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를 마케팅 하는 것이 공공연한 상황에 대하여
"스콧 피터슨의 행동거지를 묘사할 때 가장 좋은 표현은 아무도 사진을 안 찍는데도 끊임없이 사진 찍힐 포즈를 취하는 사람 같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중.
어떤 의미로든 비빌언덕을 염두에 두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사람은 정치적인 동물이라서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누울 자리를 봐 가면서 행동한다. '비빌언덕'이나 '누울 자리'는 물론 주관적이라 사람마다 편차가 있을 순 있다. 그러나 비빌언덕을 염두에 두지 않고 결정을 내리는 건 불가능하다. 무신론(無信論)란 있을 수 없으며 우리는 믿지 않는다고 말할 때조차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는다는 얘기다. 그래서 나는 무슨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인생에서 어떤 용단을 내렸다고 하거나, 명문대생이 '안녕하십니까' 하는 대자보를 붙였다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거기 열광한 건 이십대가 아니라 학생운동 세대라고 불리우는, 386세대들이었다는 건 무척 의미심장한 사실이다). 그 결정과 용기는 어느정도 칭찬해줄 만하지만, 거기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면서 열사보듯 호들갑 떨 필요는 없다 이 얘기다.
오늘날 사람들은 여러가지 의미로 영악하기 그지 없고, 그걸 무조건적으로 나쁘다고만 볼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영악의 수준이 올라갔고 그 양상이 복잡해진 것도 사실이다. 이젠 가진 것이 아니라 자기가 내다버린 것으로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유튜브를 한번 봐라. 누군가가 그토록 원하는 학벌, 직장, 연봉을 그냥 내다버리고 유튜버가 됐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 걸 볼 수 있을 테니까. 메이플스토리도 아닌데 전직은 누워서 밥먹듯 하는 무엇이 되었다. 전직 항공사승무원, 전직 삼성전자사원, 전직 서울대생, 전직 아이돌 전직 프로게이머······ 같은 전직 레떼르는 너무 많아서 이젠 하품이 나올 정도다('꿈'과 '열정' 따위의 말랑말랑하고 알록달록한 꼬리표가 달린 추상어를 늘어놓는 건 기본으로 장착해줘야 하는 클리셰다). 나는 그 결정을 결코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비꼴 뿐.) 고대 학생이 자퇴를 하고 대자보를 붙이면 엄청난 이슈가 되어도 대평대 학생이 자퇴한 것은 이슈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오늘날 사람들이 지독하리만치 잘 안다는 사실을 짚으려는 것이다. 이때 대평대생의 자퇴는 결코 비빌언덕이 되지 못하지만, 고대생의 자퇴는 어떤 대의명분으로 포장될 수 있고 이때에 충분한 비빌언덕이 된다. (대한민국의 스카이캐슬에 짱돌을 던지는 학생 열사이든, 자신의 진정한 꿈을 찾아 떠나는 고대생의 ⟪연금술사⟫식 자아여행이든, 젊어서 기득권을 포기할 것처럼 굴지만 종내엔 기득권을 물려받을 재벌3세의 포즈이든, 그게 뭐든.) 그걸 당사자가 모르고 결정했을 거라고 생각하나. 사람은 다 자기 비빌언덕을 은연중에 생각하고 행동한다. 정치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내가 꼬였다고? 글쎄. 이것이야말로 '꾸민듯 꾸미지 않은' 옷차림이나 '화장하지 않은 듯한 화장'이 난무하는 시대의 아주 자연스러운 발상 전개 아닌가? 사람은 뒷배도 없이 제게 유리한 무언가를 막 내다버리기만 하는 바보가 아니고, 진짜로 미쳐서 창 꼬나잡고 단기필마로 풍차에 돌진하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오늘날 모두가 알지만 막상 읽었다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든 위대하고도 슬픈 고전이다.
반복하자.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영악하다. 그건 나도 예외는 아니라고 말하겠다. 모쪼록 자기가 가진 것이 아니라 자기가 포기한 것에도 무게를 달고 가치를 매겨야 하는 세상에 온 것을 환영한다, 제군들이여. 여기가 카오스다. 그러니 뛰어라, 여기가 우리의 로두스이니까. 그래도 하나 위로를 하자면 이런 세상에서도 여전히 즐거움은 있다. 만나면 아는 척 하면서 삽시다. 싦음 말고.