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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부우경 Jul 05. 2019

동네 형

승태, 안녕!

그는 동네 형이다. 만날 때마다 그는 나를 "치...치잉구"라고 말하며 엄지를 치켜세우는데 사실 그는 나보다 세 살이 많지. 고향 떠난 기철이형 봉호형과 동갑이니 그가 나를 친구로 여겨주는 건 나로선 횡재. 그의 여동생이 내 여동생과 동창이었던가. 어려서 함께 자랐고 그의 여동생은 이름만큼 예뻤는데.

여동생은 서울 산댔지. 그 서울에서 30년만에 돌아와보니 그는 여전히 동네 형으로 활동 중. 30년 전에 비해 주름이 늘었고 이가 몇 개 빠졌으며 "파파팔...아..아파"라고 얘기하는 것으로 보아 오십견이 온 듯 싶지만 여전히 그는 50년 넘게 동네 형.

-저래도 쟈가 부자야. 동네 빈 병이란 빈 병은 쟈가 다 모은다니까.
입성이야 아지매가 챙겨주시니 깔끔하더라도 빈 병 팔아 부자라니요. 그런데 오마니 모으시는 빈 병도 저 형 주실 거면서.

빈 병 수거뿐이랴. 버스 운전기사들 주려고 약수를 받아다 종일 정류소에 앉아 기다리거나 부러 장날에 나가 노인들 짐을 들어다주는 일도 동네 형으로서의 소임.

평소 말이 눌하고 자주 코를 흘려 아이들의 놀림을 받았기로서니 그 아이들이 자라 대학에 가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다시 아이를 낳아 명절에 내려오는 시간을 나무처럼 지켜볼 줄이야. 스물은 넘길까 서른은 넘길까 막상 쉰을 넘기자 동네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병을 모아 문밖에 두고 아무렇지 않게 아침마다 그의 안부를 묻는다. "승태, 안녕!"

그러면 그는 또 엄지를 치켜세우며 인사를 하지. "치...치잉구". 하드댁이거나 예안댁이거나 승재할매를 만나도 한결 같이 "치...치잉구". 심지어는 내 아들을 보더니 이 빠진 웃음을 환하게 지으며 말했지. "치...치잉구...아..아들".

가끔 딴 동네 사람들이 지나다가 아는 척을 한다. 동네 바보형이라고. 에라이, 그냥 형이어도 좋지 굳이 바보형은 뭐냐. 그러면 헛똑똑이들 보란 듯이 나는 또 인사를 하는 거지.

"승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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