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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부우경 May 16. 2018

농부 통신 113

물은 셀프

짜장을 볶으며 생을 보내도 좋겠다.


두달째 고추를 따고 씻고 말리느라 몸은 가마솥에 졸여진 조청같은데 이렇게 몸을 쥐어짜며 버는 돈이라야 내년 농사밑천도 안되는걸. 농사의 가치는, 노동의 가치는 얼마큼일까. 개같은 세상이라고 욕을 했대서 개주인들이 명예훼손으로 나를 소송건다면 고추를 팔아 변호사를 살 수는 없는 딱 그만큼.


왜 힘들고 고되고 위험한 노동일수록 헐한 것일까. 연탄 한 장에 담긴 노동의 총량은 분명 Preumonoultramicroscopicsilicovolcanoconiosis 병명을 외우는데 드는 에너지를 능가할 텐데, 왜 광부는 가난하고 가난은 캘수록 깊어지는 막장 같을까. 몸으로 만드는 가치가 가만히 서있는 아파트값 오르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세상이라면 이깟 고추 따위, 이깟 추수 따위.  


그러니 짜장을 볶는 생도 좋겠지. 춘장은 사자표, 기름은 라드. 에쿠스는 사절, 트럭은 OK인데 옷에는 흙이거나 먼지거나 최소한 풀씨라도 묻어있어야 입장가능. 짬뽕을 시킨다면 돼지고기를 볶아 낸 육수에 칠게로 만든 비법스프를 얹어 내지. 이곳에선 오로지 내가 오늘 얼마나 많이 몸을 부렸는지, 그래서 그 허기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증명하는 일로 값을 치르고 짜장 한 그릇이 주는 위로를 찬양하는 것으로 외상을 달지. 화폐 따위는 어차피 헛것. 냅킨으로도 못쓰는 뻣뻣한 종이 따위 저 기름지고 들큰한 국수 한 그릇과 맞바꿀까.


그러니 고추를 따는 생보다 짜장을 볶는 생이 좀은 더 보람되지 않을까, 싶은 와중에 문득 단무지를 두개씩 먹는 누구 때문에 적자가 날지도 모른다는 참 생산적인 걱정. 당연히 물은 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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