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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부우경 May 16. 2018

농부 통신 107

할미꽃

꽃이야 아무렴 저 좋을 때 폈다 지지. 벚꽃들 배고파 아우성이더니 금새 지고 개나리 민숭맨숭 폈다 지더니 이제는 너나없이 중구난방 흔전만전 피는구나.


아무렇게나 펴야 봄이지. 산 허리에 질끈 치마끈을 매듯 복사꽃이 피고 산머리엔 하얀 조팝나무꽃, 만화방창 아무렇게나 피고 아무렇지 않게 지는데.


그래봤자 열흘이지. 꽃 좋아야 열흘이고 틀림없이 화무십일홍이지. 맨날 화사하고 맨날 눈부실 리야.  


나도 그럴 줄 알았지. 맨날 빛나고 맨날 환할 줄 알았는데 피고 보니 할미꽃. 병아리마냥 깜빡한 사이 보풀 같은 봄볕이 부숭부숭 온몸에 묻었구나. 그런데 어쩌자고 자꾸 눈물이 나누.


남들은 나고 자라고 눈부시게 사랑하다가 그만 늙어 할매가 된다지. 나는 날 때부터 할매라서 그 눈부신 날들을 모른다네. 그래도 목련이 저 꽃을 피우자고 겨우내 눈밭에 까치발로 서 있었다는 건 알지. 저 진달래는 무덤가에서 오래오래 혼자 남은 이를 생각했다네. 냉이도 꽃이 핀다고 사람들이 우습게 여길 때 나는 꽃조차 없는 쇠뜨기가 마음 쓰였다네. 할매들은 원래 그렇지.


그러니 할미꽃 보거든 하찮다 마시게나. 눈 부신 한때는 못가졌으되 눈물겨운 연민의 꽃 정도는 피울 수 있다네. 꽃 같은 자네에게 늙은이 잔소리가 귀에 닿기나 하겠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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