 같은 것만 화석처럼 남고 사람이나 동물의 뼈는 흔적도 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추가 연구가 필요했지만 몇 킬로미터를 파 들어가는 일을, 그것도 200년이나 걸려서 한 일을 무한정 넓은 지역에 걸쳐서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어디까지 파헤칠지에 대한 회의가 몇 주간이나 이어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지표면 투과영상을 보면서 회의를 열었고, 그 뒤로는 건물들이 흔적이 너무 약해서 이번에 발견된 유적과 큰길을 두고 있었던 것 같은 건너편 건물 몇 개까지만 더 파기로 했다. 도로로 짐작되는 곳에서는 석유 성분이 검출되었지만 땅을 파 들어가는 사이에 모두 날아가 버렸다. 용도를 알 수 없는 넓은 공터가 도로에 붙어 있었고, 그 뒤로 건물이 조금 있었고, 다시 도로를 사이에 두고 건물이 있었던 흔적으로 보이는 공터가 있었다. 그 두 블럭 중 첫 번째 블럭까지만 파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어느 정도 깊이까지 파내려 가야 하는지 대략적인 수치가 나와 있으니 그 깊이까지 무작정 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은 파내려 가는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는 뜻이다. 중간에 뭔가가 나올 수 있으니 천천히 살펴가면서 파내려 가는 과정이 200년 가까이 걸린 것이지, 지층과 지층 사이를 고민 없이 그대로 중장비를 이용해 파내려 가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는 일이 아니었다. 해당 유적이 만들어지고 묻힌 후에는 그 위로는 어떠한 문명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엄청난 중장비를 동원한 끝에 회의에서 정한 두 번째 구획은 15년 만에 다 파 들어갔고, 이어서 5년에 걸쳐서 세부적인 부분을 발굴하듯 파내려 가기 시작했다. 철골을 사용했다면 어마어마한 문명인데 왜 사라졌는지, 사람은 얼마나 되었는지 등 알 수 있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로 그저 계속 파내려 가기만 한 것이다.
그곳에는 높은 건물만 못해도 8개가 남아서 흔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지만 건물 외 작은 것들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던 물건이라던가 그런 것들은 모두 높은 압력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사실, 사람들은 높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 높은 곳은 결국 산 정도이고, 굳이 힘과 에너지를 들여 건물을 높이 짓고 거기에 올라가야 할 필요는 없다. 한때 권위의 상징으로 높은 곳을 찾던 나라들도 있었지만, 누군가 높은 곳에 있는다는 말은 누군가는 낮은 곳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고, 모든 권력의 행사는 지표면에서부터 이루어지기 때문에 높은 곳은 사회에서 멀어진다는 뜻이다. 아무리 통신이 발달한다고 해도 그렇게 스스로를 고립하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높은 건물을 짓고 거기에 들어간다는 것은 수도승이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 가지 가능성이 있다면 정부 조직에서 사용하는 건물일 수 있었다. 권위의 상징이 넓은 면적인 만큼, 면적도 줄이고, 더욱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지표면에서 멀어짐으로써 스스로 낮추는 시도로는 제법 이루어지는 정책이었다. 많은 나라들이 그래서 정부 건물을 10층 내외로 짓고는 한다. 하지만 기업이나 부자들은 돈을 들여서 넓은 건물을 짓고 수도에서 가까운 곳에 머무르려고 하지 굳이 높은 건물을 지어 사용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연구를 해도 그 건물들을 지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일부 학자들이 해당 구역이 그리 넓지 않은 것을 근거로,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에 한계가 있어 어쩔 수 없이 높은 건물을 지어서 그 안에서 생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내었지만, 단순 주거용 건물에 그렇게 첨단기술을 쏟아 넣은 유리를 사용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그런 기술이 있다면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을 넓히려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이제는 원래부터 따라다니던 수수께끼에 그 건물들의 용도가 무엇이었는지까지 한 가지가 늘었다. 확실한 것은 종교적인 색채는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종교적인 의미가 있다면 어딘가를 바라보거나 그런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온통 유리만 가득한 건물은 이미 종교적인 선사시대 같은 흔적은 모두 벗어던진 상태라고밖에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다 한 건물에서 어마어마한 소득을 올렸다. 그런 건물을 설계해서 건설하려면 이미 컴퓨터를 사용하는 전자 문명이었을 거라는 짐작대로 전자제품이 파손되어 그 안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이는 반도체가 잔뜩 나왔다. 일부는 깨져 있었지만 서너 조각이 기판과 함께 발견되어 분석이 가능해졌다. 기판도 석유로 만들었는지 대부분이 분해되어 있었고, 금속 부분만 남아서 간신히 지탱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 붙어 있는 것들의 저항 등을 재어본 결과 반도체 안에 들어 있는 메모리로 보이는 것을 추출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가득했다.
내부의 메모리가 지워질 수 있기 때문에 매우 느린 속도로 내부 검사가 이루어졌다. 반도체를 투과하여 전자 구조를 들여다보고 복제를 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얼마나 확실히 복사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투과 과정에서 메모리 정보가 변질될 수 있다는 주장도 강해서 작은 전압과 전류부터 줄 수 있는 회로를 직접 만드는 과정이 실패를 거듭해서 이루어졌다. 16만 년 전의 반도체 생산기술에 대한 불신도 팽배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운 것도 있었다. 몇백 년 전 만들었다는 반도체가 있었어도 의심하고 포기했을 판에 이것은 몇만 년 전의 물건이니 아예 외계인의 물건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었다. 게다가 보존이 아닌 방치되어 있던 기간도 무시할 수 없었다. 데이터가 나오지 않았을 때, 그 시간들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인지 추출 과정에서 잘못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점도 더욱 조심하게 하는 요소였다.
마침내 놀라운 발표가 있었다. 메모리 안에서 각종 '컴퓨터 파일'을 발견하였고, 대부분 읽지 못했지만 그림이라고 가정하고 만든 알고리즘이 구분해 낸 데이터가 수천 개가 쏟아졌다. 그중에서는 유리가 보이지 않는 투박한 건물에서 사람이 뛰어내리는 사진이 유독 많이 있었다. 건물들을 새처럼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모양으로 그린 조감도도 제법 나왔다. 그 두 가지를 통해 사람들이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과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뛰어내리는 것을 즐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의 옷차림은 과거 사람들, 그러니까 지금 우리 문명의 몇백 년 전 사람들과 비슷했다. 몸매가 드러나는 옷도 있었고 로봇처럼 정형화된 옷도 있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과 하늘을 나는 것처럼 뛰어내리는 것을 즐겼다.
모든 유적을 공개하여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대통령은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가 발견한 이 문명은, 전 지구적으로 존재했을 수 있으며, 고도로 발달된 기술과 그에 반해 좁은 면적에 건물을 위로 높인 그런 사상 등을 볼 때, 해당 문명의 멸망은 어쩌면 모두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기를 행복으로 여겼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의견이 종합적입니다. 과거 우리 역사에 존재했던 인간 제물 종교처럼 이 역시 자기 파괴적인 문화였을 것입니다. 이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 문명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전 세계가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찾아낸 그림 파일이 자살률 증가를 우려하는 기사 페이지였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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