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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러스씨 Mar 06. 2021

[4] 잘생긴 남자는 플레이보이?

⏤얼굴은 마음의 꼴이라는 말을 둘러싼 복잡다단한 정치에 대해서



'잘생긴 사람들은 대개 얼굴값 한다' ≠

'얼굴값 안 하는 사람들은 대개 못생겨서 그렇다'


외형에 대한 선입견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서도 있었던 것 같다. 흔히 잘생긴 남자(여자)는 자기가 잘 생긴 걸 알기 때문에 아쉬운 게 없어서 어쩐지 좀 퉁명스럽고(?), 대개 플레이보이나 팜므파탈 기질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식이다. 그럴 가능성을 아주 배제할 순 없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중학교 1학년 수학 시간으로 돌아가보자. 'p이면 q이다'라는 명제의 대우는 '~q이면 ~p이다'가 된다. '잘생겼기 때문에 얼굴값 할 것이다'라는 명제의 대우는 '얼굴값 안 하면 못생겼을 것이다'가 된다. 그런데 과연 얼굴값하지 않으면 못생겼다고 확언할 수 있을까? 세상에는 얼굴값하지 않는, 잘생기고 예쁜 사람도 넘친다. 그러므로 원래 명제도 틀렸음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얼굴값하는 것과 외형 사이에는 뚜렷한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 소위 '얼굴값 할 것'이라는 예상은 빼어난 용모를 지닌 이성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방어기제일 가능성이 높다. 그건 못생긴 이성이 마음만은 착하고 한 사람만 바라보는 해바라기일 거라는 믿음만큼 근거가 없는 것이다.

중등 교과에 나오는 조건문. 인생의 개소리를 판별할 때 큰 도움이 된다. '곳간이 차면 인심이 난다'의 대우 명제는 '인색하다면 곳간이 비었다'가 된다. 어떤가? 판단은 각자가.

  한 세기 전을 살았던 페소아 같은 걸출한 작가도 '비범한 자들은 어쩐지 평범하거나 평범 이하의 외형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건 페소아가 지난 시대 사람이라서 그렇고, 21세기처럼 성형과 각종 뷰티 용품이 넘치는 시대에서는 좀 다르다. 과거에는 수더분한 사람, 공대생 체크 셔츠를 입은 단벌 신사만이 자기 분야의 진정성을 갖춘 사람으로 받아들였을지 모르겠지만 오늘날에는 그냥 자기 관리 안 하는 사람에 불과하다. 뭐든 과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고 꾸밈에도 그 시대의 정도라는 것이 있다. 문제는 언제나 예외를 벗어나는 사례이고(과하게 꾸미거나 과하게 무심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외형과 내면을 함부로 연결짓는 사고방식이다. 예컨대 오늘날엔 추악한 외형보다 더 추악하고 못생긴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도 많고, 아름다운 외형으로 자기를 부풀린 사기꾼도 많다. 추악한 외형이 내면도 뒤틀리게 했다고 해도 말이 되고, 추악한 내면이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화려한 외형을 부풀렸다고 해도 말이 된다. 핵심은 내면과 외면을 지나치게 일치시켜서 보려는 사고방식이다. 지금 시대에 내면과 외면의 선후관계와 영향관계를 따지겠다고 말하는 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다분히 자폐적인 함정 속으로 자청해서 걸어들어가는 꼴이다. 




얼굴은 마음의 꼴?

'얼굴은 마음의 꼴'이라는 말을 둘러싼 정치



걸출한 능력과 아름다운 외모로 주목받은 실리콘벨리의 사기꾼 엘리자베스 홈즈. 몇 방울의 혈액으로 광범위한 건강 문제를 테스트 할 수 있다는 거짓말로 테라노스의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이야기가 잠시 딴 데로 빠졌는데, 하여간 내 말은 ‘못생겼으니 마음이라도 착하겠지’, ‘끔찍한 외형에 갇힌 아름다운 내면’, ‘요즘은 잘생긴(예쁜) 애들이 인성도 좋아’ 하는 따위의 얘기가 한쪽의 희망사항일 뿐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렇게 외면과 내면이 별개로 작동하는 희한한 카오스를 살고 있다. 그렇다고 "잘생기기라도 하라"거나 "못생긴 건 죄악"이니 뭐니 하는 따위의 소릴 하려는 게 아니다. 그런 소리는 집어 치우자. 외려 잘생기거나 못생긴 외면이 어떤 식으로든 내면과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논리가 하나의 마케팅 서사로 활용되기 쉽고, 그렇게 될 때 어떤 셈 빠른 사람들이 그런 서사를 정치적으로 활용할 줄도 안다는 얘기를 하려는 거다. 손쉽게 얼굴 성형이 가능한 이 시대에서 여태 관상을 운운하는, 태만한 사고방식에도 의문이 들긴 매한가지다. '얼굴은 마음의 꼴' 같은 고릿적 얘기를 생각없이 줄줄 욀 시기는 애진작에 지났다. 오늘은 '얼굴은 마음의 꼴'이라는 말을 둘러싼 복잡다단한 정치서사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다. 믿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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